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1회용 필카로 찍은 호프부르크궁전과 ‘주머니 속’의 규정들
요즘은 오스트리아 빈(Wien 비엔나)에서 당일치기로 브라티슬라바를 여행하는 모양인데, 1998년 동유럽토박이는 반대로 접근했다. 브라티슬라바를 거점으로 한 빈 여행. 오스트리아가 열 번째 여행국이다. 4박을 한 체코에서도 프라하를 거점으로 폴란드 바르샤바를 다녀왔다.
이웃 나라 빈에서 채 1시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는데, 브라티슬라바의 모든 비용이 압도적으로 저렴했다. 빈 하루 숙박비가 브라티슬라바 숙박비와 당시 36달러였던 국제기차 왕복요금을 합친 것보다도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최저가 숙소를 물색할 방법도 없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체코 프라하로 가는 비용도 확실히 저렴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국제선이 아니라 여전히 국내선처럼 운영됐던 것 같다. 결국 브라티슬라바를 거점으로 여행하는 게 여러 측면에서 낫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됐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역시 정확하지는 않지만, 빈 여행부터 1회용 필름카메라를 사용했던 것 같다. 애지중지한 수동카메라가 말썽을 일으키는 통에 브라티슬라바와 빈, 프라하의 카메라 수리점을 찾아갔는데, 제니트(Zenit)를 비롯한 소련산 외에는 잘 다루지 못했다. 결국 사진 화질이 급 저하됐는데, 귀국 전까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인화해 보니 차이가 너무 컸다.
아침 일찍 빈으로 출발했는데, 50분 만에 70km를 달려 빈 중앙역(Wien Hauptbahnhof)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시간의 효율적 배분이 우선이다. 오스트리아는 지금까지 여행한 동유럽 국가들에 비해 여행정보가 많은 편이다. 몇 페이지 안 되지만, 감읍할 따름이다. 역에서 나서자마자 24시간 티켓을 끊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빈 중앙묘지를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선택과 달리 중앙묘지(Wiener Zentralfriedhof)로 향했다. 빈 남쪽 시외지구인 지머링(Simmering)에 있다. 모차르트 가묘를 중심으로(실제 장지는 장크트 마르크스 묘지), 1888년 이장한 베토벤, 슈베르트를 포함해서 브람스, 살리에리,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 거장들이 묻힌 곳이다. ‘음악가 묘역’으로 불리는 공간은 좁은 통로에 규모가 작았지만,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을 들렀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로 세계적인 여걸로 꼽히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건축을 시작했으나 원 계획의 3분의2 크기로 완공됐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11번째 딸이다.) 건물 외벽이 옅은 노란색인데, 마리아 테레지아 옐로우로 불린다.
다음은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으로 향했다.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었는데, 유럽에 같은 명칭의 건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대튀르크 전쟁(The Great Turkish War)의 영웅 사부아 공자 외젠(François Eugène de Savoie-Carignan)이 1697년에 부지를 매입해서 지은 여름용 저택으로 하궁과 상궁, 스위스정원으로 구성됐다. 현재는 미술관이다.
국립오페라극장(Staatsoper)으로 이동해서 재빨리 내부를 훑어봤다. 역시 크고 화려하다. 걸어서 바로 옆에 있는 호프부르크(Hofburg)로 갔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정궁으로 오스트리아 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정치 중심지였다. 루브르 다음으로 넓은 궁전으로 현재 오스트리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호프부르크 정면으로 영웅광장(Heldenplatz)이 이어진다. 방문한 날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 작업 장면이 나오지 않게 신경 쓴 기억이 있다. 왕궁 앞으로 카를 대공(Archduke Charles)과 외젠의 동상이 있다. 1938년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Anschluss) 당시 히틀러가 연설한 장소였다.
호프부르크와 영웅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둘러본 뒤 트램으로 링슈트라세(Ringstraße)를 출발해서 시민공원(Stadt park), 부르크 극장(Burgtheater), 빈 대학교(University of Vienna), 그리고 오토 바그너 광장(Otto-Wagner-Platz) 등을 들른 것 같다.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다. 디카 등장 이후로는 사진 찍힌 순서로 여행 동선을 파악하기 쉬운데, 필카는 조금 번거롭다.
막판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조금 방만하게 흘렀다. 그렇다고 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을 시작해서 1160년에 완공했는데, 1258년 화재로 건물이 파괴됐고, 1263년에 더 큰 건물로 완공했다. 1304년 이후 고딕양식의 3개 본당이 건설되기 시작됐고, 1511년까지 공사가 이어졌다.
슈테판 대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폐허가 될 뻔했다. 히틀러의 경호대장 출신의 독일 방위군(Wehrmacht) 사령관 요제프 디트리히(Josef Dietrich)가 “포탄 100발로 대성당을 폐허로 만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위 게르하르트 클린키히트(Gerhard Klinkicht)가 명령을 무시했다. 1945년 소련군 침공 당시 민간인이 일으킨 화재로 일부 손실을 보기도 했다.
