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유럽서 손꼽는 구시가광장과 세계대전 피해 완전 복구한 세계유산
체코 프라하에서 12번째 나라 폴란드 바르샤바까지는 기차로 9~10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4박 일정 중 하루를 할애하기로 했다. 늦은 밤 프라하를 떠나면 다음날 오전 일찍 바르샤바에 도착한다. 폴란드 여행정보도 거의 없고, 거리도 유독 길었지만, 괜히 묘한 끌림이 있었다.
국경을 넘을 때 자주 이용하는 국제열차였지만 항상 가슴이 설레고 기대감에 부푼다. 젊을 때는 그랬다. 모든 게 번거로운 요즘은 헤드셋이나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지만, 그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탑승했다. 부족한 여행정보를 현지인으로부터 채우는 일도 쏠쏠했다.
그런데 폴란드행 열차는 좀 달랐다. 구조가 크게 다른 건 아닌데, 딱히 유럽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고, 뭐랄까, 프라하보다 경직된 분위기였다. 좌석 맞은편에 젊은 남녀커플이 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남자친구는 영어를 곧잘 구사하는데 반해 여성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공통의 대화 소재를 찾아야 했다. 폴란드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그때까지 바르샤바밖에 없었다. 유명한 인물은 퀴리 부인과 쇼팽, 코페르니쿠스 정도였는데 다들 옛날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그 시절 유명했던 초대 직선 대통령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를 화두에 올렸다.
그런데 반응이 떨떠름하다. “바웬사를 아느냐”고 되묻기에, “198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잖아”라고 답했는데, 영 못마땅한 표정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경제개혁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영어 구사력은 그 울분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
이 친구는 몇 차례나 바웬사에 대해 험담했으며, 결국 “무능한 지도자였다”로 귀결됐다. 차라리 폴란드가 자랑스러워할 퀴리나 쇼팽을 얘기했어야 했나. 잠시 얘기를 듣다가 한국도 요즘 IMF 외환위기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그래도 민주화 과정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바웬사에 대한 폴란드인의 억하심정을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바르샤바에서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주면서도 몇 번을 덧붙인다. “별로 볼 것도 없는 폴란드에 뭐 하러 가는 거야.” 젊은 친구가 시니컬하다. 잠깐 눈을 붙인 뒤 떠보니 어느새 바르샤바 중앙역이다.
역 밖으로 나왔다. 서유럽과 달리 현대적이고 무미건조하다. 도시 한가운데 높다란 건물과 길게 뻗은 안테나가 눈에 띈다. 기차 여행자들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바르샤바의 랜드마크. 스탈린이 1952년 폴란드 국민에게 ‘소련 인민의 선물’이라며 짓게 한 문화과학궁전(PKiN)이다.
높이 237m의 문화과학궁전은 1955년 완공됐는데, 그때까지 미국, 러시아, 브라질을 제외하면 높이 150m 건물도 없었던 시절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문화과학궁전은 폴란드 친구들이 추천한 명소는 아니었다. 애초 중세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관광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한 터였다.
문화과학궁전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크게 생각하지도 못한 채 성의 없이 기웃거린 후 곧바로 유럽에서도 예쁘기로 손꼽히는 구시가광장(Rynek Starego Miasta)으로 향했다. 사방으로 고딕, 후기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색깔별로 자리 잡은 곳이다. 사람은 많지 않지만 기념품 좌판은 늘어서 있다. 중세인 듯, 아닌 듯한 묘한 분위기가 풍긴다.
구시가광장 근처 5분 거리에 퀴리부인 기념관(Muzeum Marii Sklodowskiej-Curie)이 있고, 바르바칸(Barbakan Warszawski)과 광장을 지나 성 요한 대성당(Bazylika Archikatedralna w Warszawie p.w. Męczeństwa św. Jana Chrzciciela), 바르샤바 왕궁(Royal Castle in Warsaw)으로 카페와 상점이 몰려있는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Warsaw)가 이어진다.
