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트와일라잇 시티] 4화

Chapter 4. 그림자로 세워진 빛의 도시

by 이진성

트와일라잇 시티 4


다음 날 아침, 아리아나는 조용히 떠나 있었고 방 안엔 그녀의 향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잠시 후, 인터폰에서 경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안본부 제이미 그레비티 팀장에게서 연락 왔습니다."

나는 짧게 말했다.

"연결해 줘."


곧 제이미 팀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오늘 보안본부에서 회의가 있습니다. 참석하시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참여해야지. 그런데 몇 시에 시작이지?"

"오전 10시에 시작합니다. 지금 출발하시면 여유 있습니다."

"좋아. 회의에 필요한 자료 좀 부탁해."


곧바로 내 태블릿으로 알림이 왔고 전송된 파일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오늘 회의의 주요 안건은 도시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시스템 오류의 원인 파악과 조사계획이었다. 그리고 같이 온 보안본부 내의 일정표에는 오후에 훈련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용은 최고 단계 보안 구역에 보관된 큐브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는 실습 과정이었다.


그러자 나는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그 큐브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섀도우 시티에 살던 시절, 사람들 사이에서 들은 이야기라곤 샤이닝 시티가 세워지기 전에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물체가 발견되었고 그것이 도시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정도였다. 지금은 거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샤이닝 시티가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큐브를 연구하던 정부의 비밀 기관이 지금의 보안본부로 재편되었다. 현재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정부 기관이 아닌 특수 민간 소속 조직으로 분류된다. 이는 한때 정부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 다툼의 결과였다. 결국, 각 세력 간의 영향력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 그렇게 된 것이다.


보안본부는 정부에서 분리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권한을 갖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정부와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큐브의 독점 사용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큐브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에 정부조차 함부로 통제할 수 없었고 그래서 큐브의 기술은 보안본부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여기서 큐브의 힘이란 그 에너지를 기반으로 개발된 기술로 벽, 바닥, 천장, 도로 등 모든 물질의 구성을 자유자재로 해체, 재조합, 이동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작동 시 표면이 여러 개의 작은 정육면체 모양의 블록처럼 쪼개져서 재배치되는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이 기술은 이후 샤이닝 시티 건설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현재는 주로 보안 용도로 사용된다. 범죄자의 이동을 차단하거나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통과해서 추격 및 봉쇄의 용도로 사용하며 도시의 보안과 치안을 담당한다. 이 권한은 오로지 보안본부 요원들만 사용할 수 있지만 계급에 따라 그 기능의 활용성과 범위는 제한된다. 계급이 높을수록 더 다양한 기능과 제어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이 기술은 군대나 정부의 어떤 상급자도 사용하지 못한다. 보안본부가 이 시스템을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내부만큼은 군대보다 보안본부의 힘이 더 강력한 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보안본부에 지원하려 했던 이유였다. 이 일은 샤이닝 시티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직업으로 꼽혔으며 심지어 다른 도시에서까지 이곳에 지원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나는 큐브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다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택시를 호출해 보안본부로 향했다. 잠시 후 도착한 그곳은 예상과 달리 그렇게 높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일반적인 빌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다른 유리 빌딩들과 달리, 이곳은 마치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설계된 요새처럼 창문은 많지 않았고 단단한 벽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들어가는 곳이라 나는 약간 긴장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를 지키던 보안 요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나는 곧바로 회의장이 몇 층에 있는지 안내 표지를 찾았지만 어딜 봐도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늦지 않게 오셨네요."

그 목소리는 아침에 통화했던 제이미 그레비티 팀장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미리 조회해 둔 자료에 따르면 그는 모든 팀장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경력과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조직 내에서도 단연 돋보였고 결국 기존 팀장들을 총괄하기 위해 에이스 팀장이라는 상위 직책이 새로 만들어졌으며 그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나는 제이미 팀장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중이지?"

그는 짧게 대답했다.

