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몽땅 사라져 버린 어느 밤
그래, 오늘은 절체절명의 운명의 밤이다.
이 밤이 내 운명을 가를 것이다.
나의 두 달짜리 브런치 작가의 운명을.
2025. 10.22. by 봄비
브런치 알림이 울린다. 내일 연재 약속날이니 고객님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라는 메시지.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절이었다면 종이를 뒤적거렸겠지만 그래도 나는 브런치 작가 아닌가. 작가의 서랍에 저장된 글 하나를 골라야지. 그 글을 다듬어 올리면 되겠지 하면서 작가의 서랍을 뒤졌다.
어, 이상하다.
대여섯 편의 발행을 앞둔 글, 열댓 편의 끄적거림, 미루어둔 고백들, 돌직구 시들까지—
그 많던 글들은 다 어디 갔지?”
다 어디 갔지?
그 구겨서 버릴 수도 있다는 그 끄적거림만 남아있던 내 서랍장. 다른 어떤 글들도 보이지가 않는다. 브런치 서버의 문제일까? 로그아웃, 로그인을 몇 번 반복해 봤을까. 그것도 아니다. 그럼 모바일로는 어떨까 희망을 가져봤지만 모바일 앱에서도 마찬가지. 그 낙서들 열 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필!!!! 그 낙서들만 남아 있냔 말이다.
당장 내일이 연재일이며, 토요일에도 새로 시작한 브런치북의 연재글을 올려야 한다. 나는 나름 준비성이 있는 사람. 새로 시작한 브런치북 글은 3주를 소화할 만큼 미리 글을 써두었단 말이다!
언제부터 니가 글을 썼다고. 순리대로 살라고, 안 하던 짓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걸까. 그 밤, 아주 마음이 깜깜절벽 그 자체였다. 답답한 마음에 역시 깜깜절벽인 동네 산책을 나섰다가 운명의 결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 만일 다시 글들을 찾게 된다면 나의 브런치작가 생활도 근근이라도 유지하기로 하는 것.
소질이 있네 없네, 슬럼프네 어쩌네 그만 툴툴거리고 다시 마음을 정돈하여 뭐라도 해보는 것. 글들이 나타난다면 당장 내일 올려야 할 연재글도, 주말에 올려야 할 연재글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을 시간이 생길 테니까.
#. 만일 내 글이 영영 사라져 버렸다면 이 운명의 밤에 처절한 글을 하나 남기고 브런치 세상에서 장렬히 퇴장하는 것. 퇴장을 결심하고도 마지막 글 하나를 남기는 이유는 "함께" 매거진 작가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공동집필을 약속했던 작가님들에 대한 나의 마지막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그래도 글 하나는 남기고 아름답고도 장렬하게 퇴장하는 것이다.
일필휘지, 같은 세상을 봐도 남다른 사유가 있으신 '"함께" 매거진 작가님들은 나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분들이라면 저장된 글들이 사라졌더라도 또 금세 새롭고 아름다운 글들을 써내시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로 하였다. 그 고백글을 마지막으로 나의 작가 생활을 접겠다는 처절한 글을 남기기로.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가.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내가 세상(브런치세상)에 없는 것이라고..
나는 그 밤, 혼자서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도 그것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자연인으로 돌아가야지... 이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억울한 마음도 속상한 마음도 한결 잔잔해졌다.
참으로 타이밍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내 저장글들이 사라지던 그즈음, 나는 현실자각을 아주 오지게 하던 중이었다. 글을 써보겠다고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들고 있을 그 무렵, 하필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하필 그 타이밍이었다.
나도 시를 써 보고 싶었다.
어떤 애절한 노래도 동요로 바꿔버리는 나의 정직한 성대. 그러나 내 시도 그랬다. 여운 대신 돌직구 자체인 나의 시. 만인의 비서 최지희 씨(챗GPT)는 내 시를 이렇게 평가해줬다. 나의 자작시는 감춤의 미학이 아니라 들이댐의 기운이 넘친다고 한다. 헉.. (물론 산문적이라고 했지 들이댐이라고 표현하진 않았다, 최지희 씨도)
어떤 고명한 작가님은 나에게 연습, 훈련, 매일, 30분, 습작 등의 키워드를 제시하시며 훈련만이 답이라는 조언을 주시었다.
