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다낭 속으로

by 지현옥


하늘은 오늘도 찌뿌둥하다.

빗방울을 떨구지 않는 것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시내를 걸어보기로 했다. 인도와 차도가 불분명하게 도로를 꽉 메운 오토바이 행렬로 걷기가 쉽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의 리얼한 삶이 보였다.


거리에는 한국 간판들이 적잖이 보이고, 실제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식당 종업원들은 간단한 한국말을 하고, 마사지나 네일숍 앞에서는 '안녕하세요' 인사말로 한국인에게 호객행위를 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겐 큰 우위를 점하는 것 같았다.


​이렇듯 도시의 겉모습은 '경기도 다낭시'에 걸맞게 온통 한국에 호의적으로 보였지만, 그들의 삶을 보며 사실 우리가 그렇게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들의 한국에 대한 호의는 진심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라지만, 전쟁은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누군가에게 그 아픔은 아직도 여전할 것이다. 한국군이 저지른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친절한 미소가 다소 불편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한국과 다낭은 연결고리가 많다. 다낭 시내에도 한강이 흐른다. 동쪽에 미케 해변이 넘실댄다면, 도심 가운데를 흐르는 한강은 다낭의 심장이다. 강 주변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강변을 따라 강변도로인 '박당거리'가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모양의 용다리를 건너 재래시장인 한 시장까지 걸었다.



동쪽으로 머리, 서쪽으로 꼬리를 둔 거대한 용 모양의 다리는 다낭을 지키는 한강의 랜드마크로 보였다. 다리 위에 서자 봇물처럼 다낭으로 몰려드는 큰 자본이 강변을 따라 쌓이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높이 솟은 스카이라인과 북적이는 사람들, 곳곳에 널려진 공사장에서 다낭의 변화의 물결을 보는듯했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과 맞닿아 있는 도시를 사람들이 그냥 둘리 없다. 밤이 되면 용다리에 들어오는 조명과 미케 해변의 화려한 불빛의 두 축이 도시를 환하게 밝히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어딜 가나 재래시장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강 옆에 있는 '한 시장'도 다양한 물건만큼이나 여러 인종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서양인들, 아시아계, 특히 인도 사람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맛집을 먼저 찾았다. 운 좋게도 2년 연속 미슐랭 스타를 받은 현지 음식점, '안토이'를 발견했다. 긴 웨이팅이 명성을 말해주었다. 신선한 야채, 정갈한 플레이팅, 깊은 감칠맛이 지루한 기다림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많이 걸은 후라, 망고와 파인애플 스무디가 특히 상큼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간 건 사람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이들이 말을 붙여왔다. QR코드 음식 주문이 어설퍼 보였던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했다.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 했더니 한국화장품 덕분이라며 좋아했다. 한국말도 제법 했다.


그들 나라에서 K 뷰티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또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며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한국을 보는 젊은이들의 시각에 자긍심이 일고 뿌듯해져서 맛집의 한 끼가 한층 더 흡족했다. 여행지에선 이국적인 풍경 못지않게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여행을 훨씬 즐겁고 빛나게 한다.


근처에는 다낭 성당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때 지어진 고딕 양식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화사한 핑크빛 사암으로 된 외관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 가까이 있는 시장에서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사 입고 성당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장 구경을 하며 오렌지와 망고를 샀다. 동남아에 오면 열대 과일, 특히 잘 익은 망고를 맘껏 먹을 수 있어 좋다. 이곳 현지인들은 잘 익은 노란 망고보다는 초록 망고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당도가 적고 아삭한 식감이 있는 초록 망고를 깎아 소금에 찍어 먹는다. 생고구마와 비슷한 맛이 먹을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었다. 과일보다는 야채 느낌의 건강식인 초록 망고의 맛을 알게 된 것도 기분 좋은 발견이다.


차도보다 더 복잡한 인도를 뚫고 다시 호텔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랩 택시는 비교적 잘 잡히는 편이라 미케 해변 근처 숙소로 별 탈 없이 돌아와 해변을 걸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다낭살이 이틀째에 이미 먹거리는 길거리 음식까지 섭렵하며 적응이 돼가고,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도 문제없이 잘 피해 다니며 그들의 삶에 한 발짝 다가갔다.


무엇보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바다와 고운 해변이 다낭의 시간을 더욱 생동감 있고 밀도 있게 채워준다. 아침엔 수평선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엔 보랏빛으로 물드는 바닷가를 걸으며 마음을 누인다. 조급함과 걱정은 파도에 밀려 보내고, 그 빈자리에 평온만이 깃든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