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서비스

서비스의 본질은 '사람' 이다

by 계란말이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십 년을 일했다.

나는 직접 음식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셰프들이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가장 먼저 마주하고, 그것을 손님에게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음식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다.

그릇의 온기, 소스의 향, 손님이 음식을 기다리는 순간의 표정까지…

나는 그것을 읽어내는 게 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안에서 무언가 흔들리고 있었다.

일은 반복되고, 성과는 보이지 않고, 내가 하고 있는 서비스가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 회의가 찾아왔다.

그날따라 마음이 답답해져, 충동적으로 기차에 올랐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저 멀리 가고 싶었다.

기차는 낯선 시골 역에 멈춰 섰다.

나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내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뺨을 스치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작은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허름한 내부, 오래된 간판, 영업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어두운 조명

나는 더 이상 어딘가를 더 찾아다닐 수 있는 힘도.. 용기도 없었다.

피곤함에 이끌려 문을 열었다.

메뉴를 오래 보지 않았다. 음식보다는 그냥 나를 쉬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기다리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복잡한 생각들만이 떠올랐다.

그때, 주인아주머니께서 음식을 내오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민이 너무 많을 때는, 맛있는 음식만큼 도움이 되는 게 없지요.”

순간, 마음 한쪽이 울컥하며, 바라보던 창밖은 뿌옇게 흐려졌다.

수도 없이 말했던, 평범한 인사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을 식당에서 손님을 맞아온 사람만이 가진 따뜻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김치찌개와 함께 노란빛의 계란말이가 놓였다.

계란 사이사이 초록과 하얀 파가 고르게 섞여 있었다.

나는 순간 난감했다. 사실 나는 파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파가 들어간 음식은 가능한 한 골라내거나 피하기 일 수였다

하지만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그대로 두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고객이 거부하거나 남겼을 때

그 오묘한 공포감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기분이기에...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분명 계란이 주인공인 요리였지만, 파의 아삭함이 계란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내가 싫어하던 파의 강한 향은 사라지고, 대신 신선한 식감과 은은한 향이 계란을 감싸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싫어했던 건 사실 ‘파’가 아니라, 파를 마주하지 않고 피하고 싶었던 거였다.

다시 한번 내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다.

조심스럽게 눈을 닦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벽지, 닳아 있는 의자, 오랜 세월이 묻은 노란 그릇, 평범한 김치찌개.

겉으로 보이는 것은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내 안은 달라져 있었다.

음식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고민은 잠시나마 희미해졌고, 지금 눈앞의 따뜻한 음식과 아주머니의 미소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만나는 고객에게 지금 느낀 이 감정을.. 이 기분을 전하고 싶다고.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위로하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으니까.

호텔에서 수없이 제공했던 고급 요리들, 화려한 테이블 세팅, 완벽한 서비스 매뉴얼.

그것들이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날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평범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에서 느낀 울림은 그 어떤 순간보다 깊고 또 깊었다.

내가 믿었던 서비스의 본질,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초심이 다시 떠올랐다.

서비스란, 생각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바꿔주는 작은 계기와 진심이란 것을.

그날의 계란말이 한 조각이 내게 가르쳐 준 건 바로 내가 찾던 서비스의 한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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