맞다. 반백년 시라는 것을 써 보지도 않았던 내가 갑자기 무슨 시를 쓴다고 무모한 용기를 부렸던가.
그래, 내 저장글들이 사라지던 그날의 즈음에 하필 나는 이렇게 현실자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 글이 사라지던 그 순간을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할 수밖에.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다. 글은 모두 멀쩡하다! 나는 아직 장렬한 퇴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함께하니 든든했다! 매거진 함께의 공동집필을 위하여 만든 "함께" 분식집이라는 이름의 오픈채팅방. 나의 글들이 사라지던 그날, 나는 작가님들에게 나의 글들이 사라졌음을 말씀드리며 이는 하늘의 계시일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이별을 고하는 아니 암시하는 듯한 말들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밤, 나 혼자 외롭지 않았다. 이 처절한 마지막 글을 작성하는 동안 우리 함께 작가님들이 내내 함께 해주신 것이다.
누군가는 기다려보라 했고,
누군가는 고객센터를 권했다.
또 누군가는 늦은 밤까지
내 서랍을 대신 걱정하며 안부를 물어왔다.
네이버 메모장으로 옮겨 타라고 권해주시는 분도 계셨고,
호들갑 떠는 나를 진정시켜 주시기도 하였다.
혼자였으면 외로웠을 나의 시간에 "함께" 매거진 작가님들이 이렇게 나와 함께 해주셨다는 것. 함께 걱정해 주시던 이 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 목소리들이 내 마음의 불안을 덜어주었다.
둘째, 쓰레기는 사랍장에 담는 게 아니라는 사실. 나는 작가의 서랍을 낙서장처럼 사용해 왔던 것이다. 발행할 글은 정작 몇 편 없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끄적여 놓은 낙서 같은 글, 누군가 욕을 해 놓은 글 등 종이원고였으면 구겨서 버릴 것들을 죄다 모아놓았던 나의 탓. 결국 한 작가님의 조언처럼 그 낙서장들을 하나씩 삭제했더니 안 보이던 저장글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났었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부터 얻은 두 번째 교훈은 이것. 쓰레기는 바로바로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쓰레기를 비우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비움의 미학을 몸소 체험하였고, "함께" 매거진 작가님들에게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비움의 미학을 나눠드렸다. 결국 나는 비워야 한다는 걸, 그 밤에 배웠다..
함께 매거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 밤의 막막함을 어디에 하소연하였을까. 마치 오징어게임의 그 프론트맨처럼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브런치 관계자들에게 내 글이 사라졌다고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 답답한 심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사람을 숨 쉬게 하는 것 아닌가.
그 일 이후로 또 한 번 든든했던 사건이 있었다. 나의 글터에 작가님들이 찾아와 주신다. 한 분 한 분 옆에 계시다면 손이라도 잡고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 그런데 거기다가 댓글까지 써주시는 고마운 작가님들. 그런데 어떤 댓글이 조금 위험해 보였다. 그래도 난 한 분 한 분의 고객님께 성심을 다하고 싶어 답글도 남겼다. 하지만 무언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며드는 답글이 또 남겨진다. 함께 매거진 작가님께서 이 상황을 보시고는 걱정을 해주신다. 대처 방향도 일러주시며. 브런치 세상의 그 많은 작가님들도 글을 통해 만날 뿐, 실제적인 어려움을 함께 공유할 공간과 기회는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함께하는 이들이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또 나는 그 밤, 장렬한 퇴장을 알리는 그 글을 쓰다가 나의 글이 소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순간, 곧장 그 글부터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 밤 이후로,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며 '함께'의 가치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이렇게,
함께하니,
참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