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헤어지지 않고 나를 지켰다

관계를 지치게 만드는 소유의 사랑을 넘어서

by 하레온

그토록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외로워지는가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관계를 맺는데,


그 관계 안에서 종종 길을 잃고 외로워집니다.


함께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죠.


"나를 사랑한다면 이럴 수 없어."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해."


이런 말들이 우리 사이를 떠다닐 때,


사랑은 기쁨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됩니다.


분명 서로를 향한 마음은 진심인데, 왜 우리는 자꾸만 힘들어지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는 사랑의 방식을 처음부터 잘못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상대를 내 삶에 꼭 맞춰 끼워야 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 줄 유일한 구원자처럼 여겼던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은 그 익숙하지만 아팠던 사랑의 방식에 대한 작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당신의 사랑은 상대를 가지려는 ‘소유’인가요,


아니면 그저 나란히 함께 걷는 ‘동행’인가요.




1장: 당신의 사랑은 ‘소유’인가요, ‘동행’인가요?

Whisk_58089d6f2b5a91487c54b3758641bce5dr.jpeg 아름답지만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새장 입구에 새 한 마리가 앉아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이미지.


우리는 너무 쉽게 ‘내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속에는 따스한 애정이 담겨 있지만,


때로는 스르르 ‘소유’의 그림자가 스며들기도 합니다.


‘소유적 사랑’이란,


상대를 나의 안정감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무의식적인 마음입니다.


상대의 시간, 감정, 생각까지


나의 통제 아래 두려 할 때,


사랑은 빛을 잃고 집착이라는 이름의 감옥이 됩니다.


그 뿌리에는 깊은 불안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떠나면 어떡하지?’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기면 어떡하지?’


이 두려움은 상대의 모든 것을 궁금하게 만들고,


결국 ‘너’라는 고유한 존재는 사라지고


나의 불안을 잠재워줄 ‘대상’만 남게 되는 것이죠.


그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 사랑은 내게서 ‘나’를 잃게 만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랑은 함께 걷는 일이지, 서로를 들고 뛰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반면, ‘동행적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잃지 않고


나란히 걸어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무관심이나 방임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깊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죠.


‘나는 너 없이도 온전히 설 수 있지만,


너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참 행복하다.’


이런 마음의 고백에 더 가깝습니다.


동행하는 관계에서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넓혀주는 창문이 됩니다.


상대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그의 기쁨을 나의 기쁨처럼 여기게 되죠.


이러한 차이는 심리학, 특히 ‘애착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형성된 관계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큰 사람일수록,


상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고,


이는 관계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소유’의 방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원한다면,


상대를 바꾸려 애쓰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그 마음의 뿌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2장: ‘우리’를 지키는 건강한 거리의 미학

Image_fx - 2025-10-06T132524.857.jpg 어두운 배경 속에서 서로를 향하지만 닿지 않는 두 손, 그 사이에 건강한 경계선을 상징하는 밝은 선이 그려져 있다.


‘소유’의 마음을 덜어내고 ‘동행’의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로, 건강한 거리를 만들 용기입니다.


여기서 거리는 포기가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울타리, ‘경계선’을 의미합니다.


경계선이란, 내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책임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부터는 상대의 몫인지를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이 울타리가 없으면 우리는 상대의 감정까지


모두 내 책임인 양 짊어지게 됩니다.


혹은, 내 감정을 상대에게 무분별하게 쏟아내며 그를 지치게 만들죠.


건강한 경계선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길게 지켜주는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네가 원하더라도, 이건 내가 해줄 수 없어.”


“나는 너의 감정을 존중하지만, 거기에 휘둘리지는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 ‘자기분화’입니다.


주변의 감정적 압박이나 기대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고요히 유지하는 힘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는 순간에도,


그의 분노가 나에 대한 비난의 전부가 아님을 이해하고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함.


이것이 바로 ‘동행’을 가능하게 하는 내면의 힘입니다.


혜진 씨(34세)의 세상은 늘 남자친구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연락이 조금만 늦어져도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죠.


그녀의 집착이 심해질수록 관계는 늘 비슷한 패턴으로 끝났습니다.


‘자기 상실’에서 ‘불안 기반 통제’로, 그리고 ‘의존’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소유적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연인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민(29세, 직장인)은 팀 내에서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다 지쳐 있었습니다.


거절하지 못해 늘 과도한 업무를 떠안았고,


회식에 빠지면 소외될까 두려워 무리했습니다.


그는 ‘좋은 팀원’이라는 소속감에 집착했지만, 마음은 늘 공허했습니다.


관계는 ‘소속’이 아니라 ‘동행’임을 깨달은 순간,


그는 비로소 혼자 점심을 먹어도 외롭지 않은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지훈 씨(38세)는 ‘동행’의 의미를 압니다.


그의 연인이 3개월간 해외 연수를 떠났을 때,


그는 불안해하는 대신 그녀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만의 프로젝트에 집중했죠.


그는 말합니다.


“그녀가 없어도 제 하루는 무너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가 있기에 제 세상은 훨씬 더 다채로워지죠.”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관계 안에서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Mini Workbook] 나의 관계 건강 점검하기


잠시 멈춰, 당신의 마음에 질문을 던져보세요.


최근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상대의 행동 때문인가요, 내 안의 특정 불안 때문인가요?)


나는 상대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나요?


상대방에게 ‘No’라고 말해야 할 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망설인 경험이 있나요?


관계가 잠시 멀어진다고 느낄 때, ‘끝’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들에 완벽한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내 마음의 풍경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한 줄 체크리스트] 나의 동행 지수 점검하기


아래 문장들을 조용히 읽어보세요. 내 마음과 얼마나 가까운가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이 아닌 평온으로 채운다."


"나는 상대의 세상을 존중하며, 나의 세상도 지켜낸다."


"나의 가치는 관계의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비롯된다."


"거절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건강한 경계선이다."


"나는 상대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있다."


"거리는 사랑의 끝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일 수 있다."




에필로그: 각자의 길 위에서, 기꺼이 함께

Image_fx - 2025-10-06T132557.118.jpg 해질녘 해변의 모래사장 위, 수평선을 향해 나란히 찍혀있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동행을 암시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수없이 흔들립니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 서로를 할퀴고,


때로는 너무 멀어져 외로워하기도 합니다.


완벽한 관계란 아마 세상에 없을 겁니다.


늘 평온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관계란 환상에 가깝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압니다.


관계의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각자의 중심을 지키며


다시 함께 걸어가려는 ‘노력’에 있다는 것을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건강한 거리를 존중하며,


‘나’로 온전히 설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안정적인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조금 더 밝힐 수는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관계이고, 살아간다는 일일 테니까요.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6화나는 당신과 적당히 멀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