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글로 글 쓰는 일본인

by 시즈

대학 종강파티가 있었다.

그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겨울의 한국에 가게 되었다.


겨울에는 한국에 절대 안 가겠다고 생각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도저히 못 견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내가 사는 도시보다 기온이 10도 정도 낮다.

영하 10도의 세상이란 대체 어떤 공간일까.

상상도 못 했다.

여기서는 5도만 되어도 춥게 느껴지는데, 서울에 가면 나는 숨도 못 쉬고 얼어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 많은 나는 철저하게 방한 준비를 하고 서울로 떠났다.


김포공한에 도착한 뒤 지하철로 숙소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열차 안에 있다 보니 점점 더워졌다.

한국 겨울은 바깥은 춥지만 실내는 아주 따뜻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살짝 땀이 날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계단을 올라 바깥공기와 마주했다.

'오? 의외로 괜찮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는 불편하다기보다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졌다.

한국의 공기가 좋아서인지, 한국이라서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겨울의 맛도 나쁘지 않았다.


서울에 간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별마당 도서관'

글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도서관'이나 '책방'같은 '책의 공간'을 무척 좋아한다.

일본 서점도 좋지만 한국의 서점은 더 설렌다.

한글 표지에 설레고, 책을 펼쳤을 때 빼곡한 한글을 보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벌마당 도서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의 목적은 아마 이루미네이션일 것이다.

나도 근사한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역시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건 책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책을 살펴보았다.

한 작품이 눈에 띄어 손을 뻗었다.

'오히려 좋아'

표지에는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채희선이라는 여성 유튜버가 쓴 에세이였다.


그녀는 나쁜 일이 생기면 '좋아'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다음에 어떤 좋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 좋게 나쁜 일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나도 비슷한 편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을 잡았다.

3층 좌석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7명의 무대.

무대를 넓게 볼 수 있고, 고연장 분위기를 즐기기엔 3층이 가장 좋다.

게다가 11열. 앞도 뒤도 아닌 그 애매한 위치가 오히려 특별석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에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없다.

그저 '일'이 있을 뿐, 그걸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좋다고, 어떤 사람은 나쁘다고 느낀다.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일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운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별마당 도서관의 한 자리에서 에세이를 읽다 보니 마음이 살짝 따뜻해졌다.

잠시 독서를 즐긴 뒤 교보문고 광화문점으로 향했다.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었다.

오늘 종강 파티에 우리 대학교 교수님들도 여러 명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중 소설가로 활동하시는 교수님의 책과 시인으로 상을 받은 교수님의 책을 사서 사인을 받을 생각이었다.

두 교수님의 책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작가 선생님들에게서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두 책을 들고 '예슬"장르 책장으로 향했다.

하나 더 사고 싶었던 책이 대본집이었다.

얼마 전 대본 특강을 듣고 대본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책장에는 내가 본 드라마, 아직 보지 않았지만 제목을 아는 유명한 드라마들의 대본집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서 특별히 눈에 띈 책이 바로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내 인생 드라마.

그 작품을 쓴 노희경 작가님에 대해 알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과 배경, 사건들을 구성할 수 있는지.

이 드라마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했다.

원하던 책 세 권을 구매하고, 기분 좋게 종간파티가 열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파티 장소는 2층에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활기찼다.

먼저 학과 임원들에게 인사하고, 모여 있는 학우들에게도 인사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일본인인 내가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 속에 끼어 있는 건 인생 처음이었다.

여기 있는 학우들 모두가 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설렜다.

나는 특별히 글쓰기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싸도 아니지만 문예창작학과의 유일한 일본인이라 그런지 여러 학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한국 사람 중에도 낯을 가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모두가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여러 번 "혹시 아는 사이세요? "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아니요, 오늘 처음 만났어요"였다.

아무래도 일본인끼리 모이는 분위기와 한국인끼리 모이는 건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이런 자리에서는 늘 눈에 띄지 않게 옆 사람이나 앞 사람과만 이야기하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많은 학우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이런 나이가 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 어렵다.

특히 공통점이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은 쉽게 찾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읽기)'라는 같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나게 되어 정말 큰 위로를 받았고 행복했다.


글쓰기도, 사이버대학교도 혼자 노력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의 매력을 더욱 깊게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