"전 회의장으로 바로 갑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마침 잘 됐군. 그를 따라가면 되겠어.'


그리고는 곧장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회의장에 도착하니 이미 모든 인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각 부서의 팀장들과 에이든 디나토스 부본부장이 모여 있었고 나를 보자 모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현재의 계급 체계는 정부 소속이었던 시절과는 조금 달랐다. 인턴과 일반 요원이 가장 아래 단계이며 그 위로 각자의 팀을 관리하는 팀장, 그리고 그 팀장들을 관리하는 에이스 팀장이 있었다.


그 위로는 내 권한의 일부를 대행하는 부본부장, 그리고 그 위에 최종 결정권자인 본부장, 즉 내가 위치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본부장은 이미 민간 조직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 군 정부 소속 시절의 대장급에 해당하는 권한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나 군의 대장들이 보안본부에 함부로 영향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3 체제 구조였다. 즉, 정부·군·보안본부, 이 세 조직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체계였다. 원래는 그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었지만, 현재는 군과 정부가 점점 더 긴밀한 관계를 맺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회의장에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회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각 부서로부터 간단한 보고를 받았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도시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오류의 원인 파악에 들어갔다.


한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현재 도시 전역에서 정체불명의 오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상으로는 외부인의 침입 신호가 감지되었지만, 정작 그들의 흔적이나 접근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팀장도 곧바로 말을 이었다.

"현장을 직접 확인해 봐도 출입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감지된 위치 근처에는 문도 통로도 이동 경로도 없는 경우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단순한 시스템 오류일 가능성은 없나?"


내 말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 가능성을 부정하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문제는 그 오류가 그 사건 이후부터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 사건이라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수십 년 전, 이곳에서 진행되던 프로젝트 합격자들의 탈출 사건 말입니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어릴 적 기억 한 조각이 번쩍 스쳤다. 그들이 말한 사건,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탈출 사건이었다.

"그 탈출사건 이후 한 동안은 조용했지만 몇 년 전부터 가끔씩 이런 오류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최근 몇 달 동안 그 빈도가 몇 배로 증가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탈출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때 부본부장인 에이든 디나토스가 나서서 말했다.

"그 내용은 대부분 알고 계실 거라 따로 자료를 준비하진 않았습니다만, 새로 부임한 팀장들도 있으니 제가 간단히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쯤, 보안본부 내부에서 큰 분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든 맥스웰 본부장님, 그리고 함께 큐브 연구와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를 이끌던 개발 연구팀장 사이의 심각한 마찰이 있었죠. 정부는 그 사건을 공식적으로 개발 연구팀장의 반란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때 그는 샤이닝 시티를 탈출했고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 합격자들과 일부 연구원들, 그리고 연구 자료들을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나는 물었다.

"그들이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지?"


부본부장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대답했다.

"그는 연구개발자이기에 큐브 시스템을 이든 맥스웰 본부장님과 동등하게 사용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사용해 길을 만들고 추격하는 자들의 길을 막아서 탈출한 것이죠."


나는 계속 질문했다.

"그럼 그들이 지금도 여전히 큐브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우선 그들은 우리 보안본부가 보유한 큐브에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연구개발 팀장만이 큐브 시스템의 사용 권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만큼은 큐브의 힘을 사용 가능하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아직 생존해 있다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큐브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물었다.

"그렇다면 그의 큐브 사용 권한을 삭제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한을 변경하거나 삭제하지 못하도록 컴퓨터 시스템에 보안 락을 직접 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락을 완전히 해제하지 못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정부나 군에서도 아직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건가?"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른 도시들에도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그가 아직 생존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도 분명 이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언급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도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그 오류들, 그의 존재와 연관된 것일 가능성이 있는 건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오류가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혼자서 큐브의 힘을 사용한 것이라면 그런 규모의 현상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오류로 인한 피해나 특이한 징후는 없었나?"내가 묻자 그는 잠시 기록을 확인하듯 대답했다.


