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파트 8 : 수도관 파이프의 무게

by Yong

수도관 파이프의 무게, 그리고 30kg의 청춘


군대에서 보직은 곧 운명이다. 나는 훈련소에서 부상으로 낙오된 뒤, 박격포보다 더 최악이라 불리는 '90mm 무반동총' 주특기를 받았다. 그것은 곧 나의 군 생활이 어떤 모습일지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훈련보다 고된 '훈련을 빙자한 얼차려'

90mm 무반동총은 사거리가 짧아 훈련 시 늘 소총수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산꼭대기든, 능선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을 따라다녀야 했다. 총 자체 무게만 16kg에 달했고, 차량 보급이 힘든 최전방 특성상 천막 같은 숙영 장비까지 각자 분배해서 짊어져야 했다. 군장과 개인화기까지 합치면 실질적으로는 30kg이 넘는 무게를 메고 이동해야 했다.


타 부대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소총수 후임이 행군 중 낙오할 때면 "저 90미리 아저씨들 보라고, 저러고도 잘 가는데 넌 뭐하냐"는 갈굼의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훈련이 끝나고 고지 정상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간부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니들 참 고생 많다"고 등을 두드려주곤 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따로 있었다. 90mm무반동총은 전차를 향해 실제 사격할시 거대한 후폭풍으로 우리의 위치가 발각되고 우린 사격하자마자 모든 장비를 챙기고 그 자리를 재빨리 벗어나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수 있다.

이런 부분을 훈련하기위해 후임 시절 내가 받았던 얼차려는 대부분 주특기 훈련을 겸한 '뺑뺑이'였다. 고참들은 훈련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를 끝없이 몰아붙였다. 그것은 관절에 무리가 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하체는 단련되었고, 험준한 산악 지형을 버텨낼 체력이 길러졌다. 군대란 그런 곳이었다. 비합리적인 고통 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강제로 체득하게 만드는 곳.


사격의 쾌감, 그리고 닦는 지옥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훈련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공용화기 사격 측정이었다. 평소 간부들은 우리의 90mm 무반동총을 '수도관 파이프'라 놀리곤 했지만, 실사격 날이면 그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직사화기 특성상 조준만 잘하면 거의 백발백중이었고, 그 위력과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일병 때는 직접 사수로 나서 그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무반동총이라는 이름답게 반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발사 순간의 굉음은 귀를 찢을 듯했고, 며칠간 귀에서 전화 대기음 같은 이명이 떠나지 않았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했기에 귀마개 착용은 금지였다. 반동 대신 귀가 고생하는 것이 무반동총 사수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사격의 진짜 문제는 쏘는 것이 아니었다. 사격 후 총을 닦는 일, 그것이 진짜 지옥이었다. 총열 안에 가득 찬 화염과 화약 찌꺼기를 닦아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사격의 쾌감은 잠시뿐, 곧이어 길고 지루한 총기 손질의 시간이 이어졌다.


구식 무기,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이유

우리가 다루던 90mm 무반동총은 사실 구식 무기였다. 70년대까지의 구형 전차는 잡을 수 있어도, 현대 전차의 두꺼운 장갑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지만 이 무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구형 전차 위주였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90mm 무반동총은 쏘는 순간 위치가 발각된다. 그래서 우리의 주특기 훈련은 늘 '사격 후 즉시 이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무거운 총을 어깨에 급하게 메고 다음 진지로 뛰어야 하는 반복 훈련 속에서, 우리는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군 생활의 절반은 가벼운 K1 소총을, 나머지 절반은 K2 소총을 개인화기로 지급받았다. 짐을 가장 많이 메는 일병, 상병 시절에는 K1을, 짐이 줄어드는 병장 때는 K2를 쓰는 식이었다. 상병 시절 중대 사격 대표로 나갔을 때, 나는 K1으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냈다. 300미터 이상의 장거리 사격이 아닌 이상, 두 총의 성능 차이는 크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총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산악 지대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전역 후 웬만한 오르막길은 평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일부러 산에 간 적이 없다. 나에게 산은 더 이상 힐링의 공간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고통의 기억이 새겨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내 몸에 남은 군대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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