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성공의 기쁨은 딱 일주일이었다

초보 센터장 일기 #2

by 채돌이아빠

지난 11년의 커리어는 나에게 노련함을 주었다고 믿었다.


평택과 여의도를 오가며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이 되어 있을 것으로 자부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나는 다시 '0'이 되었다.


이직 성공의 기쁨은 딱 일주일 정도였다.


서류 몇 장과 형식적인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본사와 고객, 현장은 기다렸다는 듯 2개월 차 이방인에게 모든 책임을 들이밀었다. 밖에서 보던 이 회사의 조직과 시스템은 매우 견고해 보였으나, 그 속의 정(情) 은 메말라 있었고 나는 아군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처음에는 좋게 가고 싶었다.

MBTI 중에서 'F' 성향이 강한 나는 정말 좋은게 좋다는 관점이라 함께 고생하는 동료로서 마음을 얻고 싶었다. 사비를 털어 음료, 간식들도 돌리면서 차갑고 얼어붙은 공기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녹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각자의 안위와 실익만 챙기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마음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하고 버텨내야 하는 전장터라는 사실을. 나의 따스함은 그들에게 공감이 아닌 '뚫고 들어올 틈'으로 보였고, 사람들은 나를 쉬운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전 직장 11년 동안 나는 항상 멘토를 자처했다. 매뉴얼을 만들고 신입과 경력직의 적응을 돕는 것이 나의 보람이었다. 인사팀에서도 이런 점을 인정해주어 나는 매년 멘토 역할을 많이 부여받고 활동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엔 어떻게든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의 편의만 챙기려는 사람들뿐이다.


지독한 허무함 끝에 결심했다.

더 이상 과한 정은 주지 않기로.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실익을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차갑고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이것이 이 거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선택한 유일한 생존법이다.



집은 차로 15분 거리다.

하지만 난 항상 모든 직원들이 퇴근 한 이후 홀로 센터의 마지막 불을 끄고 집으로 간다.


여의도에서 인천으로 올 때 기대했던 '직주근접'의 복지는 되려 늦어진 퇴근 시간과 무거운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나를 기다리는 와이프와 아들이 있기에 현관 문을 여는 순간 '센터장'의 스위치를 꺼여 하지만, 사람이 참 쉽지가 않다.


애써 웃음을 지어도 혼자만의 샤워 시간에는 외면했던 회사의 숫자 압박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밀려든다. 꿈속에서조차 업무에 시달리며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나는 참으로 불완전한 리더일 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 무거운 압박을 견디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가족' 이다.


회사는 절대 나를 책임지지 않지만, 나는 이 가정을 지켜야만 한다. 나의 차가운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내 소중한 것들을 향한 최선의 보호막이다. 어제의 밤과 오늘의 새로운 아침에도 나는 다시 시작될 바위의 무게를 가늠하며 이 글을 쓴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담백한 진심을,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마음을 기록합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한 뼘 더 단단해지는 삶을 꿈꿉니다.

월, 화,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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