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심리학: 자유와 책임
나루토 속 휴우가 네지는
'운명'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캐릭터다.
네지는 분가 출신으로
태어나 본가를 섬겨야 하는 운명에 묶여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삶,
가문의 제약은 네지에게 깊은 분노와 체념을 남겼다.
그러나 네지는 점차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왜 네지는 끝내 운명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네지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는 네지가 겪은 억압적 현실의 반영이었다.
본가와 분가라는 제도는 네지에게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해당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던 경험은,
스스로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든다.
네지의 냉소적 태도는
바로 이러한 무기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은 단순히 환경의 산물만은 아니다.
실존심리학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존재'라고 강조한다.
빅터 프랭클은
"상황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수 있어도,
태도와 의미를 선택하는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
라고 말했다.
네지는 처음에는 운명을 거부하지 못했지만,
나루토와의 대결을 통해 서서히 깨닫는다.
나루토가 자신의 결핍과 낙인을 뛰어넘어
'나는 호카게가 되겠다'라고 선언하는 모습은,
네지에게 강력한 도전이었다.
그 순간 네지는
자신에게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네지의 변화에는 인간관계도 큰 역할을 했다.
히나타와의 관계, 동료들과의 경험 속에서
그는 점차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체득했다.
이는 보웬 가족체계이론에서 말하는
정서적 분화와도 연결된다.
가문의 억압적 체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선택과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네지가 진정으로 운명을 거부한 순간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을 때였다.
그는 나루토와 히나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이는
'나는 더 이상 가문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한다.'는 최종 선언이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의
극단적 표현이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실현할 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
네지의 죽음은 바로 그 자유의 증거였다.
우리도 종종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지는 상황에 갇힌다.
가정환경, 사회적 제약, 타인의 기대가
우리를 묶어두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그것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네지가 운명을 거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기력에 굴하지 않고
선택의 자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네지는 나루토를 통해,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운명이라는 굴레를 해석하고 뛰어넘는 법을 배웠다.
우리 또한 삶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운명에 맞서는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