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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지는 잘못이 없다

95%의 무의식을 이기는 '관찰하는 자'의 힘

by 하레온

반복되는 삶, 그 이면의 질문


다짐은 분명했는데, 또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이번엔 다를 거라 믿었지만,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 이상합니다. 저는 왜 늘 같은 길로, 같은 목적지로 돌아오는 걸까요?


새해 다짐이 1월을 넘기지 못할 때,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어김없이 SNS를 켤 때, 혹은 특정 인물 앞에서 유독 말문이 막히고 작아질 때. 우리는 스스로를 탓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하지만 이 글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만약 이것이 당신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당신도 모르게 설치된 '자동 프로그램'의 문제라면 어떨까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효율성을 숭배하는 뇌가 만들어낸 아주 오래된 '패턴'의 문제라면 말입니다.


우리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바뀐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지독한 반복의 고리는 의지만으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내 삶을 뒤에서 움직이는 그 보이지 않는 패턴을, 그 스크립트를, '알아차리는' 순간에 말입니다.




본론: 삶의 패턴을 해독하는 의식의 눈

Image_fx - 2025-10-29T211333.436.jpg 끝없이 반복되는 원형 미로에 갇힌 자동차 핸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흑백 일러스트


1. 무의식은 어떻게 '패턴'을 만드는가


당신의 인생을 대신 운전하는 '자동 운전'


우리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게으릅니다. 아니,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뇌는 생존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자동화하려 합니다. 우리가 매번 숨 쉬는 법이나 젓가락질하는 법을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 고마운 자동화가 삶의 영역까지 확장될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뇌과학에는 '함께 활성화된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헤비안 법칙)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결국 뇌는 반복된 길을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익숙함이 곧 효율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솔직하게 말했다가 크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자극: 갈등] → [반응: 침묵] → [결과: 안전 확보]. 이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 뇌의 특정 회로가 굵고 단단해집니다. 나중에는 갈등의 'ㄱ'자만 보여도, 생각할 틈도 없이 '침묵'이라는 자동 프로그램이 실행됩니다.


뇌의 기저핵은 말하자면 이 '자동 운전 시스템'의 관제탑입니다. 우리가 생각 없이도 익숙한 반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죠. 뇌는 에너지를 아꼈다고 좋아하지만, 정작 '나'는 원치 않는 목적지(소통 단절, 오해)에 도착해 있는 것입니다.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코드


그래서 이 패턴들은 '무의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우리 삶의 90%를 실행하는 거대한 '운영체제(OS)'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가 5살, 15살 때 '생존'을 위해 급조한 낡은 코드라는 점입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해.", "튀면 위험해." 같은 코드들 말이죠. 그때는 나를 지켜줬을지 몰라도, 40대가 된 지금의 내 삶을 여전히 뒤에서 조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백그라운드 코드'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그저 화면에 뜨는 오류(반복되는 실패)만 보며 좌절합니다.



2. 반복의 늪: 우리는 왜 패턴을 깨닫지 못하는가

Image_fx - 2025-10-29T211449.854.jpg 높고 거대한 벽 앞에 나란히 서서 그림자에 갇힌 세 명의 추상적인 인물들

그 익숙함이라는 감옥


이렇게 명백한데, 왜 우리는 이 자동 운전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첫째, 그 패턴이 주는 '익숙한 안정감' 때문입니다. 비록 그 결과가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과정은 내게 가장 익숙한 길입니다. 뇌는 '새롭고 낯선 행복'보다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불행'을 선호합니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익숙함을 '나'라고 착각합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고 말이죠.


둘째, 패턴은 '나'라는 정체성과 너무나 단단히 융합되어 있어서입니다. 그것을 분리해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나'라고 믿는 한, 우리는 패턴의 노예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 늪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례 A: '완벽주의자' 크리에이터 (두려움 기반)


재능이 있지만, 늘 마감에 쫓깁니다. 기획안 첫 문장을 쓰지 못해 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이면에는 '나의 결과물이 비난받으면, 나라는 존재가 거부당하는 거야'라는 '두려움 기반'의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실패=존재 거부'라는 낡은 코드가, 그녀가 '시작'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녀의 행동 패턴은 '미루기'입니다.


하지만 지난주, 그녀는 처음으로 완벽하지 않은 기획안의 첫 문장을 썼습니다. 아주 작은 시작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균열'이었습니다.



사례 B: '예스맨' 팀장 (인정 기반)


유능하지만, 번아웃 직전입니다. 팀원의 일까지 떠맡아 야근을 반복합니다. '아니오'라는 말을 못 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내 가치가 증명된다'는 '인정 기반'의 패턴입니다. 그의 '네, 제가 할게요'라는 말은 친절함이 아니라, '저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자동반사입니다.