"네, 무언가 사라지거나 피해를 입은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부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무언가를 테스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정부에서 하는 비밀 테스트 같은 흔적일 가능성은?"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정부와 군은 오래전부터 비밀 실험과 독자적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어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지?"


그는 내 물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대부분은 우리조차 접근할 수 없는 최고 기밀 등급이라 정확히 어떤 목적의 실험인지 내부에서도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오류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원인 파악과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바로 보고하도록 지시한 후 마무리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생각했다. 대체 그 오류들은 뭐지? 단순한 시스템 이상일까, 아니면 아직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나려는 징조일까. 하지만 곧 머릿속을 흔들어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진짜 이든 맥스웰이 돌아오기 전에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먼저 대비해야 했다. 나한테는 이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1층 로비로 내려가자 훈련생으로 보이는 인턴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그 옆에는 일반 요원들과 한 팀장이 훈련 인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팀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도 그 과정을 한번 직접 보고 싶은데, 같이 동행해도 되겠나?"

인턴 인솔 담당 팀장은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함께 가시죠."

나는 자연스레 그들을 따라나섰다. 겉으로는 단순한 관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들이 다루는 큐브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지하 구역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었고 복잡하고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통로마다 여러 길로 나눠있었는데 이곳의 설계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아마도 그런 복잡한 설계는 보안을 위한 의도적인 조치로 보였다.


밖에서 바로 볼 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던 이 건물은 지하로 내려와서도 그 크기가 실감 날 만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팀장의 안내를 따라 여러 차례 보안 인증 절차와 신원 확인을 거쳤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끝에, 마침내 보안본부 내에서도 가장 극비 구역으로 분류된 큐브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그곳의 문은 압도적으로 크고 두꺼웠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 금속이 아닌,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듯한 묵직한 철문이었다. 표면에는 여러 다중 보안 인식 장치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작은 요새 같은 존재감을 풍기고 있었다.


팀장이 문 앞에서 멈춰 서며 인턴들에게 말했다.

"이 문은 일반적인 합금이 아닙니다. 큐브 시스템을 이용해 구조를 완전히 해체한 뒤, 여러 재조합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신형 강철 합금이죠. 이 정도면 부수고 강제로 들어가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는 손목 안의 내장된 인증 칩을 스캔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 문은 아무나 열 수 없습니다. 오로지 관계자들만 들어올 수 있죠. 그래서 보안본부 팀장이라 해도 전부 권한이 주어지는 건 아니죠. 여기까지 접근할 수 있는 건 오랜 경력을 가진 상급자 일부뿐입니다."


낮은 울림과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두꺼운 철문 뒤로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쪽에는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움직이고 있었다. 한 연구원은 모니터 앞에서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고 또 다른 원구원은 차트를 들여다보며 누군가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구실 곳곳에는 보안 요원 몇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주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내부의 구조와 연구원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나를 중앙 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무언가를 가려놓은 듯한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있었다. 정사각형 형태로 덮어놓은 밀폐된 그 틈새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황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팀장이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연구원에게 물었다.

"큐브를 가린 방어 구조물, 제거해도 되나요?"

연구원이 모니터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은 손목의 터치패널을 조작하더니, 손바닥을 천천히 구조물이 있는 방향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낮은 진동음이 실내를 울리기 시작했다. 큐브를 덮고 있던 철제 덮개 위로 사각형의 수많은 패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패턴들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치 살아 있는 금속이 숨을 쉬는 듯 물결처럼 출렁였다. 이내 덮개를 이루던 금속 조각들이 정사각형 모양 그대로 분리되어 하나씩 옆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중앙이 점점 비워지면서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는 황금빛의 강렬한 빛이 새어 나왔다. 공기가 흔들리고 실내의 온도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큐브는 은은한 황금빛을 내고 있었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정사각형 큐브는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며 공기마저 따뜻하게 물들였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가 호흡하듯 공기 중에 부드럽게 일렁였다. 황금빛은 벽면과 바닥에 반사되어 실내를 따뜻하게 비췄다. 그 빛 속에서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이것이 바로 샤이닝 시티가 세워지기 이전에 발견된 큐브입니다. 저희는 이걸 크리렉트 큐브라고 명칭하고 있습니다."


