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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애쓰고 있을까

관계는 노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by 하레온

왜 우리는 관계에 그토록 애쓰는가


우리는 왜 이토록 관계에 애쓰는 걸까요?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내 감정을 숨기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연락이 뜸해지면 불안해서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느라 주말을 꼬박 바칩니다. 회식 자리에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웃으며 분위기를 맞추기도 하죠.


우리는 그렇게 노력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관계는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치고 힘들어집니다. 문득 '나만 이렇게 애쓰고 있나' 하는 억울함과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혹시, 우리가 붙잡고 있던 '노력'이라는 동아줄이 사실은 우리를 더 깊은 피로의 늪으로 끌어당기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관계를 위해 '노력'이라는 이름의 '과소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텅 빈 통장만 바라보듯, 감정을 소진하고 지쳐버린 자신만 남게 되는 것이죠.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관계는 노력이 아니라 '태도'로 유지된다는 것. 애쓰지 않아도 편안한 관계는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려 합니다. 불필요한 노력을 내려놓고, 당신의 관계에 '해방감'을 선물할 사소하지만 강력한 태도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부. 노력의 배신, 태도의 발견

Image_fx - 2025-09-16T105439.406.jpg 거대하고 무거운 사각형 블록을 위태롭게 받치고 서 있는 사람의 미니멀한 실루엣


1장. '과잉 노력'이 관계를 망치는 이유


'과잉 노력'은, 앞서 말했듯 "관계의 과소비"입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때로는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행위죠.


물론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애쓰는 만큼 상대방도 고마워하는 것 같고, 관계도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과소비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합니다.


첫째, 내가 먼저 지칩니다.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감정 노동과 시간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결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과 번아웃이 찾아오죠.


둘째,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부담을 줍니다. 내가 100을 주면, 상대방도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부담스럽다"는 말은 그래서 나옵니다. 나의 과잉 노력은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 '너도 이만큼 해내라'는 무언의 청구서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만난 A씨를 떠올려 봅니다. 그는 상사의 모든 농담에 가장 크게 웃고, 주말 등산까지 따라다니며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프로젝트에서는 소외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애쓰는 사람'으로는 생각했지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신뢰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력은 관계를 망칩니다. 그것이 '과잉'일 때, 그리고 '나'를 지우는 방식일 때 더욱 그렇습니다.



2장. 관계는 기술이 아니다: 심리학이 말하는 태도의 힘


많은 관계서가 '말 잘하는 법', '마음을 얻는 기술'을 말합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기술은 금방 바닥을 드러냅니다. 관계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태도'는 "관계의 기본 자산"입니다. 억지로 꾸며내는 노력이 아니라,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이자 일관된 자세입니다. 이 자산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라는 이자를 붙여줍니다.


심리학은 이 '태도'의 중요성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먼저 '애착 이론'입니다. 우리의 관계 패턴은 상당 부분 초기 애착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관계가 단절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과잉 노력'에 매달리기 쉽습니다.


혹시 당신도 이런 신호를 갖고 있지 않나요?


상대의 연락이 조금만 뜸해져도 불안해서 먼저 연락하는 편인가?


관계가 끝날까 봐 두려워 내 의견이나 감정을 자주 숨기는가?


상대의 기분을 살피느라 내 에너지를 대부분 소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닙니다. 내면의 불안을 다스리고 상대를 믿는 '안정된 태도'입니다.


'사회적 교환 이론'은 관계를 '비용'과 '보상'의 관점에서 봅니다. 흔히 말하는 '관계의 ROI(투자 대비 효과)'죠.


이 관점에서 '과잉 노력'은 최악의 투자 전략입니다. 나의 감정, 시간, 돈을 무리하게 쏟아붓는 '고비용' 행위지만, 돌아오는 보상(진짜 신뢰나 편안함)은 적은 '저효율' 상태입니다. 결국 감정의 적자만 쌓이다 관계는 파산하고 맙니다.


반면 '태도'는 최고의 투자입니다. 진솔함, 일관성, 존중 같은 태도는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 '저비용' 행위입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깊은 신뢰라는 '고효율'의 보상을 안겨줍니다. 이것이 바로 관계의 기본 자산을 쌓는 법입니다.



3장. 뇌는 노력을 읽지 않는다: 비언어적 태도의 과학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해서,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진짜 의도'를 읽어냅니다.


UCLA의 앨버트 메러비언 교수의 유명한 '7-38-55 법칙'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소통에서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고, 목소리 톤(38%)과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55%)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론이죠.


