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집을 나서 아파트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단지 내 놀이터를 꼭 지나게 된다.
요즘처럼 추울 때는 놀이터도 휑하지만
날이 좋으면 아이들이 나와 뛰어놀고, 벤치엔 엄마들이 앉아 담소를 나눈다.
나는 그 풍경이 좋아 걸음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잠시 바라본다.
휴일 낮 아파트 단지의 풍경은 내게 큰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두 귀를 형광 분홍색으로 물들인 강아지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
쓰레기 버리는 날이 아닌데도 열심히 쓰레기장을 정리하시는
경비 아저씨, 잠옷 위에 패딩만 걸쳐 입고 나와 아이랑 손잡고 슈퍼 가는 아저씨.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오늘도 별일이 없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르고 싶은 나이, 서른.
적어도 내 인생에서 만큼은 별의별 일을 다 겪고 나니
지금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하루는 오늘처럼 아무 일 없는 날이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나의 연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보다가 큰 걱정 없이 잠드는 밤.
감사하다.
난 별일 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