인턴들은 누구 하나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황금빛 큐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의 물체는 생명처럼 빛을 내뿜었고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마치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원리로 태어난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이 크리렉트 큐브는 일반적인 컴퓨터로는 해독할 수 없는 고유한 디지털 정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데이터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해서 오직 양자 컴퓨터를 통해서만 그 데이터를 읽을 수 있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큐브의 표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밝혀낸 건 아직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큐브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샤이닝 시티를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말도 안 되는 기술적 발전을 이루었죠."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마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경외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큐브에게 선택된 극소수만이 연결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선택 기준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죠. 대신 우리는 양자 컴퓨터를 통해 큐브의 데이터 일부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손목에 찬 터치패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큐브 컨트롤 패드입니다. 큐브와 연결된 중앙 컴퓨터와 동기화되어 있죠. 선택된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한 수준이지만, 덕분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큐브의 힘을 직접 제어할 수 있죠. 화면에는 사용자를 중심으로 반경 360도 내의 사물을 인식하고 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3D 형태로 시각화합니다. 아래쪽에는 주요 기능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단축 인터페이스가 있고 화면을 옆으로 넘기면 좀 더 정밀한 제어와 세부 설정도 가능합니다."


"사용 방법을 간단히 보여드리죠."

팀장은 손목의 패드를 터치하며 말을 이었다.


"먼저, 능력을 발휘할 대상을 정합니다. 터치패드에 원하는 위치를 찍으면 되죠. 예를 들어..."

그는 화면 위의 한 지점을 가볍게 터치했다.


"제 바로 옆, 이 바닥을 지정해 보겠습니다."

실제 바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컨틀로 패드 화면에는 해당 범위가 표시되었다.


"이제 여기서 벽이라고 써진 아이콘을 누르고, 원하는 크기를 이렇게 그리면..."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 위를 부드럽게 그렸다. 그러자 그가 지정했던 바닥 위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곧 격자무늬의 패턴이 퍼져나갔다. 다음 순간, 바닥이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패턴에 따라 작은 정사각형 조각들이 하나둘씩 솟아올라, 마치 탑을 쌓듯 빠르게 쌓여 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벽이 완성되었다. 그 재질은 바닥의 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눈앞에서 벽이 형성되는 광경에 인턴들은 숨을 죽였다. 바닥에서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그 모습은 현실이라기보다 영상 속 특수효과를 보는 듯했다.

이어서 팀장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여기서 정식 요원이 되면, 이 능력을 다루는 훈련을 받게 될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정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마치 그 힘을 직접 다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처럼.






샤이닝 시티의 어느 건물 중앙 복도를 고위 관리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한편에 부마스터 에오모스가 있었다. 그는 검은 복장을 한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남자는 대장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에오모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터널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느리군."


"이곳은 우리가 있던 곳과는 다릅니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한계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속도는 확실히 빨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은?"

"모든 대장과 중장은 이미 이터널 유전자 이식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이터널 인원은 제 부대로 편성될 예정입니다."

"문제는 이든 맥스웰이군. 그가 존재하는 한 가장 중요한 큐브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큐브를 해독하려면 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지. 우선 계속해서 그를 철저히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드론전략사령부에서 곧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테스트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보고받았습니다. 다만 아직 실전에 투입하기엔 조금 이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말을 마친 그 대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어둠 속 어딘가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서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천천히 어둠 속에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자는 머리카락이 길게 따라 흐르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복장은 일반 군복이 아닌, 몸에 밀착된 흰색의 가죽이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녀는 부마스터 에오모스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한 후 일어섰다. 그리고 보고를 이어나갔다.

