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파트6 : 군병원 생활

by Yong

논산 국군병원에서의 한 달하고 스무 날

훈련병의 부서진 손가락은 나를 군대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또 다른 얼굴, 국군병원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훈련소와는 전혀 다른 규칙과 시간이 흐르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달하고 스무 날을 보내며, 군대라는 조직의 더 깊은 민낯과 마주했다.

환자가 아닌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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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병동에는 스물다섯 명 남짓한 환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훈련병, 기간병, 심지어 중사까지 계급은 달랐지만, 그 안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은 존재했다. 가장 밑바닥은 나 같은 훈련병이었다. 한 손밖에 쓰지 못하는 골절 환자였음에도, 병동의 청소 같은 잡일은 훈련병들의 몫이었다. 간부들에게 훈련병 따위는 안중에 없는 존재였고, 기간병들은 어떻게든 퇴원을 늦추려 애쓰는 반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자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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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훈련소에서 꽤 괜찮은 조교인 일병 한명이 내 옆베드로 다쳐서 들어왔다. 우리는 금세 절친이 되었고, 그는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훈련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자유도 있었다. 식사 시간에 PX에 가서 간식을 사 먹기도 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지인들이 면회를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편안함 뒤에는 군 병원 특유의 황당함이 있었다. 간호장교가 아침저녁으로 나눠주는 약은 정형외과든 내과든 구분이 없었다. 우리는 증상은 달라도 모두 똑같은 약을 받아먹으며, 그것을 '만병통치약'이라 불렀다. 아마 항생제, 소화제, 소염제를 뒤섞은, 치료가 아닌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처방이었을 것이다.


계급장 아래의 맨얼굴


군 병원에서는 계급장이 만들어내는 위계와 그 아래 감춰진 인간적인 맨얼굴이 교차했다. 입원 첫날, 갓 임관한 듯한 20대 초반의 소위 간호장교는 내 팔에서 링거 혈관을 찾지 못해 쩔쩔맸다. 결국 대위 간호장교가 와서야 상황은 해결되었고, 그녀는 내게 연신 미안해했다. 계급은 소위였지만, 그녀는 그저 서툰 사회 초년생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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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녀들도 얇은 흰색 바지 간호복을 입고 병동을 돌아다닐 때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속옷 색깔과 무늬까지 훤히 비치는 그 복장을, 그들은 혈기왕성한 병사들 앞에서 태연하게 입고 다녔다. 아마 여왕벌과 같은 심리였으리라.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기묘한 풍경은 그저 무덤덤한 일상이 되었다.


부상과 죽음, 그리고 특수부대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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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병동은 무료했다. 그래서 팔다리 '병신'인 기간병들이 타 과와 축구 시합을 벌이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이기는 쪽은 정형외과였다. 하지만 그 무료함 속에는 때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했다.


그곳에는 UDT나 특전사 같은 특수부대원들이 부상으로 자주 입원했다. 한번은 특전사 중사 한 명이 공중 강하 훈련 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그대로 추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헬기로 실려 왔지만 결국 사망했다고 했다.

마침 우리 병동에는 그와 같은 부대 소속의 중사가 입원해 있었고, 그는 깊은 낙심에 빠졌다. 훈련병인 내게 특전사 중사는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존재였지만, 나는 그의 침울한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특수부대란 낭만적인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 임무를 수행하는 고독한 직업이라는 것을. 오래 복무하고 싶어도 부상으로 강제 전역당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빗자루로 홈런을 치던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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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다. 병동에는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훈련병이 있었다. 어깨 탈구가 심해 입원한 그는, 훗날 장충고 야구 감독이 된 송민수였다. 한번은 훈련병들이 장난삼아 야구를 하는데, 그는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테니스공으로 던진 커브를 걷어 올려 감아쳤다. 우리는 그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 "역시 선수는 다르다"며 감탄했다.


군 병원은 무료했고, 그래서 우리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갔다. 외부 단체에서 준비한 어설픈 연극 무대를 보며 시간을 죽였다. 그곳에서 종교와 문화는 신앙이 아닌 오락이었다. 나는 한 달하고 스무 날을 그곳에서 보냈다. 더 있으라는 권고를 뿌리치고 자대로 향했지만, 그 시간은 내게 군대라는 조직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아픔과 무료함, 황당함과 비극, 그리고 아주 가끔의 즐거움이 뒤섞인, 세상과 격리된 작은 섬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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