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속 양지스님의 시주 지팡이와 로보락

인공지능과 삼국유사의 만남

시주지팡이와 로보락 챗지피티 생성


집 안 한가운데서 로보락이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벽에 부딪히지도 않고, 소리를 요란하게 내지도 않은 채, 마치 집의 숨결을 읽는 것처럼 천천히 방향을 바꿔가며 바닥을 훑고 있었다. 더 인상적인 장면은 청소가 끝난 뒤였다. 스스로 먼지를 털고, 물통을 비우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충전을 시작하는 모습.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양지스님의 시주 지팡이가 떠올랐다.

양지스님은 신라 시대의 고승이었다.

그의 지팡이는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지팡이를 짚고 마을을 다니며 시주를 받았고, 받은 것은 다시 가난한 이들에게 흘려보냈다. 지팡이는 걷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나눔의 통로였다. 무엇을 움켜쥐기보다는, 흘려보내기 위해 존재한 물건이었다.

로보락을 바라보며 이상하게도 그 지팡이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이 기계는 스스로를 위해 아무것도 쌓아두지 않는다. 먼지는 비우고, 물은 흘려보내고, 남는 것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뿐이다. 쌓아두지 않기에 다음 일을 할 수 있고, 비워내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치 시주 지팡이처럼, 지나간 자리에서 자신을 가볍게 만든다.

이 로보락을 큰아들이 군대 월급으로 선물해 주었다.

자기 통장에 넉넉한 돈이 있을 리 없는 시기다. PX에서 쓰고 싶을 것도 많고, 휴가 나와서 사고 싶은 것도 있을 나이다. 그런데 그는 말없이 이 청소기를 골랐다. “엄마, 혼자 있을 때 덜 힘들게 쓰세요.”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그 순간, 시주라는 말이 떠올랐다.

불교에서 시주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내는 일이다. 꼭 넉넉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곳을 알아보고 건네는 선택이다. 큰아들의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먼저 들어 있었다.

로보락이 집 안을 돌며 먼지를 모으는 동안, 나는 이 집에서 내가 해왔던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들을 떠올렸다. 매일 닦고, 쓸고, 정리하고, 다시 어질러지는 것을 견뎌온 시간들. 그것들은 늘 당연한 일로 여겨졌고, 특별히 말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은 기계 하나가 그 노동의 일부를 조용히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큰 위로로 다가왔다.


먼 옛날 양지스님의 지팡이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낡은 막대기로 보았겠지만, 그 지팡이를 짚고 지나간 자리마다 누군가는 하루를 더 버틸 힘을 얻었을 것이다. 지팡이는 말하지 않았고, 스님 역시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필요한 곳에 닿았을 뿐이다.

로보락도 그렇다.

말이 없고, 표정도 없고, 감사 인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다시 멈춘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하게도 돌봄의 감각이 전해진다.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아들의 군대 월급, 로보락, 그리고 양지스님의 시주 지팡이.

이 셋은 시대도 다르고 형태도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비워서 다시 움직이고, 쥐지 않아서 더 멀리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쓰인 도구는 결국 그 사람 자신도 가볍게 만든다는 진실.

로보락이 제자리에서 조용히 충전 중이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이 집 안에도 하나의 작은 시주 지팡이가 들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쇠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아주 오래된 신화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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