"레인저사령부 소속 대장, 로제입니다. 이든 맥스웰이 어느정도 눈치챈 것 같다는 스파이의 보고가 있습니다.”


부마스터는 이미 알고 있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대장들에게 각자 준비해 두라고 전하도록."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긴장으로 굳어졌다.






보안본부 내의 본부장실 안, 의자에 앉아서 여러 생각에 잠긴 나는 큐브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 패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큐브의 힘을 사용하려면 그 패드가 필요하다. 문제는 내게 그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든 맥스웰 본인이 이미 하나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또다시 요구하는 순간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플레임 이터널 프로젝트의 최신 합격자들이 궁금해졌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선발되었을까? 나는 옆에 있던 전화기를 집어서 누군가를 연결했다.


"보안 팀장, 지금 내 방으로 와줘."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팀장이 들어왔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이번 플레임 이터널 프로젝트의 최신 합격자 명단을 보여줘."

"알겠습니다."


그는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바로 보안팀 태블릿을 꺼내 빠르게 권한 인증을 했다. 잠시 후, 투명한 태블릿이 내 손에 전해졌다. 첫 화면에는 합격자 명단과 그들의 배정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첫 화면에는 먼저 10명 정도의 합격자 리스트가 보였다. 샤이닝 시티에서 매년 어렵게 뽑히는 엘리트들, 이번엔 이토록 적은 인원만이 공식 배치를 받았다. 개인 요리사, 보안 본부, 군대 등 여러 곳으로 배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더 당황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수 백명의 이름이 있었다. 분명히 합격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배정지는 전부 [기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즉시 보안 팀장에게 물었다.

"여기 합격자들, 왜 배정지가 전부 기밀이라고 나오지?"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정확한 건 알지 못합니다. 합격자 중 일부는 보통 특정 직업군이나 연구직으로 배치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밀 처리된 인원들은 어디론가 이동될 뿐입니다. 우리도 그들이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는 모릅니다."


"모른다고?"

내 목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날카로워졌다.

"네. 보안 본부 내에서도 팀장급 이하는 샤이닝 시티 입구까지만 대기하고 실제 이동은 정부 주도하에 군대에서 전담 특수부대와 군용 드론이 직접 수행합니다. 보안팀조차 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서려 있었다. 마치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듯했다.

"이동 경로도 기밀이지만.. 이터널 플레임 연구 기지로 가는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나는 태블릿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상했다. 내가 알기로는 합격자는 언제나 수 백 명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공식 배치 10명에 기밀 합격자라니... 배정받을 직업이 기밀일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신상과 배치 정보는 이 태블릿으로는 권한이 없어서 볼 수 없었다.


그때 경호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본부장님."

"왜 그러지?"

"본부장님은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지 않나요? 어떻게 되는지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순간, 병원의 로그인 회복실에서 이든 맥스웰을 검색했을 때 떠오른 그의 기사가 다시 떠올랐다. 샤이닝 시티 보안본부 본부장이자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 총책임자. 이 프로젝트는 내가 총책임자이지만 그 외에는 정부와 군대가 같이 관리한다. 그래서 보안본부 내에서도 이 프로젝트의 대해서는 이든 맥스웰만 알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다물고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래.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하지만 속으로는 불길한 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 기밀 합격자들.. 그들은 대체 어디로, 그리고 무엇을 하러 사라지는 걸까? 나는 이든 맥스웰의 최고 권한을 이용해 보안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표면적인 기록에는 기밀 합격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단 한 줄의 기록조차 없었다. 결국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근처에 지나가던 안내 드론에게 물었다.


"프로젝트 기밀 정보..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전부 보여줘."

드론은 잠시 정지하더니 기계음으로 대답했다.


[확인 중. 이든 맥스웰 최고 권한 인증 완료. 공개 가능한 정보: 연구 기지 위치.]


그뿐이었다. 합격자들의 상태, 연구 내용, 결과 기록 등은 전부 막혀 있었다. 나는 곧장 드론에게 말했다.

