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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살아낸 것만으로 충분하다

성취 없는 하루에 자책하는 당신에게

by 하레온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숨 가쁘게 달려온 하루의 끝,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혹시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에 휩싸인 적 없으신가요.


어두운 방안,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를 때


문득 허탈한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오늘… 대체 뭘 한 거지?’


분명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움직였습니다.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고, 쏟아지는 메시지에 답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애써 웃어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기억에 남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은 속절없이 가라앉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 있는 하루라고,


대단한 성취가 있어야만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다고


그렇게 배워왔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볼까요.


그런 하루가, 그런 날들이 얼마나 될까요.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오늘 뭘 했지?’라는 날카로운 자책을 멈추고, ‘오늘도 살아냈구나’라는 가장 따뜻한 위로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하여.





1부 1장: 끝나지 않는 경쟁, '성취 중독 사회'


우리는 모두 ‘성취 중독 사회’라는 거대한 궤도 위를 달리는 경주마와 같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다시 채찍질을 가하죠. SNS를 열면 세상은 온통 성공 신화로 가득합니다. 누군가는 눈부신 승진을 하고, 누군가는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놀라운 자기 계발의 성과를 자랑합니다. 그 반짝이는 세상 속에서 나의 하루는 유독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타인의 시선과 기대가 어떻게 우리 내면을 잠식하는지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고, 그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완벽하게’라는 사회의 속삭임은 어느새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압박감. 이것이 바로 번아웃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쉼표를 스스로에게 결코 허락하지 않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주에서 오는 깊은 피로감 때문입니다.




1부 2장: 나를 갉아먹는 목소리, '완벽주의라는 감옥'


세상의 목소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일지 모릅니다.


하루의 끝, 조용히 눈을 감을 때면


어김없이 그 목소리가 말을 걸어옵니다.


‘오늘 그것밖에 못했어?’


‘더 잘할 수 있었잖아. 왜 그렇게밖에 못했니.’


‘네가 부족해서 그래.’


실수 하나에 온종일 마음이 쓰이고,


사소한 비판에도 나는 역시 안된다며 자책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휴일에는 죄책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목소리.


우리는 이 목소리를 ‘성실함’ 혹은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감옥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아주 작은 쉼도 허락하지 않는


스스로 만든 그 감옥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무너지고 아파했나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강한 채찍질이 아니라,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드는 무거운 족쇄가 되어버린


그 목소리로부터, 이제는 벗어날 시간입니다.


Image_fx - 2025-08-31T102239.509.jpg 창가 테이블 위에 놓인 따뜻한 찻잔. 잠시 멈춰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2부 3장: '버티어 냄'이라는 위대한 성취


우리는 ‘성취’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 다른 사람의 인정, 극적인 변화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의 하루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무언가를 이루는(Achievement)’ 관점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버티어 내는(Endurance)’ 관점으로 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오늘 하루의 시간을 건너온 것.


출근하기 싫은 아침, 기어이 몸을 일으켜 현관을 나선 것.


까다로운 상사의 말을 속으로 삭이며 견뎌낸 것.


산더미 같던 하기 싫은 일을 마침내 끝마친 것.


어려운 인간관계 속에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인 것.


이유 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을 그저 흘려보내려 애쓴 것.


이 모든 것이야말로 ‘버티어 냄’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성취입니다. 법정 스님은 ‘텅 빈 충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무언가로 가득 채우지 않아도, 비어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 충만할 수 있다는 지혜입니다. 우리의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성공으로 채우지 못했더라도, 그 하루를 살아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고 충만한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위대한 대성당을 짓는 공사장이 있었습니다. 한 여행자가 그곳을 지나다 똑같은 크기의 돌을 망치로 깨고 있는 세 명의 석공을 만났습니다. 여행자는 첫 번째 석공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석공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습니다.


“보면 모르시오? 빌어먹을 돌덩이를 깨고 있잖소. 죽지 못해 하는 일이오.”


여행자는 두 번째 석공에게 다가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있소. 이 일을 해야 저녁거리를 살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여행자는 세 번째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우리가 어떤 의미와 관점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하루의 빛깔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신의 고단한 하루는 그저 ‘빌어먹을 돌덩이’를 깨는 시간인가요? 아니면 당신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 소중한 과정인가요?




2부 4장: 나를 안아주는 가장 따뜻한 방법, 자기 자비(Self-compassion)


‘버티어 냄’의 가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 자비(Self-compassion)’입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제안한 이 개념은, 단순히 자신을 동정하거나 무조건 괜찮다고 합리화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자비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친절하기’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힘들어할 때처럼, 실패하고 부족한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보편적 인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만 유독 부족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 실패와 고통은 모든 인간이 겪는 삶의 일부임을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마지막은 ‘마음챙김’입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외면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부드럽게 알아차려 주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비란, 나의 불완전함을 포함한 나 자신을, 가장 따뜻하고 지혜로운 친구가 되어 안아주는 기술입니다. 스스로에게 적이 되는 것을 멈추고,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연습입니다.


나를 안아주는 가장 따뜻한 방법은


결코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속삭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루 업무를 망쳤다는 자책감이 들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해주세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초라함이 밀려올 때,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일러주세요.


‘사람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야. 너는 너의 길을 가면 돼.’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밤에,


그저 이 한마디를 건네주세요.


‘오늘 하루, 정말 애썼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거야.’


나의 감정을 알아주고,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나의 존재를 긍정해주는 것.


이 작은 친절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자기 신뢰의 뿌리가 됩니다.


세상 가장 따뜻한 위로는, 바로 나 자신에게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Image_fx - 2025-08-31T102356.541.jpg 창문으로 달빛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고요한 침실. 평온한 하루의 마무리를 나타낸다.


맺음말: 이만하면 되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주 작은 약속 하나만 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루를 되짚으며 잘한 일과 못한 일을 따져 점수를 매기는 대신,


오늘의 나를 평가하고 심판하는 일을 잠시 멈추는 겁니다.


그리고 그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여주는 겁니다.


‘오늘 하루, 살아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대단한 일이 없었어도 괜찮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애썼어.’


‘이만하면 되었다.’


거창한 내일의 계획보다, 아쉬웠던 어제의 후회보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을 버텨낸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 마음 하나면


우리는 충분합니다.


베트남의 평화 운동가이자 스승인 틱낫한 스님은 말했습니다.


“기적은 물 위를 걷거나 공중을 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기적은 지금 이 순간, 땅 위를 걷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낸 평범한 오늘 하루가 바로 기적입니다.


부디, 평온한 밤 맞이하시길.


이만하면, 정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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