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5화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등장인물 가이드》
회사에서 처음으로 내가 쓴 문서가 사람을 화나게 만든 날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붙잡고 있던 제작 시스템 수정안이 드디어 문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목도 달았고, 표도 넣었고, 변경 포인트도 굵게 표시했다.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최선쯤은 한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문서는 아이템 제작 재료 수급 구간을 손보는 내용이었다. 초반 유저들이 재료를 너무 오래 모으다 지쳐 나간다는 피드백이 많았고, 운영 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재료 드롭량을 조금 올리고, 일부 제작 비용을 조정하고, 제작 시간을 줄이는 안을 정리했다. 문서 마지막에는 ‘초반 이탈 완화 기대’ 같은 문장도 써 넣었다. 학생 때 팀플 자료를 만들던 버릇이 남아 있었다. 결론은 분명해야 하고, 기대효과는 써줘야 하고, 읽는 사람이 보기 좋게 정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최지수 선배는 내 문서를 한 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예외 케이스는요?”
“네?”
“재료가 이미 많이 쌓여 있는 유저들. 제작 슬롯 늘려놓은 유저들. 특정 구간 퀘스트랑 같이 들어갔을 때. 그런 건 봤어요?”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봤다고 하기엔 제대로 못 봤고, 안 봤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일단 기본 구조부터 정리해서…”
최지수 선배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무서운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신입에게 친절하게 길게 설명해주는 선배보다, 더 안 물어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선배가 있었다. 그건 대체로 나중에 크게 배우게 된다는 뜻이었다.
오후에는 개발팀이랑 같이 보는 검토 회의가 잡혀 있었다.
회의실은 늘 그렇듯 시원했는데, 이상하게 사람은 차갑게 만들었다. 윤성호 팀장, 나, 최지수 선배, 그리고 개발팀 쪽에서 박문태 팀장이 들어왔다. 박문태 팀장은 앉자마자 내 문서를 출력물째 넘겨봤다. 종이를 넘기는 속도부터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 같았다.
처음 몇 장은 조용했다.
나는 그 조용함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바로 욕은 안 먹는구나 싶었다. 회사에서는 기대 수준이 생각보다 빨리 낮아졌다. 칭찬받는 것보다 공개적으로 안 털리는 게 먼저 목표가 됐다.
박문태 팀장이 세 번째 장쯤에서 종이를 멈췄다.
“이거 누가 썼어요?”
윤성호 팀장이 내 쪽을 한번 봤다.
“도윤이가 썼어요. 내가 보긴 봤고.”
박문태 팀장은 그 말을 듣고도 내 문서를 다시 봤다. 아니, 본다기보다 흠을 찾는 사람처럼 훑었다.
“제작 비용 내리면 기존 재고 쌓아둔 사람들 반응은요?”
나는 얼른 대답했다.
“그 부분은 운영 공지로 완충하면…”
“완충이요?”
그는 내 말을 중간에 잘랐다.
“지금 이건 시스템 수정안이지, 소원문이 아니잖아요.”
회의실 안 공기가 순간 딱딱해졌다.
“제작 슬롯 추가 구매한 사람들은요?”
“그건 별도 보상안을…”
“별도 보상안이 문서 어디 있어요?”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없었다.
“퀘스트 구간이랑 충돌하는 부분은?”
없었다.
“기존 드롭 테이블 영향은?”
없었다.
“재료만 풀리면 제작 완료 속도 올라가서 다음 구간 경제까지 밀리는 건 봤어요?”
그것도 없었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내 문서는 문서가 아니라 구멍 난 체 같아졌다. 나는 처음으로 내 문서가 틀린 문서가 아니라, 너무 비어 있는 문서라는 걸 알았다. 학생 때는 방향만 맞으면 칭찬받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는 달랐다. 방향보다 빠진 구멍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 구멍은 대체로 남이 메워야 했다.
박문태 팀장이 종이를 탁 내려놓았다.
“생각은 했네. 근데 생각만 했지.”
그 말이 더 아팠다. 아예 엉터리라고 하면 차라리 덜 아팠을 것이다. 생각은 했다는 말은, 내가 열심히 한 흔적은 보이는데 회사에서는 그걸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 같았다.
“이런 문서 제일 위험한 거 알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쓴 사람은 일한 것 같고, 보는 사람은 나중에 뒤통수 맞아요. 구현 들어가면 다 튀어나오거든. 그때는 누가 메웁니까? 개발이 메워요. 운영이 욕먹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돼요.”