2000년대 초반 개봉한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나오듯이, 이 지역은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Warsaw Uprising) 때 완전히 폐허가 됐다가 복원한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85% 이상 파괴된 지역을 전후 바르샤바 시민이 5년간 설계도와 지도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재건한 유례없는 사례로 인정받아 1980년대에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곳이었다.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성 십자가 성당(Kościół św. Krzyża)은 20분 안팎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성당 근처에 코페르니쿠스동상이 인상적이다. 성당 근처를 포함해서 최근 바르샤바여행의 핫스폿으로 쇼팽 벤치들이 꼽히는데, 1998년엔 없었다. 검색해보니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2010년 이후 그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시내 곳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구시가 입구에 있는 성 안나 교회(Kościół św. Anny)는 1454년에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후 재건축과 보수를 거치면서 1788년에는 신고전주의양식까지 추가됐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일부만 손상됐다. 바르샤바 시민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는 잠코비광장(Plac Zamkowy) 한복판에는 1596년 수도를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긴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 있다.
바르샤바는 냉전시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있었던 도시다. 폴란드의 젖줄인 비스와강(Rzeka Wisła)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으며, 인구 186만명의 폴란드 최대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규모 시가전으로 도시의 85%가 파괴됐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로 뒤덮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국가적인 재건작업에 나서 전쟁 전 모습을 정교하게 복원해냈다.
여행 당시 방문하지 못한 바르샤바 대학교(Uniwersytet Warszawski), 라젠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 w Warszawie), 빌라노프 궁전(Museum of King Jan III's Palace at Wilanow), 쇼팽 박물관(Fryderyk Chopin Museum), 여행 이후 개관한 바르샤바 봉기 기념관(the Warsaw Rising Museum), 바르샤뱌 엑스포(Ptak Warsaw Expo)도 챙겨야 할 관광지다.
종일 바르샤바를 누빈 뒤 프라하행 밤기차로 돌아왔다. 며칠 묵었다고 그새 프라하가 편하다. 숙소에서 낮잠을 자고, 저녁 때 프라하성과 카를교 주변을 다시 산책한 뒤 다음날 버스로 국경을 넘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그렇게 독일이 13번째 여행국이 되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찍은 사진은 쓸 만한 게 없다. 대신 이후 가장 많이 찾은 도시가 된다. 천천히 풀 예정~
PS. 몰도바에서 독일까지 8개국을 누빈 이 여행은 초반부터 자금 조달이 관건이었다. 몰도바에 1년을 체류하면서 생활비는 거의 떨어졌고, 미국이나 한국에서 송금 받아야 했는데, 당시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웨스턴유니온이 있었던 것 같은데, 미국 지인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지고 간 삼성노트북을 팔았다. 터치패드가 등장하기 이전 세계를 휩쓴 트랙볼(trackball, 구슬)이 장착된 최신형이었다. 볼마우스를 뒤집어 놓은 구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터치패드보다 편한 점도 있었다. 단, 먼지를 자주 제거해야 하는 불편은 감수해야 했다.
노트북 팔고, 비상금을 합치니 독일까지 여행비용이 얼추 나왔다. 여기에 여행 도중 웨스턴유니온으로 한국에서 송금 받으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시작한 귀국여행이었다. 그래서 지난번 루마니아 콘스탄차에서 만난 스무 명의 집시들로부터 배낭을 지키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뇌피셜’이 20세기 말이라고 통할 리 없다. 프라하에서 동생과 통화하면서 웨스턴유니온으로 송금해달라고 했는데, 며칠 뒤 폴란드에서 다시 통화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1998년 대한민국에는 웨스턴유니온 서비스가 없었다. ‘금융치료’ 후 서유럽으로 진출할 참이었으나, 여러 배경으로 인해 4일 뒤 친구한테 독일 마르크를 빌려 1년 만에 귀국해야 했다.
[바르샤바 MTA] 문화과학궁전(PKiN), 구시가광장(Rynek Starego Miasta),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Warsaw), 퀴리부인 기념관(Muzeum Marii Sklodowskiej-Curie), 바르바칸(Barbakan Warszawski), 성 요한 대성당(Bazylika Archikatedralna w Warszawie p.w. Męczeństwa św. Jana Chrzciciela), 바르샤바 왕궁(Royal Castle in Warsaw), 성 십자가 성당(Kościół św. Krzyża), 성 안나 교회(Kościół św. Anny), 잠코비광장(Plac Zamkowy), 비스와강(Rzeka Wisła), 바르샤바 대학교(Uniwersytet Warszawski), 라젠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 w Warszawie), 빌라노프 궁전(Museum of King Jan III's Palace at Wilanow), 쇼팽 박물관(Fryderyk Chopin Museum), 바르샤바 봉기 기념관(the Warsaw Rising Museum), 바르샤뱌 엑스포(Ptak Warsaw Ex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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