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모양으로부터 피어난 향
홍대에 다녀오는 길에 바이크의 타이어가 터졌다. 늦은 시간인지라 수리할 센터가 마땅치 않았고 나는 근처 단골 카페에 잠시 두기로 했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바이크를 놓고 돌아가는 길에 주차 문제로 바이크를 옮겨두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가 아마 새벽 3시였던가.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살림을 대강 처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가오는 오전 11시까지 다시 홍대에 복귀해야 했고 내게 주어진 수면 시간이 4시간뿐이었다. 알람을 대여섯 개를 맞춰 두고 눈을 감았다. 얄밉게도 부담스러운 일정이 들이닥치면 나는 잠이 더 오지 않는다. 결국 뒤척이다 그림 몇 장을 그리며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알람이 한 세 개쯤 울렸을 때 눈을 뜨고 부리나케 나갈 준비를 했다. 카페 주차장에 놓여있던 바이크를 옮겨두고 출근하시는 사장님과 담배 한 대를 태우고는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카페인은 잠을 깨우는 데에 분명 효과적이나 이미 처질대로 처진 눈꺼풀의 무거움을 들어 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30분을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카페에서 잠을 청하는 무례함을 평소에 불편하게 느끼던 나는 잠에 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텅 빈 카페였지만 괜스레 무안해지는 나는 곧장 카페를 나왔다. 펑크를 수리하고 한층 더 가벼워진 통장 잔고를 확인하니 내일의 끼니를 저렴하게 때울 궁리를 해야만 했다. 그날 담배는 유난히도 진했다.
21살부터 10년 동안 다닌 담배가게가 있다. 나는 처음 담배를 배운 직후에 롤링타바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직접 재료를 사서 수제작을 하는 담배는 조금 번거로웠지만 가격이 아주 저렴했기에 곧장 과 동기와 함께 홍대로 길을 나섰다. 우리는 함께 담배를 말아 피웠지만 이내 동기는 귀찮다며 함께 산 재료들을 내게 몽땅 넘겨버렸고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담배를 태운다. 다른 담배와 달리 직접 담배를 만들면 맛이 더 진하다. 공장의 제조과정에서 들어가는 합성 접착제나 담배물에 불린, 연초인척 하는 종이들이 없기에 맛이 더 깊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연기가 더 느리게 흩어진다. 순수한 연초 덩어리를 태울 때처럼, 마치 시가의 그것과도 같은 질감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한숨인지 연기인지 모를 입김으로 흩트려 놓는 것을 즐겼다. 일각에서는 롤링타바코가 건강에 덜 해롭다고들 하는데, 담배는 담배다. 그런 게 중요했다면 담배를 진즉 끊었을 테다. 아무튼 매일 나는 이 공정작업을 어디서든 하는 중이다. 마치 드로잉처럼 평평한 판이 있다면 카페, 식당, 길바닥, 놀이터 등 늘 담배를 만들 수 있으니 그건 편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방에는 드로잉북과 담배가 담긴 파우치가 함께 담겨있다. 나는 관성처럼 선을 긋고 가루를 오므리고 살았다.
에곤 실레에 한동안 빠졌었다.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미술에 지친 페인터 지망생들은 한 번쯤은 에곤 실레나 구스타프 클림트와 같은 작가들에 매료되는 시기가 꼭 온다. 나 또한 그랬고 당시에는 그의 그림에서 풍기는 선의 느낌을 선망했다. 에로티시즘의 대가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는 그저 분절되는 선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다가 내가 5학년때 그렸던 드로잉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매력적이었다. 디자이너를 한동안 꿈꾸었다 보니 나의 선은 매끄럽고 정갈해진 지 오래였고 그래서 그 반대의 것들을 찾아 헤매던 중이었다. 허망하게도 그것은 과거의 나에게 있었다. 그것은 뛰어난 작가의 선도 아니었고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의 선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형태와 이야기를 따라가며 끄적거린 소년의 펜 끝에서 나는 내가 어떤 선을 그어야 할지 그제야 알게 됐다.
24시간 카페에는 그 특유의 냄새가 난다. 보통의 경우 흡연실이 마련되어 있어 조금씩 새어 나오는 담배냄새와 수많은 콘센트에 꼽힌 노트북 코드가 가열되며 올라오는 플라스틱향과 함께 섞인 잠을 못 이루는 이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에서 피어나는 먼지의 간질거림이 코를 스친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은 처음 본 사람들의 거리를 강제로 좁혀보지만 그들은 서로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고 빈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바쁘다. 아쉽게도 코로나 이후로는 늦게까지 영업하는 카페들이 많이 사라졌다. 한때는 대학가의 24시 카페는 동이 틀 때까지도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 사람들 중 하나였던 나는 시험기간이면 종종 뜨는 해를 보며 집을 향했다. 이따금 오다가다 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담배를 태웠다. 당시 우리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찾아야만 했던 빈틈의 낙은 흡연실에서 꼭 피어나곤 했다. 그간 재밌는 일은 없었는지, 그때 만나던 연인은 어찌 됐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거창한 꿈과 미래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다. 먼지처럼 날아가는 이야기가 태반이었지만 그 가벼움이 좋았다.
이불을 돌려야 할 때면 코인 빨래방을 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룸의 세탁기는 이 거대한 천의 면적을 감당하기 힘들었을뿐더러 방안에 이불이 널린다면 안 그래도 좁은 방의 발 디딜 틈마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세탁을 마치고 거대한 건조기에서 갓 꺼낸 이불은 기분 좋은 따뜻함을 주었고 나는 그 온기가 식는 것이 싫어 집까지 뛰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이불 빨래를 남들보다 자주 하러 갔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보기보다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종종 얘기했지만 빨래방은 내게 청소나 위생을 실현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비록 그것이 빠른 건조를 위한 인위적인 가열의 잔재일지라도, 홀로 잠들어야만 하는 사각형의 좁은 방에서 그 온기를 덮는 것이 좋았다.
이 시대의 관계란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보다는 데이터로 읽히는 것들에 대한 판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줄곧 우리를 옭아 메기 십상이며 그 와중에도 순수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하트를 조심스레 손으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비어 있는 하트는 그 모양이 온전하나 쉽게 부서진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이 실상은 그리 단단하지 못한 허울뿐인 포장인 경우가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