"좋아. 전용 택시를 불러줘. 목적지는 프로젝트 연구 기지로."

그러자 드론이 답했다.

[연구 기지 목적지는 일반 무인택시로 설정 불가]

[권장 이동 수단: 이든 맥스웰 전용 차량]


순간 머릿속이 번쩍였다. 아, 나한테도 차가 있지. 나는 바로 집으로 향한 후 저택 주차장에 있는 여러 대의 차량을 확인했다. 수많은 멋진 슈퍼카 같은 차들이 많았다. 나는 가장 빨라 보이는 고급차를 선택해서 다가가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운전석에 앉아 조작 스위치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시동 버튼과 핸들, 각종 패널은 처음 보는 형태였지만 구조 자체는 익숙한 차량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시동을 누르자 소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차량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바퀴가 지면을 떼어낸 듯한 감각과 함께, 차는 공중을 유영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구 기지로."

내가 말하자 AI가 대답했다.

[확인. 목적지 접근 권한 인증 필요.]

나는 손목을 패널 위에 올렸다. 생체 인증과 함께 붉은빛이 스캔되더니 차가 조용히 가속했다. 차는 샤이닝 시티의 고층들을 스쳐 지나갔다. 도시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구역에 도착했다. 거대한 보안 게이트 앞에서 차량은 멈췄다. 수십 대의 무장 드론과 군인들이 대기 중이었다.


[이든 맥스웰. 접근 승인.]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중첩된 보안 게이트가 하나씩 열렸다. 차를 주차하고 비밀 기지 안 로비로 보이는 곳에 들어서자 한 군인이 가까이 오며 인사했다.

"이든 맥스웰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합격자들이 최종적으로 배치되는 곳으로 안내해 줘."

군인이 물었다.

"현재 본부장님이 참여하실 일정은 없습니다. 혹시 뭔가 이상이 생긴 겁니까?"

내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내가 진짜 이든 맥스웰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혹은 프로젝트와 관련해 의심을 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스쳤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도 볼 겸 몇 가지 좀 확인하려고."

나는 혹시나 제지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떨며 말했다. 군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긴장된 상태로 그의 반응을 보았다. 하지만 검은 헬멧 때문에 그의 눈빛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앞장서자, 나는 속으로 깊게 숨을 삼켰다. 이제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이 정체를 들킬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천천히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층수를 알리는 화면이 B1 → B2 → B3… 순서대로 바뀌며 내려갈수록 공기가 점점 차갑고 묵직해졌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갔고 마침내 지하 10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흰색의 통로가 보였다. 조금 걸어가자 큰 철문이 보였고 옆에는 체격이 큰 한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앞까지 안내한 군인이 나에게 말했다.

"여기는 최고 기밀 구역입니다. 여기부터는 관계자만 접근가능합니다. 저는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하니 로비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그가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는 거대한 철문이 나를 막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손바닥을 스캐너 위에 올렸다.


[보안 구역 접근 중. 신원 확인을 진행합니다.]

내 심장은 쿵쿵 뛰었지만, 스캐너가 내 얼굴과 홍채를 읽어냈다. 잠시 후, 기계음이 차갑게 울렸다.

[인증 완료: 이든 맥스웰, 접근 승인 허가.]

안에서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이 문을 넘으면.. 내가 모르는 진실을 보게 되겠지.'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어둠과 푸른빛이 뒤섞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방은 무려 지하 10층에서 지하 2층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수직 구조의 초대형 시설이었다. 각 층마다 수만 개의 캡슐과 정밀 장비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곳곳에서 기계음과 전자 패널의 불빛이 깜빡였고 투명한 유리 캡슐 앞을 연구원들과 무장 군인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도시를 통째로 지하에 옮겨 놓은 듯한 숨 막히는 규모였다.