물론 이 수치의 절대성은 여러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의 내용보다 비언어적 신호가 감정 전달에 훨씬 강력하다"는 핵심적인 흐름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의 뇌, 특히 감정을 감지하는 '편도체'는 상대의 '노력'이 담긴 말을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담긴 '태도'를 본능적으로 스캔합니다.


간단한 예로 '미소'를 들어볼까요? 억지로 입꼬리만 올리는 가짜 미소(서비스직의 '팬암 미소'처럼)와, 정말 기뻐서 눈까지 웃는 진짜 미소('뒤센 미소')는 뇌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노력'해서 말해도, 표정이 굳어있거나 눈을 피한다면, 뇌는 즉각 '불일치 신호'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말(노력)이 아닌, 그 비언어적 신호(태도)를 믿어버립니다. "이 사람은 나를 편안해하지 않는구나."


애써 꾸민 노력은 이처럼 뇌에게 '가짜'라는 신호를 보낼 뿐입니다. 진심이 담긴 태도만이 뇌의 경계심을 풀고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2부. 애쓰지 않아도 편안해지는 법

Image_fx - 2025-09-16T105532.457.jpg 잔잔한 물 위에 뜬 나뭇잎과 완벽한 균형을 이룬 조약돌 탑이 놓인 평온한 이미지


4장. 관계를 바꾸는 사소한 태도의 원칙


그렇다면 '과잉 노력'을 멈추고 '좋은 태도'라는 기본 자산을 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몇 가지 사소한 원칙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기, 당신의 관계를 편안하게 만들 5가지 '태도의 원칙'이 있습니다.


1. 자주가 아니라, 일관되게


매일 안부를 묻고 선물을 챙기는 '노력'보다, 1년에 한 번을 보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주 연락하는 사람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일관된 사람을 신뢰합니다.


2. 말이 아니라, 눈빛과 말투로


"널 정말 생각해"라는 백 마디 말(노력)보다, 상대가 말할 때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눈을 맞추며 경청하는 '태도'가 강력합니다. 뇌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의 눈빛과 말투에서 진심을 읽기 때문입니다.


3. 내가 아니라, 상대 기준으로 존중하기


내가 주고 싶은 비싼 선물을 안겨주는 것은 '노력'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태도'입니다. 진정한 존중은 상대를 내 기준이 아닌, 상대의 기준에서 배려하는 마음가짐에서 나옵니다.


4. 먼저가 아니라, 필요할 때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먼저 나서서 모든 것을 챙겨주려 하는 것은 '과잉 노력'입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적절한 거리를 두다가, 상대가 "도와줘"라고 손을 내밀었을 때 기꺼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은 '태도'입니다.


5. 애쓰는 관계가 아니라, 편안한 관계 지향하기


스티브 잡스는 불필요한 사내 친목(노력)은 배제했지만, 회의에서는 직급과 상관없이 아이디어 자체를 존중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 마세요.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이라는 태도를 지향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건강해집니다.



5장. 불필요한 노력을 멈추는 연습


이 원칙들을 어떻게 일상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1부에서 말했던 '과잉 노력'의 사례들에 '태도의 원칙'을 적용해 봅시다.


매일 연락하고 선물을 챙기다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었던 연인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주가 아니라, 일관되게' 원칙을 적용해 보세요. 매일 하는 의무적인 연락(노력) 대신, 함께 있을 때 '말이 아니라, 눈빛과 말투로' 온전히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겁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에너지를 소진했던 직장인이라면요? '애쓰는 관계가 아니라, 편안한 관계'를 지향해 보세요. 모든 회식에 참여하는 노력 대신, 업무 시간에 동료의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거나 '필요할 때' 작은 도움을 건네는 일관된 태도가 당신의 신뢰를 더 높여줄 것입니다.


명절마다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하며 지쳤던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니라, 상대 기준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연습해 보세요.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노력 대신, 가족들에게 명확히 도움을 요청하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는 겁니다. 조금 서툴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노력이 아니라, 함께하려는 태도니까요.




에필로그: 당신의 태도가 당신의 관계를 결정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관계를 '풀어야 할 숙제'처럼 여겨왔습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애써야만 정답을 맞힐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것은 명확합니다. 관계는 숙제가 아니라, 함께 가꾸는 정원입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과잉 노력) 뿌리가 썩어버리지만, 적절한 햇빛과 바람(일관된 태도)이 있다면 저절로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관계의 과소비'를 멈추고 '관계의 기본 자산'을 쌓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억지로 웃지 않아도, 그저 '나'라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진심은 꾸며낸 노력 속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소한 눈빛, 말투, 그리고 일관된 자세 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 바꿀 수 있는 것은 거대한 노력이 아니라, 아주 작은 태도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태도가 당신의 모든 관계를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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