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아사이 료는 '모두가 좋다고 하는 그 가치관은 정말 좋은가'라는 질문을, 가네하라 히토미는 '사람과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라는 물음을 계속 써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하긴, 작가마다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나오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는 작가가 의도해서 담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이 스며드는 걸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의식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아 글을 쓸 때도 있고,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작품 전체에 공통된 메시지가 배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글에도 공통된 메시지가 은근히 녹아 있는 걸까.
AI에 내가 쓴 글이 공통 메시지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돌아가고 싶은 곳은 바깥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
내 글에는 언제나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는 주제가 있다고 했다.
헤맸을 때, 상처받았을 때, 세상이 차갑게 느껴졌을 때 내 글의 주인공은 바깥 세상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조용한 곳으로 돌아간다. 이건 '바깥 세상의 평과나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믿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흔들림과 약함은 수치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
내 글에는 "약함을 숨기지 않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불안, 고민, 고독, 멈춤, 망설임 같은 감정을 비관이 아니라 "악한 채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세상은 잔혹하지만, 어딘가에 분명 작은 빛이 있다
내 글에는 절망 속에서도 작은 빛이 늘 등장한다고 했다.
흐린 하늘 너머의 푸른 하늘, 누군가의 따뜻한 말,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온도, 불현듯 찾아오는 도움.
현실의 차가움과 고독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작은 빛을 찾아내는 힘이 있다고 했다.
이게 내 글 속에 녹아 있는 메시지라고 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내 글을 바라보니 참 흥미로웠다.
글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다.
소설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서스펜스, 과학적 상상력으로 미래를 그리는 SF, 마법이나 전설의 생물이 등장하는 판타지.
나는 예전에는 미스터리와 SF를 좋아해서 그런 작품을 많이 읽었지만, 이제는 사건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현대문학을 읽게 되었다.
작년에 대학 수업에서 많은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최은영, 정소현, 김성중, 최진영, 백수린, 김애란, 김연수, 강태식, 손보미, 조해진, 편혜영, 이장욱, 기준영.
무려 13명의 다양한 작품을 만났지만, 처음에는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 하나도 없었다.
수업을 들으며 그 작품들이 가진 세계를 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교수님의 해설이 없었다면 그냥 '재미없는데!?'라는 감상만 남았을 것이다.
최근 들어, 책을 읽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예전 같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작품 속 분위기를 이제는 읽어낼 수 있게 된.... 그런 느낌.
독자로서 소설을 읽을 때와 작가로서 읽을 때는 그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젠 나도 '작가'의 시선으로 책과 마주할 수 있게 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