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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점집을 다녀온 날

사람은 어느 순간, 이성보다 감정의 파도가 먼저 밀려들 때가 있다.
나에게 그 날은 유난히도 진한 회색빛이었다.
커피 두 잔으로도 가라앉지 않던 마음을 붙든 건, 친구의 한 마디였다.

“거기 진짜 용해. 한번 가봐.”

평소라면 웃고 넘겼을 말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묘하게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갑자기 작은 등을 켠 것처럼—
믿지 않으면서도 기대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사람을 낯선 골목으로 이끌었다.


골목 끝, 작은 불빛

점집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대나무 발을 걷고 들어가자 마른 약재 냄새와 연한 향이 뒤섞여 있었다.
안쪽에서 흰 저고리 차림의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보았다.

“고민이 많구나.”

그 말 한마디에,
마치 감추고 있던 서랍이 저절로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웃으며 “다들 그렇죠”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뜨끔했었다.


이야기보다 표정이 먼저 읽히는 시간

점괘를 듣는 동안,
나는 선생님의 말보다 그의 표정을 더 오래 관찰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얼굴,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며
내 마음에 가볍게 내려놓는 그 자세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길이 막힌 게 아니라, 잠시 고갯길인 거야.
거기만 넘으면 환해져.”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예언 같지도, 훈계 같지도 않은 말.
오히려 오래 고민해온 나 자신에게
조용히 걸려온 전화 한 통 같았다.


돌아오는 길,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점집을 나온 뒤,
바람이 조금 더 상냥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대로였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결이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나 대신 답을 내려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를 조금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점괘보다 ‘마음을 풀어놓을 공간의 힘’을 더 믿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마음이 흐트러지는 날이 오면
나는 아마 그 좁은 골목을 따라
다시 그 작은 불빛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답은 여전히 나에게 있겠지만,
그 길을 비춰주는 등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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