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맞추는 게 아니라 맞아가는 것

두 개의 섬이 만나 바다가 되는 법

by 하레온

왜 우리는 관계에서 나만 애쓰는 기분이 들까?


친구의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밤을 새워준 적 없으신가요? 사랑하는 연인의 기분에 따라 내 하루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만 같을 때, 혹은 단체 생활 속에서 유독 나만 동동거리며 모두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듯한 기분에 씁쓸해진 적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는 관계에서 나만 애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요? 사랑받고 싶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노력이 어느새 나를 잃게 만드는 족쇄가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알게 모르게 ‘맞추는’ 법을 먼저 배운 것 같습니다. 상대의 세계에 나를 끼워 넣고, 내 마음의 모양을 깎아내면서까지 말이죠. 하지만 억지로 구겨 넣은 관계는 반드시 삐걱거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소진되고, 외로워집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노력해서 ‘잘 맞추는’ 방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신,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보는 건 어떨까요? 일방적으로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맞아가는’ 과정으로 말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맞아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킬 용기를 주고, 나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관계를 분별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여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명쾌한 통찰을 건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부: '맞추는' 관계에 지친 당신에게

Image_fx - 2025-08-28T101114.597.jpg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풀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힌 금빛 실타래를 막막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감성적인 시네마틱 일러스트



1장. 가면을 쓴 관계: 애착 이론으로 본 나의 관계 패턴


관계가 버겁게 느껴질 때, 우리는 종종 가면을 씁니다. ‘괜찮은 척’하는 가면, ‘나는 아무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가면. 그 가면 뒤에 불안하고 상처받은 진짜 내 모습을 숨겨둔 채 말이죠. 왜 우리는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연극을 하듯 관계를 이어가게 되는 걸까요?


심리학의 ‘애착 이론’은 그 뿌리가 우리의 어린 시절에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 유형이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 맺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혹시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늘 불안한가요?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끊임없이 그의 마음에 나를 맞추려 애쓰고 있나요?


(불안형 애착)


혹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답답하고 부담스러운가요?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애초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지는 않았나요?


(회피형 애착)


나의 관계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과거에 얽매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왜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그 뿌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힘을 얻게 됩니다. 나의 오래된 가면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2장. 왜 거절하지 못할까?: 아들러가 말하는 인정욕구의 그림자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이 짧은 한마디가 왜 그토록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걸까요? 내키지 않는 약속에 끌려가고, 버거운 부탁을 떠안으며 속으로만 끙끙 앓았던 경험. 이런 어려움의 중심에는 ‘인정욕구’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지 모릅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욕구가 삶의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나를 가두게 됩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나의 욕구는 몇 번이고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는 ‘나의 과제’이지만, 그 결정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타인의 과제’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과제까지 짊어지려 하기에 관계가 무거워지고,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미움받을 용기’란, 모든 사람에게 미움받으라는 뜻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나를 포기하지 않을 용기,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3장. 손익을 따지는 게 나쁜 걸까?: 사회 교환 이론으로 본 관계의 균형


관계에서 ‘손익’을 이야기하면 어쩐지 속물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잠시만 솔직해져 볼까요? 우리는 누구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주고, 또 무언가를 받습니다. 사회 교환 이론은 이 당연한 사실을 통해 관계의 건강성을 진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손익은 돈이나 물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들이는 비용(cost)은 나의 시간, 노력, 감정적 지지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로부터 얻는 보상(reward)은 안정감, 기쁨, 위로, 함께 성장하는 느낌 같은 것들이죠.


‘맞추는 관계’는 이 저울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비용을 치르는데, 돌아오는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일 때, 우리는 소진되고 지쳐갑니다. ‘나만 애쓴다’는 느낌은 바로 이 불균형에서 오는 당연한 신호입니다.


나의 관계 저울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와 상대방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세워진 관계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보상을 주고받으며 함께 행복해지는 관계, 즉 ‘윈-윈’하는 관계만이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2부: 우리는 '맞아가는' 사이입니다

Image_fx - 2025-08-28T101223.939.jpg 어두운 공간에서 두 손이 마주 닿으려는 순간, 그 사이에서부터 금빛 나무가 찬란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담은 희망적인 시네마틱 일러스트

이제 ‘맞추는’ 관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맞아가는’ 관계로 나아갈 시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방법을 바꾸는 것이 아닌,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하는 여정입니다. 세 가지 은유를 통해 그 길을 함께 걸어가 볼까요?



