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이상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끝났고, 내일 할 일들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 틈새의 시간. 마치 하루와 하루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무인도 같은 시간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 시간이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온갖 상상들이 고개를 들었고, 낮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걱정들이 갑자기 거대해졌다. 내일 수학 시험은 잘 볼 수 있을까, 친구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우리 가족은 괜찮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걱정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 낮에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이 시간만 되면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필요로 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마치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랄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되짚어보고, 내일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현대인들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해서가 아닐까? 침대에 눕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넷플릭스를 틀거나, 뭔가를 계속 소비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와 하루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오늘이 언제 끝나고 내일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작가는 매일 밤 일기를 쓴다고 했다. 긴 글이 아니라 그냥 몇 줄, 오늘 무엇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간단히 적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는 말했다. "그 시간 동안 오늘을 돌아보는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내일을 맞을 수 있어."
잠들기 전 30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나 역시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그냥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때로는 오늘 실수한 일들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좋았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
어제는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별것 아닌 이야기였는데, 그 사람이 웃는 모습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이 시간에 다시 살아난다. 낮에는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냥 숨소리에 집중하거나,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인다. 누군가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발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런 소리들은 도시가 완전히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책을 읽기도 한다. 스릴러나 추리소설 같은 자극적인 책은 피하고, 주로 에세이나 시집을 읽는다. 몇 페이지만 읽어도 된다. 중요한 건 책의 내용보다는 활자를 따라가는 그 느린 리듬이다. 눈이 글자를 따라 움직이고, 마음이 점점 고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날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 집에서 보낸 여름휴가를 떠올린다. 마루에 누워 부채질을 하며 바라본 천장, 멀리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외할머니가 들려주신 옛날이야기. 그때도 잠들기 전 시간이 특별했다. 도시의 밤과는 완전히 다른, 깊고 고요한 어둠이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잠들기 전까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시간을 생산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고, 느끼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잠들기 전 30분은 하루의 마지막 선물 같은 시간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다음 영화가 시작되기까지의 짧은 휴식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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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다.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밤늦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일 것이다. 나처럼 잠들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다른 하루를 보냈지만, 모두 같은 밤을 맞이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