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글귀에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가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인물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실연한 주인공과 함께 슬퍼하거나, 때로는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 성공을 거둔 걸 같이 기뻐하면서.
이렇게 글 속에는 다양한 드라마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실체로 보고 있는 건 규칙적으로 줄지어 있는 글자들뿐이다.
그림도 사진도 없는데도 글을 읽으면서 생생하게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감정을 느낀다.
마치 카멜레온이 몸을 다채로운 색깔로 바꾸듯, 글도 다양하게 변신한다.
풍경이 되기도 하고, 감정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글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고, 사진도 잘 찍을 수 없어서 글쓰기를 택했다.
글에 내 생각이나 감정, 경험을 담아서, 내 안의 있는 것들을 세상에 보내고 싶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 한다.
생각하는 시간이야말로 나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어떤 '질문'에서 비롯됐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 생활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은 언제나 똑같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은 아득한 일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 와중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을 느끼는 걸까?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 걸까?
'행복'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어딘가 막연하고, 그 정체를 구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진짜로 중요한 것을 잊여버린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잃거나, 정신없이 일하다가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거나, 자신조차 돌보지 못해 병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생계를 생각하거나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해버린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이라는 말버릇과 함께.
하지만 그렇게 계속 살아가면 어떤 결말이 기다릴까?
나는 생계를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거나 체면을 지키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하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미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결국 답은 찾지 못했다.
한국어를 공부해 볼까?
그렇게 생각한 건 좋아하는 한국 배우와 아이돌 때문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번역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 그들의 말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이해하고 싶었다.
거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한국어 공부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어느새 한국어는 내 "최애"가 됐다.
"한국어를 더 알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난 순간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한다.
그렇게 삶도 글귀도 다듬어지는 것 같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은가?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가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