이곳이 단순한 실험실이 아니라, 무언가 더 거대한 계획의 심장부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캡슐 쪽으로 가까이 가보았다. 암흑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투명한 캡슐 안에는 물 같은 액체로 꽉 차있었고 사람이 한 명씩 있었으며 모두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산소호흡기로 보이는 호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고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없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혼란이 왔다. 그들은 마치 치료 중인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무슨 이유로 여기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나는 수조 옆 패널에서 차갑고도 명확한 문구들을 발견했다.


[상류층 DNA 최적화 진행 중...]

[기억 제거 대기 중.]


뜻을 알 수 없는 문구가 써져있었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거대한 수조 앞에 서 있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은 채,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고요했다. 기포가 천천히 올라왔고 기계의 미세한 전류 소리만 들렸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쪽에 관리실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여러 보안용 PC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인증을 시도했다.


[사용자 확인 중.. 이든 맥스웰 권한 승인]

화면이 켜지며 내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손가락을 떨며 수조에 연결된 캡슐에 대해 찾아보았다. 여기서는 캡슐에 있는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대상: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 합격자 B10-910202

상태: 신체 변화 진행률 73%

이전 단계: 기존 기억 제거

현재 진행 단계: 상류층 DNA로 최적화 중

다음 단계: 대기자 기억 업로드 예정]


이들은 신체 개조가 진행 중이거나 완료상태로 로그인 대기 중이라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모두 그동안 있었던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 합격자라는 사실이었다. 화면을 넘기며 다른 수조의 기록을 확인했다. 모두 비슷한 상태였다.


[상류층 DNA 최적화 완료.]

[기억 제거 대기.]

[로그인 준비 완료.]


이렇듯 무언가 진행중이거나 완료되었다는 문장들이 나열될 뿐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합격자들의 상세 특징도 기록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빠른 달리기 속도를 가졌고 다른 사람은 거의 지치지 않는 체력을 자랑했으며 또 다른 이는 압도적인 근력과 회복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합격자들의 신체 정보 옆에 [유전적 우월성 DNA 복사 중] 혹은 [유전적 우월성 DNA 복사 완료]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각 항목에는 세부 상태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복사가 완료된 DNA는 상류층의 개인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고 곧 그들의 신체로 흡수될 예정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여러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하던 나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상류층들의 새로운 육체는 바로 이터널 프로젝트 합격자의 몸 그 자체였던 것이다.


프로젝트의 혹독한 테스트는 단순한 선발 과정이 아니라, 상류층이 사용할 최적의 신체를 찾기 위한 시험이었다. 즉, 이곳에 누워 있는 합격자들의 신체 능력은 그들의 것이 아닌, 상류층을 위한 재료였다. 강인한 근력, 날렵한 반사 신경,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같은 합격자의 우수한 DNA는 곧 상류층들의 새로운 DNA가 된다. 그 결과, 상류층은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점점 더 건강하고 빠르고 강인한 모습으로 다시 세상에 등장한다. 합격자들은 그저 살아 있는 상태로 자신의 기억은 삭제당했고 상류층의 기억이 이식되었다. 합격자의 모습도 상류층들의 모습을 기반으로 다시 재구성된다.


나는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 혈관 속의 피가 한순간에 얼어붙은 듯했다. 합격자의 몸이 상류층의 새로운 몸으로 변한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되뇌어질 때마다 숨이 막혔다. 지금껏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화면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정보를 더 찾아보니 그들의 몸과 DNA를 재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크리렉트 큐브와 연결되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결국 큐브의 재구성하는 능력을 그들의 불멸에 사용한 것이었다. 크리렉트 큐브는 물질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물체다. 이 능력은 단순한 변형이나 조작이 아니라, 원자 단위에서 배열과 결합 방식을 재구성하는 수준에 이른다.


