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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14. 2018

사랑의 모험

모험의 서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년 12월 공대생 C와 첫 연애 ~ 2011년 2월 이별

2011년 3월 체대생 L과 두 번째 연애 ~ 2012년 9월 이별

2012년 11월 한의사 K와 세 번째 연애 ~ 2013년 2월 이별


...... 이하 생략


28살 7번의 연애 끝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라는 것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만고의 진리 딱 두 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타고난 ‘지독한 회피 성향’에 ‘회의주의’와 ‘쾌락주의’ 같은 것들을 더할 수 있었고 결국 ‘지독한 회피 성향을 지닌 회의주의에 젖은 쾌락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나는 ‘사랑’을 ‘연애’로 만들기 위해 온 열정을 쏟았다. 20대 초반 천진하던 날들을 제외하고 줄곧 나의 연애의 바이블은 ‘새의 선물’이었고 인생관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였다. 나는 은희경이 좋았다. 은희경의 진희는 나였고, 나는 곧 진희였다.


“...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 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은희경/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나는 정말이지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썼다. 낭만의 굴레에 갇힌 U가 첫눈에 반한 여자를 따라 내게서 떠났을 때


그러니까 '환승 이별'을 당하고 나서는 패악이 극에 달했다. (내 글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의 심란스러움과 배신감에 사로잡혀 이를 악물고 썼던 글을 읽을 수 있다)

한 달 전 헤어진 J에게는 꽤나 상처를 주기도 했다. 좋은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단단한 사람이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예전에 혀를 내두르고 내게서 도망쳤을 것을 안다. J는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던 1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Abenteuer


그런데 떠듬떠듬 독일어를 독학하기 위해 펼쳐놓은 사전 A면에서 ‘아븐토이어’라는 단어를 발견한 순간, 그리고 그 단어의 뜻이 ‘사랑의 모험’ 임을 보고 나는 알았다. 사람과 사랑에 대한 기대라고는 닳고 닳아 없어진 줄만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려왔음을

아 지긋지긋한 이놈의 낭만병


그러니 내가 힘이 있나. 떠날 수밖에

그렇다. 나는 운명적인 사랑과 낭만적인 연인을 찾아서 모험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뭔가 엄청나게 거창해 보이지만 ‘지독한 회피 성향을 지닌 회의주의에 젖은 쾌락주의자’에게 예견된 좌절과 험난함을 떠올리면 가히 모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실은 모험을 대체할 수 있는 낭만적인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쓰는 것이다.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온 자취를 따라 옛 연애의 지형과 지물을 지도로 그려놓고 다시 그 길로 향하지 않기 위해서다. 사실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독하게 안전한 연애, 규정과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점잖은 연애, 세상과 물질에 타협하는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그려진 지도는 최고로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또 20대 후반의 연애는 어쩌면 계속해서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연애 그 이상의 것을 약속하면서 서로의 현실을 교환하는 그런 것, 안전하고 영리한 것


나는 굳이 그것들을 뿌리치고 모험을 떠난다. 나는 사랑에도, 모험에도 서투른 사람이므로 이 모험에는 당분간 역경만이 예상되지만 역경 없는 성취(?)가 어디 있을까. 나는 사랑을 찾아서 떠난다.


나처럼 낭만병이 도져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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