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 1회용 필름카메라에 담긴 중세 프라하

[체코] 카를교는 ‘불변’ 바츨라프광장은 ‘개벽’ 맥도널드 1·2호점은…

by Keeper of HOPE
19980725 Praha Czech003.jpg 1998년 7월 체코 프라하성. 사람들 복장을 제외하면 현재 모습과는 거의 차이가 없다.


“아름답지 않소?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중부유럽의 도시요. 이 모든 게 내 업적이오.”


1938년 9월 30일 독일을 달래기 위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배신으로 회담에 참여하지도 못한 체코슬로바키아는 주데텐란트(Sudetenland)를 내줘야 했다. 이른바 뮌헨 협정이다. ‘서구의 배신(Western Betrayal)’으로 유명하며, 체코인은 ‘뮌헨 배신"(Mnichovská zrada)’으로 부른다


굴욕적인 협정에 서명했던 체코의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시(Edvard Beneš)가 1945년 5월 프라하를 내려다보며 측근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항복을 정당화하는 ‘정신승리’였으나 실제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했기 때문에 프라하는 1000년 역사의 보헤미안 유산을 지킬 수 있었다.




1998년 여름. 11번째 나라는 체코였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체코 프라하(Praha)까지는 5시간 걸렸다. 비용은 미화 23달러. 원래 하나의 국가였는데, 오스트리아 빈보다 6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적이고 동유럽 분위기가 강한 브라티슬라바와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프라하는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직접적인 폭격을 피했던 관계로 유럽에서 첫손에 꼽히는 중세 유럽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카를교(Karlův most)와 말라스트라나(Malá Strana), 프라하 성(Pražský hrad),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Víta),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 화약탑(Prašná brána), 구시청사 천문시계(Pražský orloj)는 당시에도 유명했다.


평이 좋은 유스호스텔에 체크인을 한 뒤 샤워를 마치고, 오후 3시 프라하성으로 나섰다. 성도 성이었지만 황금소로(Golden Lane), 그중에서도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작업실)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인기 명소에서 좀 밀린 것 같은데 당시엔 꽤 여행객의 관심도가 높은 곳이었다.


성으로 가는 길이 제법 멀다. 카를교로 이어지는 길이 아닌 반대편에서 올라갔는데, 유스호스텔이 그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이 잘 보이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성 뒷문인가 싶어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했는데, 개척자의 삶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프라하성은 단정했다. 9세기 후반 건설돼 14세기 고딕양식, 16세기 르네상스, 18세기 바로크양식을 거쳐 네오고딕의 모습을 두루 갖췄다는데, 알아볼 지적 안목을 갖추지 못한 터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 이후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부 구역은 출입을 통제했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의 여성직원이 프라하성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도 했다.


19980725 Praha Czech004a.jpg 프라하성 내부 성 비투스 대성당. 세계에서 3번째 고딕 양식 성당으로 바츨라프 1세, 카를 4세 주요 인물의 유골이 안치됐다.


왕실정원과 벨베데레, 성 비투스 대성당, 황궁, 성 조지 성당을 빠르게 거쳐 기대했던 황금소로 22번지에 도착했다. 황금 세공사와 프라하성 일꾼이 살았던 곳으로 좁았지만 사람들이 많다. 당시엔 카프카 생가로 소개됐었는데, 사실 그의 여동생 오트라의 집으로 차분하게 집필할 수 있는 매우 작은 공간이었다. 집도 통로도 문도 작고 좁아서 줄지어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여담으로 이 체코 출신 유대인 독문학 대문호와 관련한 관광명소는 황금소로 22번지 말고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카프카 생가, 카프카 동상, 카프카 박물관 등이 다양하게 관광명소로 소개되지만, 동상과 박물관은 21세기 들어서야 만들어졌다고 한다. 암튼 그때는 그랬다.




천천히 성을 내려와 카를교를 향했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물 흐르듯 사람들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지만 그다지 넓지 않고, 경사는 제법 급한 구간이 있었다. 길가에 각국 대사관이 있었는데, 비자를 받기가 어려운지 한숨 쉬면서 나오는 이들이 꽤 있었다.


카를교는 길이 516m에 폭 9.4m로 넓지 않지만, 블타바(몰다우)강을 가로지르는 가장 오래된 다리다. 무엇보다 양쪽으로 늘어선 30개의 동상이 유명했다. 제일 먼저 세워진 예수 수난 십자가상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청동으로 만든 성 얀 네포무크(Svatý Jan Nepomucký)상에 인파가 몰린다. 참고로 2025년에 27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과거와 비교해도 달라진 게 없었다.


카를 4세의 아들 바츨라프 4세 치하에서 고백성사를 통해 왕비의 외도사실을 알게 된 신부 네포무크는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구했다. 혀가 잘려 순교당한 채 시체로 카를교에서 던져졌다고 하는데, 단순 치정사건보다는 훨씬 복잡한 정치·종교적 맥락이 얽혀있다.


대립교황을 지지하는 바츨라프 4세와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프라하 대주교 사이에서 네포무크가 대주교 편에 서자, 격분한 왕이 그를 순교자로 만든다. 로마 교황으로부터 폐위당한 바츨라프 4세는 ‘종교개혁의 선구자’ 얀 후스(Jan Hus)를 지지하고, 후스 처형 뒤 발발한 후스전쟁에서 ‘체코의 이순신’ 얀 지슈카(Jan Žižka z Trocnova a Kalicha)의 맹활약이 펼쳐진다.


