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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by Yong

층간소음,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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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서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두 아기 부부의 상반된 쪽지가 화제가 되었다. 한 부부는 아랫집에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화장실 사용을 삼가달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했고, 다른 부부는 엘리베이터에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기 때문에 죄송하다, 너그러이 양해해달라"는 겸손한 글을 붙였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전자는 조롱과 비난을 받았고, 후자는 이웃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나는 이 두 사례가 단순히 개인의 인성 차이를 넘어,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 공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소음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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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층간소음 문제는 개인의 부주의보다, 소리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일부러 규제 이상으로 돈을 더 들여 차음 설계를 강화할 건설사는 없다. 결국 입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아랫집에는 소음으로 전달될 수 있는, 태생적인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해결책은 건축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생활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첫 번째 부부처럼 자신의 불편함만을 내세워 이웃의 기본 생활권마저 침해하려는 이기적인 태도는, 공감이 아닌 갈등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반면, 두 번째 부부는 자신들의 상황을 솔직히 알리고 공감을 구함으로써, 차가운 시멘트 벽 사이에 따뜻한 인간적인 연결을 만들어냈다.


소음보다 무서운 것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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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갈등의 대부분은 실제 소음의 크기보다, 그 소음의 원인에 대한 섣부른 '확신'에서 비롯된다. "소리는 위에서만 내려온다"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랫집에서 떠드는 소리가 천장을 타고 올라오기도 하고, 몇 개 층 위에서 하는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바로 위층에서 나는 것처럼 울리기도 한다.


몇 년 전, 내 아랫집에서 항의하러 올라온 적이 있다. 참다 참다 올라왔다는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시간, 집에는 소파에 누워있던 나 혼자뿐이었다. 내가 집 안을 보여주자 그는 멋쩍게 돌아갔고, 그 이후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는 아마 그때 깨달았을 것이다. 소음의 출처를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지를.


내 윗집도 시끄럽다. 하지만 나는 항의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윗집 사람이 내게 내려와 "괜찮냐"고 물어온 적도 있다. 그의 윗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나 역시 고통받고 있을 거라 짐작한 것이다. 이처럼 소음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피해자이자, 동시에 잠재적인 가해자일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확신 대신 조심스러운 이해를 먼저 건네야 한다.


단독주택이라는 허상, 그리고 남겨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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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는 것뿐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현실의 벽과 마주하는 일이다. 비싼 집값은 물론이고, 아파트에서는 공동으로 해결되던 수많은 관리와 제반 비용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보안과 안전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아파트 수준의 편의성을 누리려면, 가족 중 한 명이 집 관리에 모든 시간을 쏟거나, 돈을 지불하고 사람을 써야만 한다.


결국 우리는 이 불편한 공동 주거의 굴레를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두 부부의 쪽지는 그 답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는 소음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소음을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이기적인 요구 대신 겸손한 양해를, 섣부른 확신 대신 따뜻한 공감을 먼저 건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지키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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