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술과 음악의 밤

by 오나

제주에는 말없이 머물 수 있는 밤들이 있다.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이기 때문에 완성되는 시간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 혹은 진짜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제주에는 많다. 그날 내가 찾은 곳도 그런 공간이었다. 1인용 리클라이너에 앉아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는 곳. 동행자가 있더라도 대화는 철저히 금지된다. 말 대신 음악에, 사람 대신 감정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밤이었다.


‘골방’이라 불리는 그곳에는 냄새가 강한 안주는 없다. 대신 술의 선택지는 넉넉하다. 제주와 관련된 술부터 위스키, 하이볼까지. 큰 빔프로젝터와 좋은 음향기기 사이로, 내가 신청한 곡이 흐른다. 정확히 말하면 노래뿐 아니라 영상까지 고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듣는다는 행위가, 보는 경험까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은 많아야 다섯, 여섯 명 남짓.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같은 음악을 공유한다. 내가 고른 곡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신청한 곡도 함께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누가 골랐을까’ 상상해보는 재미, 그리고 전혀 몰랐던 좋은 노래를 알아가는 기쁨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음악 감상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며 술 한 잔을 곁들인다는 건 확실히 다른 경험이었다. 집중은 깊어졌고, 감정은 더 또렷해졌다.


술에 취한다, 음악에 취한다.

같은 동사를 공유하는 두 존재는 함께할 때 훨씬 강력해진다. 술 한 모금 위에 음악 한 구절이 얹히면, 감각은 쉽게 풀어지고 마음은 더 또렷해진다. 그날 밤, 나는 정말로 넋을 빼앗겼다.


그곳에서 들었던 노래들은 유독 오래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다. 골방 사람들만의 플레이리스트도 공유되어, 다른 이들의 신청곡까지 자연스럽게 따라 듣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말 없이도 시간과 감정을 나눴다.


결국, 모든 건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노래들.
거기에 술과 제주라는 밤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의 음악은 아직도, 조용히 내 밤을 다시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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