19980725 Praha Czech005.jpg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27년이 지난 현재와 큰 차이가 없다.


네포무크 동상은 아래편에 새겨진 부조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회자된 이후 청동 부조의 색깔이 금빛으로 바랬을 정도로 많은 손길이 오갔다. 카를교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주장이 있지만(나무위키 등), 예수 수난 십자가상이 1657년, 네포무크 성상이 1683년 세워진 것으로 나온다. 네포무크 성상은 바로크시대 이후 세워진 29개 조각상 중 첫 번째였다.


당시 존 네논의 벽(Lennonova zeď)이 슬금슬금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큰 관심이 없어 가보지 않았다. 독일에 있는 친구와 통화했다. 충분히 여행하고 천천히 오라고 한다. 일정이 넉넉해졌다. 카를교와 프라하성의 야경을 충분히 감상한 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국립박물관이 있는 바츨라프 광장으로 갔다. 프라하성에서 보면 블타바강 너머 신도심에서 출발해서 구도심을 여행하고, 카를교를 건너 다시 프라하성을 볼 요량이었다. 성 바츨라프 기마상 아래에서 광장이 시작되는데, 갸우뚱했다. 생각만큼 넓지 않다. 27년이 지나 최근 다시 갔을 땐 훨씬 넓게 느껴졌다. 도시정비와 차량 통행구역을 대폭 줄인 덕인 듯싶다.


유럽 거리에 맥도널드는 이질적이었다. 그나마 다른 미국 햄버거브랜드는 아직 들어오기 전이었다. 6년 전인 1992년 광장 인근에 체코 1호 맥도널드점이 개업했는데, 기마상 바로 옆의 2호점을 간 것 같다. 채식을 했지만, 오히려 햄버거매장을 자주 찾았다. 패티만 제거하면 확실하기 때문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국물이나 소스가 포함된 현지 음식은 왠지 더 조심스럽다.


19980725 Praha Czech006.jpg 체코 국립박물관과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의 주요 무대였는데, 현재와 달리 그때는 좁게 느껴졌다.


여담으로, 그보다 3개월 전 몰도바에 맥도널드 광고와 뉴스가 쏟아졌다. 1호점 오픈. 자주 갔는데, 가장 크고 비싼 빅맥세트를 시켜 패티 빼고 먹었다. 기본 버거를 먹는 손님과 점원들이 의아하고 안타깝게 쳐다봤다. 해시포테이토로 대체하고 싶어도 보통 1호점은 융통성이 없다.


화약탑과 구시가광장, 틴성당(Kostel Panny Marie před Týnem), 얀 후스 기념비, 구시청사와 천문시계 등 볼거리가 많은 구도심으로 옮겨갔다. 관광객이 많았지만, 지금에 비하면 한가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이 주둔했던 구시가광장에서 그 시절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탱크와 자주포가 등장하고, 시민이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1980년 5월이 겹친다.


‘프라하의 봄’이 1945년부터 매년 열린 음악제 명칭에서 유래했다는 시각이 있지만, 통상 서방 언론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운동을 표현한 은유로 보는 것 같다. 이후 ‘부다페스트의 봄’ ‘바르샤바의 봄’ ‘서울의 봄’ ‘아랍의 봄’까지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점심에 화약탑 인근에서 우리말이 들린다. (기억으론 카를교였는데, 예전 메모를 보니 화약탑이다. 정확하진 않다.) 반가웠다. 학술대회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다가 프라하를 잠시 들른 세 명의 대학생이었다. 남학생 2명에 여학생 1명이었는데, 여학생이 아는 후배와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였다. 심지어 사는 곳은 우리 옆 동네였다. 세상이 좁다는 걸 프라하에서 새삼 느낀다.


IMF가 터진 뒤 그때까지 가보지 못한 한국이었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 친구들은 외형상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프로야구에서 이승엽 선수가 기록적인 홈런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며 한참을 설명한다. 삼성팬 도파민 돋는 만남이었다.


19980725 Praha Czech002a.jpg 명품 브랜드가 많아졌을 뿐 구시가광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당시엔 관광객이 지금만큼 많지는 않았다.




사실 전날 숙소에서 한국인(?)을 만날 뻔한 일이 있었다. 젊은 남성과 마주쳤는데, 홑꺼풀 눈과 높은 광대뼈, 비교적 평평한 얼굴형 등 동북아인의 전형적인 특징을 두루 갖췄다. 딱 봐도 우리나라 사람 같았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서로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IMF 시절이니 한국인은 드물고, 체코가 과거 공산국가였으니 혹시 북한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우리말을 던졌는데, 다른 언어가 날아온다. 영어에도 답을 못한다. 혹시~ 러시아말을 건네니, 몽골에서 왔다고 했다. 몇 년 뒤 몽골에서도 느꼈지만, 우리나라 사람과 정말 닮았다.


map012.jpg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가 위치한 신도심과 구도심은 카를교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왼편으로는 프라하성이 있다.(구글지도)


[프라하 MTA] 프라하 성(Pražský hrad),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Víta), 황금소로(Golden Lane),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작업실), 카를교(Karlův most), 말라스트라나(Malá Strana), 존 네논의 벽(Lennonova zeď),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 국립박물관, 화약탑(Prašná brána), 구시청사 천문시계(Pražský orloj), 틴성당(Kostel Panny Marie před Týnem), 구시가광장, 얀 후스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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