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에 걸리지 못한 천들 위에서
어디였는지 글자를 다 가려버린 탓에 기억은 나질 않는다. 상수동 어딘가에 식물이 가득한 카페였던가. 유난히 푸른 이파리가 가득했던 카페에는 작게 핀 붉은 꽃 하나가 눈에 띄었고 나는 주문 후 받은 영수증을 자리에 가져오자마자 펜을 꺼냈다. 이름 모를 저 붉은 꽃의 작지만 날카로운 색을 담고자 몇 개 없는 수성펜의 색을 조합했다. 종이를 뚫지 않을 정도의 습기를 유지한 채, 여러 번 말려가며 색을 올렸고 유화의 그것보다는 얕지만 나름의 깊이를 만들어 보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초록과 함께 공간을 덮는다. 붉은 꽃은 붉게 빛나면 그만이었기에 나는 꽃을 제외한 주변의 감각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싶어졌다. 그림 끝에 흡연은 늘 상쾌하다. 그 후련함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그저 빠른 선을 갈구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제 몸에 맞는 모양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옷이 될 수도, 혹은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른 객체와 만날 때 그 모양이 다르다면 분명 어느 한 곳은 무뎌지고 깎여야만 그 합이 이루어질 테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때 즈음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기 위해 살을 빼야만 했고 좋아하는 공간에 맞춰 낮밤을 바꿔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 타인의 모양은 도통 알 길이 없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양의 각을 비집고 들어가기,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간다느니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타인과 자신을 맞추기에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마 다른 객체들보다 특히 사람과의 모양이 맞아떨어질 때 그 희열은 무엇보다 강렬하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그 빈도가 잦아지면 점점 ‘미래’라는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못해 팽배한, 불안한 시간에 자신과 타인을 하나로 묶어 놓아둔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감히 여겨보기로 했다.
올해의 작가상 후보들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때문에 당시 수강 중이었던 스튜디오 수업의 일환으로 동기들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견학을 떠난 날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각자의 후보 순위를 정해보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하셨고 그림 오른편에 위치한 순서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상희가 2017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사실 내게는 그 순위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날 내내 내가 한 생각이라곤 이곳에서 열릴 개인전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그 작은 확률의 미래에 잠시 다녀오는 것뿐이었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국립 미술관 개인전이란, 마치 한 기업의 ceo로 승진하는 꿈을 꾸는 말단 직원의 허무맹랑하고도 사치스러운 공상과도 같다. 그렇게 9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이곳에서 전시를 볼 때마다 그 사치스러운 미래를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조바심이라기보다는 기분 좋은 꿈을 꾼 한낮의 쪽잠처럼 웃으며 기지개를 켜게 되는 개운함으로 남았다. 그렇게 9년 동안 서툴게 붓을 잡고 있다. 그것이 훌륭한 작품으로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감사한 나날임에 틀림이 없다.
영수증에는 액자라고 쓰여 있지만 이것은 캔버스 천을 돌돌 말아 놓은 롤이다. 밥은 적당히, 샌드위치나 삼각김밥정도면 나는 만족한 지 오래다. 하지만 다음 작업을 위해 준비한 이미지보다 남아있는 천의 면적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조급하고 불안했다. 마음 같아서는 거대한 캔버스에 작업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그것은 그 크기만큼이나 마주하기 버거운 금액의 재료였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저렴한 작업의 진행을 위해서 캔버스를 줍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워온 것들마저 소진해 버렸을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캔버스 롤을 사서 나풀거리는 천의 가장자리를 벽에 고정하고 삐져나온 붓질이 그대로 벽에 묻는, 드로잉 북 위에서 영수증 작업을 할 때와 비슷한 결의 자국들을 남겼다. 그들은 날카롭게 잘려있고 흘러내리며 온전한 그림의 모든 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탄력 있는 프레임과 천이 전하지 못하는 고집스러운 주름들이 있었다.
카페 제인을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었던 나는 무료 음료 쿠폰을 파죽지세로 모을 수 있었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는 만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이는 당시 나의 하루 식비를 넘어서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무료 쿠폰이 모이는 날을 기다리며 매번 딸기 케이크를 함께 시키고는 호화스럽기 짝이 없는 나의 테이블에 혼자 심취하고는 했다. 아쉽게도 이 날은 딸기 케이크가 품절이었던지라 호두케이크를 시켰던 것 같다. 정확히는 무슨 케이크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크림 위에 올라간 것은 호두처럼 보인다. 달달한 크림과 빵의 맛을 쌉쌀한 호두가 잡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고소한 맛도 이에 한몫했는데, 어쩌면 아몬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 치고는 조금 크기가 커 보인다. 혹시 피칸이었을까? 저 견과류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이제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영수증에 인쇄된 돌아오지 않는 날짜가 흐려지다 못해 사라지겠지만, 그 위에 올려둔 나의 드로잉은 오래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