말투는 거칠었지만, 내용은 이상하게 반박이 어려웠다. 그래서 더 수치스러웠다. 무서운 사람보다 틀린 말 안 하는 무서운 사람이 더 힘들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죄송합니다”를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윤성호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박문태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됐긴 뭐가 됐어요. 이 문서 그대로 받았으면 구현 쪽에서 또 다 뜯어야 되는데.”
“그래서 지금 보는 거잖아요.”
윤성호 팀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회의실이 더 조용해졌다. 그 사람은 화를 내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래서 오히려 저렇게 짧게 받아칠 때 더 무게가 생겼다.
“신입이 초안 가져온 거고, 여기서 구멍 찾으려고 회의 잡은 겁니다. 틀린 방향 아니면 고쳐서 쓰면 돼요.”
박문태 팀장이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초안이면 다 됩니까?”
“된다고 안 했어요. 근데 지금 사람 혼내는 쪽으로 가면 다음엔 아무도 안 들고 옵니다.”
그 말은 나보다 박문태 팀장보다, 회의실 전체를 향한 말처럼 들렸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는 내가 너무 창피해서 의자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누가 내 앞에 한번 서주자 갑자기 더 민망해졌다. 혼나는 건 괜찮은데, 감싸지는 건 또 다른 방식으로 부끄러웠다.
최지수 선배가 그때 조용히 말했다.
“예외 케이스만 다시 묶으면 방향은 살릴 수 있어요. 초반 이탈 완화 포인트 자체는 맞아요.”
회의가 다시 문서 쪽으로 돌아왔다. 재료 보유량 상위 유저 대응, 슬롯 구매 유저 보상안, 퀘스트 구간 충돌 체크, QA 우선 확인 항목. 아까까지 나를 찌르던 말들이 이제는 수정 항목처럼 정리됐다. 회사는 신기했다. 사람 하나를 거의 꺾어놓고도, 5분 뒤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줄을 얘기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조금 풀렸다. 나는 종이를 챙기며 괜히 눈치를 봤다. 박문태 팀장은 문 앞에서 나가다 말고 내게 말했다.
“기획은 생각한 걸 적는 일이 아니라, 남이 어디서 걸릴지 먼저 적는 일이에요.”
여전히 친절한 말투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까보다는 덜 무서웠다. 적어도 이번에는 욕처럼 들리기만 하진 않았다.
복도로 나오자 윤성호 팀장이 물었다.
“괜찮아요?”
그 말이 좀 의외였다. 나는 그 사람이 위로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네.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여도 일단 그렇게 말하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문서를 다시 내 손에 쥐여줬다.
“오늘 안에 다시 써봐요. 이번엔 빠진 사람 입장에서 읽어보고.”
“죄송합니다.”
윤성호 팀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배우면 됩니다.”
그 말은 위로 같지도 않았고, 격려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일 오래 남았다. 회사에는 친절한 말보다 쓸모 있는 말이 더 적나라하게 남는 경우가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최지수 선배가 내 문서 위에 포스트잇을 하나 붙여놨다.
"유저를 셋으로 나눠서 다시 봐. 신규 / 기존 / 많이 쌓아둔 사람."
딱 한 줄이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 한 줄 덕분에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문서를 고치다 보니 박문태 팀장이 왜 화를 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쓴 건 방향이 아니라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잘되면 좋겠다는 문서. 회사는 그런 문서를 제일 싫어했다. 잘되면 좋겠다는 말 뒤에는 늘 누군가의 야근과 욕과 책임이 붙었다.
그날 밤 늦게 수정안을 다시 넘기고 나서야 나는 조금 진정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이상한 생각을 했다.
욕은 박문태 팀장이 했는데, 이상하게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남은 사람은 윤성호 팀장이었다.
좋은 상사는 늘 다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평소에는 제일 답답하고, 제일 회사 같고, 제일 재미없는 말을 하는데, 정작 누가 내 앞에서 너무 세게 들어오면 한 번쯤 앞에 서주는 사람.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오래 기억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문서를 쓸 때 꼭 한 번은 반대로 읽어봤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남이 어디서 욕할지를 먼저 찾는 쪽으로.
회사란 곳은,
잘 쓴 문서보다 욕먹을 구멍이 적은 문서를 더 높이 쳐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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