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얼굴, 삼국유사 속 김유신

포항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 강연 후

김유신 초상화


24년 늦은 여름이었다.

나는 포항에 조지프캠벨 강연 한 꼭지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난해한 이 책을 일반 시민들에게 이야기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찾은 실제 영웅이 김유신이다.

나는 캠벨의 관점으로 김유신을 소개했다.


1. 켐벨에서 김유신으로


조지프 캠벨은 영웅을 설명할 때 언제나 속도를 늦춘다.

영웅은 번쩍 나타나 싸우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오래 불려 다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지프 캠벨이 말한 입문–시련–귀환의 구조는 결국 한 인간의 이동 경로이자, 기억이 머무는 방식이다. 이 구조를 한국의 땅 위에서 가장 길게 남긴 인물, 김유신을 떠올리면 그 말이 실감 난다.

김유신의 이야기는 언제나 땅의 감각으로 시작된다.

충북 진천, 길상사. 김유신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과 그 일대는 그의 탄생과 태실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다. 태실은 말하자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웅을 공동체가 먼저 맡아 돌보는 자리다. 김유신의 입문은 전쟁이 아니라, 땅이 먼저 이름을 기억해 준 순간에서 시작된다.


2. 영웅의 탄생


충북 진천 길상사, 김유신 탄생지


진천은 늘 ‘지나가는 곳’으로 불려 왔다. 머무르기보다는 건너가는 땅. 어쩌면 영웅은 언제나 이런 곳에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할 운명을 지닌 존재. 김유신의 삶이 평생 길 위에 놓여 있었음을 생각하면, 그의 탄생지는 이미 그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김유신은 곧 산으로 들어간다. 단석산에서 칼을 얻고, 석굴에서 기도한다. 이 시기는 그의 삶에서 가장 조용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 캠벨이 말한 시련은 소란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내려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이 시기를 통해 힘보다 절제를, 속도보다 판단을 배운다. 천관녀 이야기에서 말을 베는 장면은 단순한 결단이 아니라, 영웅이 감당해야 할 고독의 상징이다.

이후 김유신의 이야기는 산을 넘어 바다 쪽으로 시야를 넓힌다.

최근 주목되는 지점은 김유신 집안과 포항의 연관성이다. 포항은 고대부터 철과 불, 바다의 도시였다. 제철과 해상 이동이 만나는 곳. 가야계 김유신 가문이 철과 무기, 군사력과 깊이 연결된 집안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포항은 김유신의 세계를 산속 수행에서 해양 네트워크로 확장시키는 상징적 장소가 된다. 그의 영웅성은 고요한 명상과 함께, 파도와 불꽃의 감각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귀환의 시간이 온다.

하지만 김유신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지역과 공동체로 흩어져 돌아온다. 경주에서는 국가를 설계한 장군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수호신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성황으로 기억된다. 이 지점에서 한 기록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3. 영웅의 현재성


김유신이 바위를 잘랐다는 단석산


허균의 『성소부부고』.

이 문헌에 따르면 김유신은 강릉에서 대관령국사성황으로 모셔진다. 여기서 김유신은 더 이상 역사책 속 인물이 아니다. 그는 산과 길, 바람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 강릉과 대관령은 바다와 산이 맞닿는 경계의 공간이다. 이동과 통과의 장소다. 김유신이 이곳에서 성황으로 모셔진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웅의 귀환이란, 권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자주 건너는 길목에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릉 단오제, 대관령 국사성황 신앙 속에서 김유신은 범일국사와 겹쳐지고, 때로는 분리되지 않은 채 기억된다. 이는 김유신이 한 종교나 한 제도에 묶이지 않고, 지역의 삶 속으로 스며든 영웅임을 보여준다. 그는 국가의 영웅에서 지역의 신으로, 다시 사람들의 일상 속 이야기로 이동한다.

이렇게 보면 김유신의 삶은 끝없이 확장되는 원처럼 보인다. 진천에서 태어나고, 산에서 시련을 겪고, 바다의 감각을 지나, 마침내 대관령의 바람 속에 머문다. 이것이 캠벨이 말한 귀환이다. 영웅은 떠났다가 돌아오되, 다른 차원의 존재로 남는다.


4. 인공지능 시대 소환되는 김유신


죽어서 왕이 된 김유신 묘 흥무대왕


그래서 지금, 김유신을 기억하는 공간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난다. 사당이 되고, 축제가 되고, 성황이 된다. 심지어 학생들이 만드는 메타버스에서 다양한 아바타로 등장한다.

이는 보존이 아니라 활용이다. 기억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AI와 메타버스의 상상력은 여기서 조용히 길을 잇는다. 진천 길상사에서는 ‘태어남’을, 포항에서는 ‘철과 이동’을, 경주에서는 ‘결단’을, 강릉 대관령에서는 ‘머무는 귀환’을 체험하는 아바타의 여정. 사용자는 김유신이 아니라, 김유신이 남긴 길을 걷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남는다.

영웅은 왜 끝내 성황이 되었을까.

아마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오래 불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김유신은 그렇게 오늘도 강릉의 바람 속에서, 진천의 땅에서, 포항의 불과 바다 곁에서 천천히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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