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장실현타’와 빙판 총알택시, 압록강단교, 그리고 김일성대학교
1998년 8월 귀국했는데, 최근까지도 앞서 1년 전 출국은 김포국제공항, 귀국은 인천국제공항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확인하니 인천국제공항 공식 개항일이 2001년 3월 29일. 그 사이 다녀온 중국과 우즈베키스탄도 김포에서 출발했을 터다. 당최 기억은 믿을 수 없다.
1년 만에 귀국한 지 두 달 만인 10월 이후 중국 선양시(瀋陽市)를 두 차례 찾았다. 지난번 켄터키편에서 소개한 친구 Joe Kim이 성화를 부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중국이 14번째 나라이자, 대한민국을 제외한 첫 아시아국가, 20세기 마지막 해외여행지로 남게 됐다.
Joe는 자기와 같이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길 원했다. 재능과 경제적 기반이 넉넉한 데다 미국인 패스포트의 위력이 먹히던 시절이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문제는 우리 모두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친구로 생각해 준 건 고마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선양시(그땐 심양으로 불렀다)는 인구 기준으로 중국의 4대 도시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나 인구 900만명 정도였기 때문에 4대 도시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는 10위권 밖이다. 만주족이 세운 후금이 수도로 삼은 뒤 병자호란(丙子胡亂)까지는 청나라의 수도였다. 황제가 기거한 선양고궁마저 기대한 것보다는 훨씬 아담하다. 좁다고 느낄 정도였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결사항전을 주장하다가 ‘삼전도의 굴욕’ 이후 소현세자와 함께 끌려간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홍익한(洪翼漢) 등 조선의 학사들이 처형당한 곳이 선양이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 “대쪽 같은 삼학사(三學士)”로 등장한다. 척화파(斥和派)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죽음을 감수한 점은 평가받는다.
선양의 첫인상은 추위였다.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을 직접 받는 곳으로 무척 춥고 건조했다. 한겨울 새벽엔 –30°C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제설, 제빙작업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그 빙판 위를 택시는 쌩쌩 달린다. 과속으로 달리다가 전방에 정지신호가 나왔는데, 바로 인도로 올라가서 한 블록을 달린 뒤 파란 신호가 나오자 차도로 합류하는 곡예운전사도 있었다.
시타(西塔)는 선양의 ‘코리안타운’이었다. ‘경회루’와 ‘백제관’(명칭 확인 안 됨) 같은 5층 규모 건물을 통으로 사용하는 한인식당이 있었고,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관이 있었다. 그리고 연변과 하얼빈 등지에서 넘어온 중국교포(조선족)가 운영하는 중소규모 식당들도 많았다. 한인식당은 한국과 맛이 비슷했고, 조선족식당은 기름기가 훨씬 많았지만 가격이 절반 정도였다.
시타에 사무실을 내고 컴퓨터사업을 시작했다. 박찬호가 광고하던 S컴퓨터 중국공장이 선양에 있었는데, Joe는 임원진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조선족 직원 3명의 급여는 월 100불 정도였고, 사업은 중국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촌스러운 광고를 걷어내고, 분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 하지만 애초 중국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고, 사업도 만만치 않았다.
Joe가 운영하는 영어학원에는 백인 부부와 한국인교포 등 미국인들이 있었는데, 조선족 직원들과 함께 단둥시(丹东市)를 여행하기도 했다. 전쟁박물관과 한국전쟁 중 유엔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채 역사적 유산으로 남은 압록강단교(鸭绿江断桥)가 인상적이다. 압록강에서 여객선을 타니 신의주(新義州) 강변 바로 앞까지 들이밀었다. 북한사람들은 뭔가 계면쩍은 듯 반응한다.
김일성대학교 철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중국으로 밀입국했다는 청년을 선양의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다. 예전 교수님이 “김일성대 철학과생은 못 이긴다”고 하신 말이 생각나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도발해 봤지만, 스마트한 반응은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주눅 들어 있었다. 북한으로 다시 밀입국했다가, 필요하면 또 나온다고 한다. 이해가 쉽지는 않았다.
중국프로농구리그(CBA)에서 뛰는 두 명의 미국인 흑인용병 선수와 종종 만날 수 있었다. Joe의 네트워크가 넓기도 했고, 미국인이 드물기도 했다. 현재 팀명은 랴오닝 플라잉 레오파즈(Liaoning Flying Leopards)인데, 당시엔 헌터스(Hunters)였던 것 같다. 둘 다 2m가 넘는 장신이었는데, 특히 센터를 보는 친구는 샤킬 오닐(Shaquille O'neal)보다 키가 크다고 했다.
붙임성도 좋고, 중국인 여자 친구도 많은 녀석이었다. 유머감각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친구였다. 여자 친구가 도망간 얘기가 있었는데, 내용을 밝히진 않겠다. 화장실에 같이 갔다가 ‘현타’ 오기도 했다. 심지어 이 녀석이 연락하자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는데, 사실 써줄 필요도 없었다. 27년째 기억한다. ilove○○○@hot~. 메일도 핫했다.
참고로, 이번에 열심히 구글링하니 당시 랴오닝팀 센터가 Li De(Andre Reid)로 나온다. 사진은 얼추 비슷하다. 플로리다주립대를 졸업한 뒤 캐나다, 중국, 멕시코, 미국에서 선수로 뛰었다는데, 신장은 212cm로 나온다. 이 선수가 그때 그 친구라면 신장이 샤크보다 조금 작다.
귀국 후 Joe의 성화에 다시 선양으로 넘어가 총 반년 가량 머물렀다. 희미해졌지만, 머문 기간만큼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이방인은 계속 고국으로 돌아갈 핑계를 찾는다. 재미있는 친구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한국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PS. 당시 중국 전역을 기차로 여행할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만, 주변 만류로 접어야 했다. 한국인, 조선족, 중국인, 미국인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고, 그만큼 잘 알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광저우(廣州)와 선전(深圳)을 여행했는데, 선양을 다시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언제 삼국지 역사여행이나 기획해 봐야겠다.
[선양 MTA] 선양고궁(沈阳故宫), 동릉(東陵), 북릉(北陵), 9.18 역사박물관(历史博物馆), 랴오닝성 박물관(辽宁省博物馆), 장수부(張氏帥府)
[단둥 MTA] 압록강단교(鸭绿江断桥), 호산장성(虎山长城), 압록강유람선(鸭绿江游览船), 항미원조기념관(抗美援朝纪念馆 전쟁박물관), 봉황산(凤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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