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우치와 삼국유사 상상력

만파식적과 사금갑설화를 중심으로

ⓒ 영화 〈전우치〉(2009), 장면 캡처

2009년 인공지능이 아직 도입되기 전이다

영화 전우치 속 피리가 요괴를 깨우고 봉인된 전우치가 세상으로 나오고 다시 그림에 갇히는 상상력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특수촬영으로 많은 공이 들어가야만 되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이제 그런 상상럭은 일상이 되었다.

당시 즐겁게 전우치를 본 이유의 중심에는 삼국유사가 있었다.


1. 만파식적 ― 소리가 세상을 잠재우던 기억

영화 전우치의 세계는 피리 소리로 시작된다. 요괴가 들고 있는 피리 하나 때문에 세상은 소란해지고, 질서는 흔들린다. 이 설정의 뿌리에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만파식적의 기억이 놓여 있다. 만파식적은 신문왕에게 내려온 신비한 피리로, 그 소리가 울리면 나라의 근심이 사라지고 병이 낫고 바다가 잠잠해졌다고 한다. 무기가 아니라 소리였고, 힘이 아니라 조율이었다.

〈전우치〉는 이 고요한 신화의 상상력을 뒤집는다. 영화 속 만파식적은 더 이상 나라를 안정시키는 성물이 아니라, 잘못된 손에 들어가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위험한 물건이 된다. 이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신화의 세계에서 만파식적은 왕과 공동체의 덕에 반응하는 악기였지만, 영화의 세계에서 피리는 욕망과 권력에 반응한다. 소리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것이 울리는 방향은 달라졌다.

전우치는 이 피리를 통해 깨닫는다. 문제는 피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를 쥔 존재의 마음이라는 것을. 만파식적은 한때 세상을 하나로 묶던 소리였지만, 이제는 분열을 드러내는 소리가 된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아직도 소리로 서로를 잠재울 수 있는가, 아니면 소리는 이미 누군가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전우치〉의 만파식적은 단순한 신화적 소품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한때는 모두를 살리던 소리가, 지금은 모두를 시험한다. 그 변화의 간극에서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2. 사금갑 ― 사람 대신 구조를 겨누는 화살

『삼국유사』의 사금갑 설화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서늘하다.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이 쪽지는 인간에게 잔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포기하라는 명령,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 하지만 설화의 결말은 의외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왕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쪽지에 적힌 또 하나의 문장, “거문고 갑을 쏴라”를 따른다. 화살은 인간이 아니라, 음모가 숨겨진 상자를 향한다.

영화 〈전우치〉는 이 사금갑의 상상력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되살린다. 스승 천관대사가 전우치에게 남긴 마지막 말 역시 “거문고 갑을 쏴라”다. 전우치가 거문고를 향해 화살을 날리자, 그 안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진실은 말로 설명되지 않고, 구조를 파괴하는 순간 드러난다.

범인은 밖의 요괴가 아니라, 안에 숨어 있던 화담이었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영화가 선택의 윤리를 바꾸기 때문이다. 누구를 죽일 것인가를 묻지 않고, 왜 이런 선택이 생겼는지를 묻는다. 사금갑은 “덜 나쁜 선택”을 고르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만들어낸 시스템을 폭로하는 상징이다. 전우치의 화살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행위다.

〈전우치〉 속 사금갑은 오늘의 세계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종종 하나를 희생해야 모두가 산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정말로 그래야만 하는지, 혹시 우리가 겨누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사람 대신 구조를, 결과 대신 원인을 향해 날아간 화살. 그 순간, 사금갑의 오래된 신화는 현재형 윤리가 되어 우리에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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