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파트7

by Yong

짬과 서열의 경계에서, 나는 리더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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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국군병원에서의 한 달하고 스무 날은 나에게 군대라는 시스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를 훈련소 동기들과 다른 길로 이끌었다. 나는 퇴원을 졸랐다. 훈련병 신분으로 병원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어차피 가야 할 자대에 하루라도 빨리 가서 정상적인 군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시작된 훈련, 그리고 낯선 동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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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는 뼈를 고정하는 핀이 겉으로 튀어나온 상태였지만, 나는 훈련소로 복귀했다. 내가 원래 속해 있던 26연대가 아니라, 훈련 주차에 맞는 30연대였다. 이미 한 번 받았던 5주차 훈련을 다시 받아야 했다. 한 달 넘게 병원에 누워있던 몸은 무거웠고, 훈련을 따라가는 것은 버거웠다.


30연대는 주로 아래 지방 출신 친구들이 많았다. 서울말씨를 쓰는 나는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손가락에 박힌 핀을 보고는 말없이 나를 챙겨주었다. 힘든 작업이 있으면 대신해주었고, 뒤처지지 않도록 이끌어주었다. 사투리는 낯설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따뜻했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군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동기애를 경험했다.


박격포보다 최악, 90mm 무반동총


병원 생활은 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병원에 있으면서 알게 된 군대의 불문율이 있었다. 훈련 주차가 밀린 훈련병은 원래 주특기가 말소되고, 무조건 '박격포' 주특기를 받아 최전방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화학 주특기 예정이었던 나의 기록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동기들이 자대로 떠날 때 나는 논산 27연대 박격포 후반기 교육대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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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간부는 "너희는 박격포가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받은 주특기는 박격포보다 더 최악이라 불리는 '90mm 무반동총'이었다. 최전방 말고는 쓸모가 없는 이 주특기는, 곧 나의 자대가 어디가 될지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2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마친 뒤, 나는 당연하다는 듯 7사단 최전방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짬 있는 신병, 그리고 혹독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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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에서만 4개월을 넘게 보낸 나는, 자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병 진급을 한 달 남짓 앞둔 상태였다. 선임들은 '짬 있는 신병'이 왔다며 나를 곱게 보지 않았다. 긴 병원 생활로 인해 지나치게 하얀, 거의 투명에 가까운 내 피부는 그들의 눈에 더욱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향한 그들의 혹독한 지도는 단순한 갈굼이 아니었다. 나와 비교적 가까운 차이의 위로는 4개월, 6개월 위 고참 둘뿐이었고, 그 위로는 한참 차이나는 실질적인 말년을 앞둔 상병 후반과 병장들 뿐이었다.

내 밑으로는 이미 세 명의 후임이 있었다. 나는 상병이 되기도 전에 소대를 이끌어야 할 실질적인 '실세'의 위치에 놓여있었다. 선임들은 그런 나를 키우기 위해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과한 갈굼도 있었지만, 그것을 견디고 일을 해내기 시작하면 인정해주는 것이 당시 군대의 방식이었다. 나는 일병 중반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선임들은 다른 후임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실세만이 알아야 할 노하우들을 나에게 전수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리더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사람들, 그리고 리더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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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대에는 동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보다 두 달 먼저 자대에 와 있던 세 명의 후임들이 사실상 동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를 고참으로 대우하면서도, 초기 적응을 살뜰히 도왔고 전역 전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의 역할은 명확했다. 내 밑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후임들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고, 그들을 이끌어야 했다. 나는 후임들에게는 고참들에 대한 불만을, 고참들에게는 후임들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전달받는 중간 위치에 있었다.

90mm 무반동총이라는 주특기는 훈련과 작업이 많았기에, 16kg에 달하는 총을 누가 얼마나 멜 것인지, 힘든 작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임무였다.

나는 직접 일을 하기보다, 그들에게 최대한 합리적으로 역할을 나눠주려 노력했다. 다행히 후임들은 나를 믿고 따라주었다.


몸이 힘든 주특기와 열악한 환경 덕분에 우리 소대는 내무 생활까지 빡빡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주력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당한 것은 시키지 말자"는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그렇게 군 생활은 흘러갔다. 부서진 손가락으로 시작된 나의 군 생활은, 결국 나를 한 소대를 이끄는 리더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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