4장. 함께, 우리라는 정원을 가꿉니다: 관계는 명사가 아닌 동사


관계는 완성된 정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땅에 씨앗을 심고 함께 가꾸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꽃이 필지, 어떤 나무가 자랄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서로의 마음에 ‘우리’라는 작은 씨앗을 심을 뿐이죠.


함께 흙을 고르고(서로를 알아가고),


매일 물을 주며(관심을 표현하고),


따스한 햇볕을 쬐어주어야(지지와 격려를 보내야)


씨앗은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물론, 정원을 가꾸는 일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때로는 가뭄이 들어 땅이 메마르기도 하고(권태기), 예상치 못한 해충이 생겨나기도 합니다(외부의 갈등). 자라나는 잡초를 뽑아내야 하는(오해와 갈등 해결) 수고로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나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애쓰는 정원은 금세 황폐해지고 맙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나갈 때, 우리의 정원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풍경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관계는 완성된 명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꾸어가는 동사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5장. 서툴지만 즐거운 스텝을: 서두르지 않고 호흡을 맞추는 법


‘맞추는 관계’가 상대가 정해놓은 스텝에 내 발을 억지로 맞추는 것이라면, ‘맞아가는 관계’는 서로의 리듬을 느끼며 함께 새로운 춤을 만들어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안무도, 완벽한 동작도 없습니다. 오직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다음 스텝을 밟아나갈 뿐입니다.


처음에는 분명 서툴고 어색할 겁니다. 때로는 발이 엉켜 넘어지기도 하고, 음악의 박자를 놓치기도 하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다고, 함께 웃으며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은 조금 빠른 스텝을 좋아하는군요."


"나는 조금 느리게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껴요."


서로의 리듬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만의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상대의 스텝을 존중하고 나의 스텝을 알려주며, 서로의 호흡에 몸을 맡기는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완벽한 공연을 위한 춤이 아니라, 그저 함께 추는 과정 자체가 목적인 춤. 그것이 바로 ‘맞아가는 관계’의 모습이 아닐까요.


6장. 당신의 언어를 배우겠습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소통의 기술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와 같습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자신만의 ‘감정의 언어’와 ‘생각의 사전’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같은 단어를 듣고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곤 합니다. 수많은 오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맞아가는 관계’란,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려는 겸손한 노력과 같습니다. 그의 사전을 통째로 외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자주 쓰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뉘앙스로 그 말을 하는지 배우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정말 괜찮다는 뜻인지, 아니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뜻인지 한 번 더 귀 기울여 보는 것. 상대가 침묵할 때, 그 침묵이 ‘화가 났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인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물어봐 주는 것.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꾸준한 관심과 질문, 그리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서툴고 더딜지라도, 당신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최고의 소통일 겁니다. 그렇게 서로의 언어에 능숙해질 때, 우리는 오해의 벽을 넘어 깊은 이해의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모든 관계에는 각자의 시차가 있다

Image_fx - 2025-08-28T101431.976.jpg 어두운 배경의 열쇠 구멍 너머에서부터 따뜻하고 눈부신 금빛 입자들이 쏟아져 나와 새로운 길을 비추는 듯한 감성적인 시네마틱 일러스트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혹은 기존의 관계를 돌아볼 때 우리는 종종 조급해집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가까워지지 못할까? 왜 이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씨앗이 같은 속도로 싹을 틔우지 않듯, 모든 관계에는 각자의 속도와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관계의 시차’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관계는 봄날 벚꽃처럼 순식간에 만개했다 지고, 어떤 관계는 오랜 시간 땅속에 머물다 아주 천천히 싹을 틔웁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속도를 존중하고, 다른 관계와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맞추는 관계’에서 ‘맞아가는 관계’로의 전환 역시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마법이 아닙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되돌아가고, 다시 용기를 내는 과정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습니다. 이 글을 덮고 난 뒤, 당신의 삶에서 아주 작은 것 하나만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왜?’라고 판단하기 전에 ‘아,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구나’라고 먼저 그의 시선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 작은 시도 하나가 당신의 관계에 건강한 파동을 일으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의 모든 관계가, 억지로 맞추는 괴로움이 아닌 함께 맞아가는 기쁨으로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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