슈테판 대성당에서 조금 나오면 빈 최대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Kaerntner strasse)로 이어진다. 노천카페가 늘어선 곳으로 차량 진입을 통제한 것 같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슈베르트 동상 등이 서있던 시민공원에는 낮에도 쉬지 않고 수준급 현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EU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 빈은 2018년과 2019년 연속 ‘살기 좋은 도시’에 선정됐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이 그렇듯이 빈 역시 뉴욕, 런던, 파리, 도쿄, 서울, 상하이 같은 대도시(Metropolis)로 보기는 어렵다. 면적은 서울보다 작은데, 녹지가 절반이고, 인구 201만명으로 서울의 5분의1에 불과하다. 도시 중심부인 구시가지(Innere Stadt)는 전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서 임의로 지붕색깔을 바꾼다든지 하는 외관 변경은 꿈도 꾸기 어렵다.
많은 곳을 다녔는데, 유독 빈 대학교가 기억에 남는다. 1365년 설립돼 독일어 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유명한 철학자·과학자모임 ‘빈 학파(Wiener Kreis)’를 배출했다. 당시 노벨상 수상자 12명을 배출했다고 했는데, 다시 확인하니 2020년 기준 20명으로 늘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생이 없다. 덥수룩한 작은 정원 옆 복도에 설치된 프로이트 흉상이 기억난다.
빈 여행은 당일치기였다. 이후 로퍼, 할슈타트, 잘츠부르크, 호헨베르펜, 인스브루크 등 오스트리아의 많은 여행지를 며칠씩 머물면서 방문했지만, 1회용 필카의 흐릿한 사진에 담긴 감성은 독보적이다. 후배 부부가 아직 환영의사를 밝히고 있는 동안 빈 여행도 다시 짜봐야겠다.
PS. 빈 여행을 마치고, 브라티슬라바에서 체코 프라하행 기차를 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가 또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첫날 대중교통 이용권 묶음을 사서 쓰고 있었는데, 버스에 탑승할 때마다 출구 쪽에서 승객이 직접 티켓에 펀칭해야 한다. 하필 마지막 날 일이 터진다.
한 장 남은 티켓에 펀칭하고, 자리에 앉았다. 배낭은 빈자리에 뒀는데, 그 바로 앞에 서유럽출신 중년남성이 있었다. 두세 정거장 지났을까, ‘깍두기머리’의 건장한 청년이 타더니 슬로바키아어(?)로 한참 윽박지른다. 뭔 소리여 하는데, 승객들이 주섬주섬 티켓을 꺼내기 시작한다.
티켓검사였다. 일일이 티켓검사를 하지 않는 점을 악용해 무임승차했다가 걸리면 크게 당하는 곳이 유럽이다. 깍두기 청년이 시계방향으로 돌아 다가오는데, 앞에 있던 남성이 서둘러 내리려다 제지당한다. 무슨 큰 범죄자 다루듯 하는데, 그 아저씨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드디어 동유럽토박이 차례. 당당하게 펀칭한 티켓을 보고도 이 녀석 표정이 험악하다. 영어로 설명을 요청하니, “이 티켓은 버스용이 아니라 전차용”이라고 한다. 게다가 배낭을 올려둔 앞 좌석도 요금을 물어야 한단다. 살짝 약이 오른다. 나름 동유럽토박이로서 논박하고 싶었다.
“규정이 있느냐”고 묻자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인쇄물을 꺼낸다. 틀림없이 버스용과 전차용 티켓이 따로 있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짐에도 별도요금이 붙어있었다. 아쉬운 점은 왜 그런 규정이 외국인에게 국제어로 공지되지 않은 채 공무원 주머니 속에 있느냐는 점이었다.
엄청난 벌금을 맞을 순간, 동유럽토박이는 급 겸손한 태도로 △펀칭한 티켓을 갖고 있었고 △사전에 차이를 인지할 기회가 없었음을 재차 설명했다. 깍두기 공무원은 정상을 참작해 동유럽토박이를 방면했지만, 서유럽 아저씨는 결국 씁쓸한 뒷모습을 남긴 채 그들에게 끌려갔다.
사전공지 없이 갑자기 공무원의 주머니 속에서 등장한 그들만의 언어로 쓰인 규정. 체코와 분리한 지 갓 5년이 지난 슬로바키아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남긴 이색적인 인상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명백하게 브라티슬라바의 것인데, 여행순서에 따라 빈 여행과 함께 묶었다.
[빈 MTA] 빈 중앙역(Wien Hauptbahnhof), 빈 중앙묘지(Wiener Zentralfriedhof),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 호프부르크(Hofburg), 영웅광장(Heldenplatz), 국립오페라극장(Staatsoper), 링슈트라세(Ringstraße), 시민공원(Stadt park), 부르크 극장(Burgtheater), 빈 대학교(University of Vienna), 오토 바그너 광장(Otto-Wagner-Platz),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 케른트너 거리(Kaerntner strasse)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중앙역 #중앙묘지 #쇤브룬 #호프부르크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슈트라우스 #슈테판성당 #케른트너거리 #국립오페라극장 #부르크극장 #빈대학교 #빈학파 #링슈트라세 #오토바그너광장 #벨베데레궁전 #사부아공자외젠 #로퍼 #할슈타트 #잘츠부르크 #호헨베르펜 #인스브루크 #브라티슬라바 #티켓검사 #겸손하지않으면 #벌금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