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대체적 헌신
나루토 속 카카시는 늘 침착하고 냉정해 보인다.
그 내면에는 깊은 상실과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동료를 잃고,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며,
수많은 상실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팀을 지켜내며,
끝없는 책임감을 짊어진다.
왜 카카시는 그렇게까지 강한 책임감을 보일까?
카카시는 어릴 적 아버지 사쿠모의 자살을 겪었다.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성숙을 강요받았다.
이어 임무 중 동료를 잃는 경험은
그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남겼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에 해당한다.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소중한 사람은 죽었다는 사실이,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끝없는 자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카카시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책임감'일 것이다.
이는 심리적 생존 전략이다.
책임감 기반 자기애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을
'책임과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전환하는 태도를
말한다.
카카시는 동료를 잃은 경험을 반복했기에,
더 이상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강박적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이는 그가 제자들에게
엄격하면서도 헌신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쿠블러 로스에 따르면,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카카시는 '완전한 수용'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애도를 '대체적 헌신'으로 전환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직접 애도하기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데 힘을 쏟음으로써
슬픔을 감당한 것이다.
그에게 제자들을 지키는 일은 곧,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기 서약이었다.
우리도 카카시처럼
'책임'을 무겁게 짊어지며 살아가는 순간이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관계 속에서
책임감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책임감 자체는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그것이 죄책감에 의해 강화될 때,
우리는 쉽게 지쳐버린다.
중요한 것은
'책임' 뒤에 숨어 있는
자기 연민을 직면하는 것이다.
책임은 무겁지만,
때로는 그 안에 담긴 슬픔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치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