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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를 연습합니다

무너진 관계를 다시 세우는 아주 작은 습관들

by 하레온

들어가며: 우리는 왜 외로울까?


수많은 사람과 연결된 시대.


우리는 왜 더 자주 외로운 걸까.


SNS 피드 속에는 친구들의 행복한 순간이 가득하고,


클릭 한 번이면 세상 반대편의 소식도 알 수 있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손을 잡아야 하는지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이러한 상태를 ‘아노미(Anomie)’라고 불렀습니다.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이 무너져, 개인이 세상에 홀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상태.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입니다.



마치 추운 겨울,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거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잃어버렸던 ‘우리’라는 집의 설계도를 함께 찾아 나서려 합니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되는 따뜻한 화학 작용에 대하여.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믿어보려 합니다.




1. 우리는 왜 자꾸 서로에게 벽을 세울까?

Image_fx - 2025-09-02T214705.484.jpg 두 추상적인 인물 사이에 높은 벽이 세워져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단절과 오해를 상징하는 미니멀리즘 일러스트


우리에게 안식처가 되어줄 집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막상 누군가와 함께 집을 짓는 일은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는 데 더 익숙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 손에 들린 설계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함께 집을 짓는 과정'이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벽을 세우는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왜 우리에게 '집(공동체)'이 필요한가?


앞서 이야기한 '아노미'는 집 없는 상태의 위험을 말해줍니다. 사회적 연결과 소속감이라는 보호막이 없을 때, 개인은 불안과 무력감에 쉽게 휩쓸립니다. 집은 추위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둘째, 누구와 함께 집을 지을 것인가?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합니다. '어떤 팀'에 속해있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자부심을 줍니다. 우리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우리'라는 팀을 꾸려 함께 집을 짓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어떤 방식으로 집을 지을 것인가?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은 우리가 관계의 토대를 쌓는 방식을 설명하는 '설계도'와 같습니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경험은 성인이 되어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안정적인 설계도를 가진 사람은 견고하고 따뜻한 집을 짓는 데 능숙하지만, 불안정한 설계도를 가졌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상대를 얼마큼 믿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벽을 세우는 이유는,


마음속 설계도가 불안정하고,


누구와 함께 팀을 이뤄야 할지 확신이 없으며,


집 없는 상태의 외로움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 당신의 관계는 안녕하신가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성장 신호들

Image_fx - 2025-09-02T214800.275.jpg 어둡고 텅 빈 공간을 가로지르는, 따뜻하게 빛나는 민들레 홀씨 하나가 희망과 연결의 신호를 상징하는 미니멀리즘 일러스트


"타인은 지옥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이 말은 종종 관계에 대한 냉소적인 결론처럼 인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의 본뜻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모든 타인이 본질적으로 지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나를 가두고, 진정한 관계 맺기에 실패했을 때'


우리의 삶이 지옥처럼 변할 수 있다는 통찰에 가깝습니다.


잘못 지어진 집이 안식처가 아닌 감옥이 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이 아닌 천국을 만드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버드 대학에서 75년 이상 진행된 성인 발달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연구의 결론은 놀랍도록 간단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닌, 바로 '좋은 관계'였습니다.



연구 속 수많은 삶의 궤적은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80대의 나이에도 행복했던 A와 불행했던 B의 가장 큰 차이는 재산도, 건강도 아니었습니다. A의 곁에는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슬플 때 기댈 수 있는 아내와 친구들이 있었고, B는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연구의 결과가 당신의 삶과 너무 멀게 느껴지나요?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성장 신호들을 일상 속에서 마주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수백 개의 '좋아요'보다, 늦은 밤 '괜찮아?'라고 묻는 친구의 카톡 하나가 더 큰 위로가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팬데믹 시절, 배달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는 작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이름 모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진 않으셨나요?


이런 사소하지만 따뜻한 '마이크로 모멘트(Micro-moment)'들이 바로 당신의 관계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그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조금 더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3.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늘 당장, '우리'가 되는 작은 연습

Image_fx - 2025-09-02T214851.933.jpg 따뜻한 색감의 작은 나무 블록을 조심스럽게 쌓아 올리는 손을 클로즈업하여 관계를 만드는 작은 실천을 상징하는 미니멀리즘 일러스트


'우리'라는 집을 짓는 일이 거창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큰 건축은 작은 벽돌 한 장을 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통해 나의 현재 관계 건강 상태를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관계 건강 진단 체크리스트]


최근 일주일 동안, 나는...


[ ] 누군가의 이야기를 판단 없이 끝까지 들어준 적이 있다.


[ ] 나의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 ] 누군가와 함께 웃거나, 함께 분노한 경험이 있다.


[ ]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적이 있다.


[ ] 아무런 목적 없이 누군가와 편안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결과가 어떻든 괜찮습니다.


이 체크리스트는 점수를 매기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작은 이정표일 뿐입니다.


이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는 작은 연습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벽돌: 공감이라는 시멘트


상대방의 이야기에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읽어주는 것.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라는 짧은 한마디가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장 단단한 시멘트가 됩니다.



두 번째 벽돌: 신뢰라는 기둥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기보다,


가끔은 나의 부족하고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요즘 조금 힘들어"라는 고백이


서로를 기댈 수 있게 하는 튼튼한 기둥을 세웁니다.



세 번째 벽돌: 공유된 경험이라는 지붕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아주 작은 순간들.


그렇게 쌓인 시간의 조각들이 비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지붕이 되어줄 겁니다.




맺음말: 함께라는 최소한의 조건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된다는 것은,


나의 개성을 잃고 무리에 흡수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라는 작은 방에서 나와,


'너'라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


'우리'라는 훨씬 더 넓고 다채로운 집을 함께 짓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공간과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찾아낸 설계도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서툴게 벽돌을 쌓다 무너뜨릴 수도 있고,


서로의 설계도가 달라 다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함께라는 집을 짓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한번 함께 쌓아 올리려는 '마음'일 테니까요.


오늘, 당신은 누구와 함께


첫 벽돌 한 장을 쌓아 올리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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