큐브가 인식하는 세계는 형태가 아니라 구조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원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에 따라 성질과 기능이 결정된다. 크리렉트 큐브는 이 연결 규칙에 개입해, 하나의 구조를 완전히 다른 구조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세포 역시 원자들의 집합이며 DNA는 특정 염기 배열로 이루어진 구조물에 불과하다. 큐브는 세포의 구성 원자를 재배열해 손상된 조직을 복원할 수 있고 DNA의 배열을 다시 작성해 다른 사람의 유전 정보로 완전히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즉, 크리렉트 큐브의 재구성이란 상처를 치유하는 수준을 넘어 신체를 새로 조립하고 기억이 담긴 육체의 틀 자체를 다른 존재에게 맞게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샤이닝 시티의 영생 기술은 바로 이 능력을 응용한 결과다. 죽음을 늦춘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새로운 몸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 나는 캡슐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투명한 캡슐 안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살아 있었지만 동시에 멈춰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죽어야 하는 존재라니… 아니, 죽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삶을 연장하기 위한 재료로만 남아 있는 상태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끝을 맞이하는 것도 스스로 사라지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채, 오직 타인의 시간을 이어 붙이기 위해 정지된 삶 속에 갇혀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캡슐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뭔지 모를 수증기가 빠져나갔고 캡슐 안에는 물이 반쯤 빠진 수면 위로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나는 곧장 화면에서 해당 캡슐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 기억 이식 완료.

신체 최적화 100%.

로그인 완료.

다음 단계: 회복실로 이동.]


로그인 완료라는 모니터의 차가운 글자가 내 심장을 서서히 조여왔다. 그리고 곧,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 셋과 무장을 갖춘 군인 둘이 캡슐 쪽으로 걸어왔다. 한 연구원이 태블릿을 꺼내 상태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기억이식 완료. 생체 지표 안정적입니다."


그들은 능숙하게 이동용 침대를 준비하고 캡슐 안에 잠든 인물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나는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때, 그들의 대화가 내 귀에 들어왔다.

"이번에 새로운 합격자들이 들어온다지? 캡슐 빈자리는 충분하지?"

첫 번째 연구원이 태블릿을 확인하며 물었다. 다른 연구원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대답했다.

"네. 필요한 수만큼만 선발하니까요. 걱정 없습니다."

"요즘에는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새로 로그인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정말 바빠 죽겠어."

한 연구원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내년 합격자는 아마 몇 배는 더 뽑아야 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들의 대화는 담담했지만 나에겐 섬뜩하게 들렸다. 마치 사람의 목숨과 기억을 자원처럼 취급하는 이곳. 이 황금빛 도시는 결국 수많은 그림자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졌다. 이제 이 캡슐에 있는 사람들은 원래의 자신이 아니다. 그들 머릿속에는 상류층의 기억과 인격이 덮어 씌워지고 그들의 과거는 완전히 사라진다. 나는 알 수 없는 전율과 공포를 느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불멸을 추구하는 실험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을 지우고 다른 사람의 영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었다.


황급히 그곳을 나와 샤이닝 시티의 황금빛 거리를 걸었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을 가르는 드론과 공중 셔틀, 유리처럼 빛나는 고층 빌딩들, 거리를 밝히는 수많은 가로등조차 모두 차갑게만 보였다.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풍경이 수천 명의 희생과 피, 그리고 지워진 기억 위에 세워진 거대한 거짓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걸음을 멈추고, 나는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이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모른 척 지내며 살아남을 것인가.


바람 한 줄기에도 도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듯 견고했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곧 이 거대한 샤이닝 시티 전체를 삼킬 폭풍으로 번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곧 진짜 이든 맥스웰이 돌아올 것이고 그때 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가 나를 잡아 가둘 수도, 최악의 경우 날 죽이려 할 수도 있다.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하나, 이곳을 떠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분명 샤이닝 시티는 물론 모든 도시와 마을에 수배령을 내릴 것이고, 모든 도시는 나를 추적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시스템을 세상에 폭로하고 직접 무너뜨리는 것이다. 아니면 진짜 이든 맥스웰과 맞서 싸우거나..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어쨌든 선택은 다가오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