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래전에 다녀간 적이 있는 듯한, 그런 묘한 기시감이랄까. 남강이 도시를 감싸 안고 흐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이곳이 단순히 와이프의 고향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마다 고유한 냄새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아스팔트와 매연이 섞인 날카로운 냄새가 나고, 부산은 바다 내음이 섞인 짭조름한 냄새가 난다. 진주는 어떨까? 처음 진주역에서 내렸을 때 맡은 공기는 부드럽고 촉촉했다. 마치 오래된 한옥의 마루에서 맡을 수 있는 나무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와이프는 진주 이야기를 할 때 늘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쉬워하는, 그런 표정. "진주는 참 좋은 곳이야. 하지만 너무 조용해서 답답할 때도 있어." 그녀의 말에는 고향에 대한 애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랑하지만 떠나고 싶었고, 떠났지만 그리운 그런 복잡한 감정들.
진주성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성벽은 생각보다 웅장했다. 그 오래된 돌들이 주는 묵직함, 세월의 무게 같은 것이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본 남강이 도시를 감싸 안고 흐르는 모습도 인상깊었다. 그때 나는 이해했다. 왜 와이프가 가끔 "진주에서 보던 하늘이 그리워"라고 말하는지를.
어머니의 아구찜집에서 처음 맛본 음식들도 잊을 수 없다. 매콤하고 깊은 맛의 아구찜, 그리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반찬들. 와이프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했다. "어머니 음식 맛이 어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음식에는 단순히 맛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맛야말로 그 지역, 그 집안만의 색깔이라는 것을.
진주는 교육의 도시라고들 한다. 경상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대학가의 활기, 그리고 오래된 학교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남강을 따라 걸으며 든 생각이 있다. 강이 있는 도시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이 흘러가듯 시간도 흘러가고, 사람들의 마음도 물처럼 부드러워진다. 남강변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로웠다. 서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 같았다.
진주 사람들의 말씨도 독특하다. 경상도 사투리이지만 부산이나 대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좀 더 부드럽고 느긋하다고 할까. 와이프가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 들려오는 그 말투를 들으면, 그녀가 진주에서 자라며 몸에 밴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진주 시장에서 본 풍경들도 인상깊었다. 할머니들이 직접 기른 채소를 팔고, 단골 손님들과 정담을 나누는 모습. 그런 일상적인 풍경들이 모여서 진주만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대형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 삶의 온기 같은 것들.
와이프와 함께 진주 시내를 걸으며 그녀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하나씩 찾아다닌 적이 있다. "여기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었고, 저기서 첫 데이트를 했고, 그 카페에서 대학 과제를 했어." 그녀의 청춘이 고스란히 박혀 있는 도시, 그것이 진주였다.
가끔 진주에 갈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열쇠 같은 것이라고. 와이프를 제대로 알려면 진주를 알아야 하고, 진주를 알려면 그곳에서 흘러온 시간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진주성에서 본 야경은 화려하지 않았다. 서울의 네온사인이나 부산의 다이나믹한 불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소박한 불빛들이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집집마다 켜진 창불들, 가로등이 만드는 부드러운 선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고요한 아름다움.
지금도 와이프는 가끔 진주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가고 싶다"고는 잘 말하지 않는다.
"진주는 좋은 곳이야, 하지만 이제 내 삶은 여기 있어"라고 말할 때가 많다. 고향이란 그런 것 같다.
그리워하지만 굳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곳, 추억 속에 남겨두는 것이 더 아름다운 곳.
그리고 나에게도 진주는 이제 그런 곳이 되어가고 있다.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뿌리가 있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