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울을 자주 보지 않는다
판타지 영화들은 대부분 현실에 입각한 세계관, 그러나 아주 약간은 비껴간 형태와 현상들로 우리에게 신비로움을 조성한다. 나는 그런 기묘함이 좋았고 그 비껴간 지점들이 불규칙적으로 늘여놓아 질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B급 영화들 속에서도 나는 그 비껴감이 좋았다. 영화라는 것은 사람마다의 기준이 분명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영화란시각적 정보와 청각적 정보가 한데 엉겨 붙어 자극을 선사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사실 인물들의 관계나 서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촬영 기법이나 영상 구도, 혹은 음악 감독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극대화하는 것은 ‘기묘함’이다. 발레리안은 흔한 판타지 영화 중 하나였지만 인물의 생김새와 그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기묘함은 좋았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원래의 상식에 약간은 겹쳐지는 것들이나 그 비껴간 지점이 불분명할 때, 기묘함은 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너무도 명확한 빗나감이 보였기에 적당한 자극으로 남을 뿐이었다. 대사나 인물들의 표정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느껴지는 것 하나 없는 그림이 있듯이 친절한 영화는 끌림이 없다. 그림 같은 영화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야만 했다. 나는 흐릿한 상과 소리를 헤쳐가는 기묘함을 좋아한다.
영수증에 인쇄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결국에는 지워진다. 아마 이 영수증의 글자칸은 지금쯤 하얀 네모로 남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남겨둔 글자는 “I love.” 다. 사라지는 글자가 사랑인지 아니면 사랑의 모양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됐다. 고등학교 동기의 선생님께서 내가 끄적이던 작업(사실 지금은 이것을 작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이다.)을 보시고 전시를 열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개인전을 제안하셨다. 당시 나는 진로를 작가로 바꾸기로 결심했던 시기였기에 이 놀랍도록 빠른 개인전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보통의 작가들은 첫 개인전에서 본인의 작업세계를 선보이며 자신의 이미지를 관철하고 각인시키게 될 테다. 이와는 달리 나의 개인전은 “저는 작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라는 어리숙한 선전포고를 하는 전시와도 같았다. 당시 학교에서 진행하던 스튜디오 수업에 전시 소식을 전하게 됐고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다음 수업 장소를 이 소박한 전시장으로 정하셨다. 교수님의 말씀은 늘 추상적이고 구름처럼 떠다니다 사라지는, 그런 질감의 문장이 많았기에 나는 완전한 이해를 포기하고 그림을 보듯이 흐르는 말을 가만히 두고 보았다. 우리는 그걸 두고 ‘페인터 언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는데 , 이는 언어 자체가 지니는 의미보다 그것이 시각적인 정보를 서술할 때 발생하는 무한한 해석의 장이 열리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게 꽤나 마음에 들었고 보편적인 언어와 ‘페인터 언어’ 사이에서 오가는 긴장감을 즐기게 됐다. 그 언어를 서툴게 흉내 내어 작업들을 설명하는, 이 엉성한 초짜의 궤변을 교수님은 본인이 이해한 것과 나의 의도가 일치하는지 하나씩 확인하셨다. 어쩌면 이 ‘페인터 언어’가 가득한 대화들로 인해서 작업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잡히지 않을 구름을 향해 손을 휘젓는 매일을 보내고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돈을 벌러 가셨고 그때부터 나는 혼자 살게 됐다. 이 가방은 이듬해 엄마가 중국에서 가져온 크로스백이었는데 프라다인척 하는 가품임에 분명했다. 나는 꽤나 많은 물건이 들어가는 이 가방을 애용했고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명품을 흙바닥에 굴려대는 나를 부잣집 도련님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삼각형의 금속 엠블럼이 갖는 값어치가 생각보다 무겁다. 대부분의 명품, 고급차, 시계들은 제 기능보다 무거운 엠블럼을 이고서 사람들을 현혹하고는 곧장 ’ 신상‘으로 탈바꿈하여 이전의 것들을 ‘올드‘한 물건으로 치부한다. 그 순환에 열광하는 이들이 꽤나 많기에 명품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그러한 소비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능력과 재량에 따른 소비일 테다. 그것이 삶의 다른 부분을 빈약하게 만들지라도 개인의 행복이 그곳에 닿아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그 엠블럼보다는 ‘올드‘함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 사물도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오래된 레스토랑에 놓인 가구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산속 깊은 곳 절에 모여 사는 중들의 현명함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꽤나 오랫동안 수행하며 여전히 우리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낸다. 나의 주변은 그런 것들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나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것들. ’old’에 ‘H’를 붙이면 ‘hold’가 된다. (필자의 성은 H다.)
Call me
911, call me some time
You should call me
911, call me some time
You should call me, oh
911
Call me
911
911.Tyler The Creator
자화상을 보는 자화상이다. 그림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기지만 영수증은 특히나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게 된다. 체크 플라넬 셔츠에 빠졌던 시기,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시기, 그리고 그것에 확신은 있으나 확인을 갈구했던 시기. 그림 속 자화상은 카페 cctv에 찍힌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 공부를 하던 중에 문득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한 생각에 펜을 멈추고 테라스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cctv였다. 나의 모습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나를 똑바로 볼 수 없다. 거울 속 나는 있는 그대로일 수 없다. 그것은 허상에 가까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형태를 조금씩 바꿔가며 비추기에 나는 거울을 자주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cctv는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까지도, 내가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나를 담는다. 그 길로 나는 학교로 향했고 사장님께 받은 cctv 영상의 스크린샷을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사진 속 나를 나로 인지함으로써 온전한 나를 그려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펼쳐본 영수증 드로잉을 담은 지갑에는 내가 있었다. 온전하고도 차가운 글자들은 직설적으로 나의 행적을 담았고 그 위에 올라간 선들은 글자를 끌어안기도, 때로는 뿌리치기도 하며 발버둥 치는 나의 속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