사례 C: '갈등 회피형' 파트너 (상처 기반)


연인과 사소한 의견 충돌이 생기자,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동굴로 들어갑니다. 잠수를 타죠. '갈등은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상처 기반'의 패턴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대신 '회피'하는, 어린 시절의 공포가 프로그래밍된 자동 프로그램이 즉시 실행된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동화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선택'이 아니라 '반응'이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자각'이라는 빛: 의식을 여는 유일한 열쇠

Image_fx - 2025-10-29T211538.974.jpg 어두운 공간 속에서 '켬' 상태의 전등 스위치를 비추는 한 줄기 밝은 빛


싸우지 말고, 그저 바라보세요


그렇다면 이 견고한 패턴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의지로? 더 강력한 결심으로? 아닙니다. 이 글이 제안하는 유일한 열쇠는 '자각(Awareness)'입니다.


'자각'은 자동 운전 중에 "어?"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입니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는 행위가 아닙니다. '아, 내가 지금 자동 운전 모드였구나'라고 인지하는 그 찰나입니다. 판단이나 비난 없이, 그저 '보는' 것입니다.


이 자각의 순간은 아주 짧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죠. 같은 말을 듣고도 예전처럼 욱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 상황 안에 있지만, 더 이상 그 안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패턴과 나 사이에 '틈'이 생기는, 그 고요한 해방감입니다.


'관찰하는 자'의 시선


패턴은 '무의식'이라는 어둠 속에서만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자각'이라는 빛을 비추는 순간, 패턴은 그 정체를 드러내고 더 이상 우리를 100% 지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관찰하는 자(The Observer)'의 시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패턴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 '불안'이라는 손님이 또 찾아왔군.' '내 안의 5살짜리 아이가 또 겁을 먹었네.' 이렇게 패턴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패턴에 휘둘리는 피해자에서 패턴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정체성을 전환하게 됩니다.



4. 의식적 삶으로의 전환


'자각'이 곧 '해방'입니다


많은 분이 자각 이후에 '그래서 이제 뭘 해야 하죠?'라고 묻습니다. 패턴을 '고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자각이 곧 해방'이라는 점입니다.


'백그라운드 코드' 비유를 다시 가져와보겠습니다. '자각'은 F12를 눌러 '개발자 도구'를 여는 순간입니다. 내 삶을 멈추게 했던 그 낡은 코드가 내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이죠.


이전까지 우리는 그 코드를 볼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코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코드의 힘은 약해집니다. "아, 이 코드 한 줄이 문제였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코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자동 운전' 모드에서 '수동 운전' 모드로 기어를 바꿀 기회를 얻습니다. 핸들을 잡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관찰하는 자'가 운전석에 앉게 되는 그 순간, 우리의 의식적인 삶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결론: 당신의 삶은 '지금' 다시 쓰여진다


이 글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반복되는 삶의 굴레를 끊는 힘은 '더 나은 의지'가 아니라 '더 깊은 자각'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패턴을 없애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패턴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심지어 그것이 왜 생겨났는지 연민하는 것입니다. 그 낡은 코드는, 한때 우리를 지키려 했던 절박한 방어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완벽한 선택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동 운전' 모드임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점점 더 잦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아차렸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아, 또 그랬네. 괜찮아"라며 다시 핸들을 잡는 것입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첫걸음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각은 과거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을 되찾는 기술입니다. 당신의 삶은, 바로 이 '알아차리는 지금'에서 다시 쓰여집니다.




[부록]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4가지 실천 도구


[도구 1] '패턴 관찰'을 위한 3가지 질문 (판단 없이 기록하기)

자책이나 분석이 아닌, '데이터 수집'으로서의 관찰이 핵심입니다.

신호 (Cue): "어떤 순간(상황, 사람, 생각)에 내 마음이 강하게 동요했는가?"

루틴 (Routine): "그때 나는 '자동으로' 무슨 생각/감정/행동을 했는가?"

보상 (Reward): "그 행동 직후, 어떤 '즉각적인' 느낌(안도감, 쾌감, 회피)을 얻었는가?"


[도구 2] '관찰하는 자' 스위치 켜기: 이름 붙이기

자신의 가장 강력한 패턴에 별명을 붙여주세요. (예: '완벽주의 유령', '착한 아이 콤플렉스', '도망자 모드')

효과: "내가 또 이러네"라고 자책하는 대신, "아, '도망자 모드'가 켜졌군"이라고 객관화(외재화)할 수 있습니다. '나'와 '패턴'을 분리시켜 심리적 공간을 즉시 확보합니다.


[도구 3] '지금'으로 돌아오는 3초 호흡 자각

패턴이 활성화됨을 느낄 때 (예: 가슴이 답답하거나, 화가 치밀 때),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3번의 깊은 호흡에만 집중합니다.

효과: 자동화된 뇌(편도체)에서 의식적인 뇌(전전두피질)로 혈류를 이동시킵니다. 강제적인 '일시 정지'를 통해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고 '관찰하는 자'의 시선을 되찾습니다.


[도구 4] 패턴 '재보기' 루틴 (기록을 데이터로 만들기)

하루를 마감할 때, [도구 1]로 기록한 오늘의 패턴들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리고 오늘 가장 자주 반복된 '감정'이나 '패턴'을 딱 한 줄로 요약합니다.

효과: 단순 기록이 '패턴의 시각화'로 전환됩니다. "내가 오늘 '불안' 때문에 3번의 회피를 선택했구나"를 인지하게 됩니다. 이는 자각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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