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해요?”가 안 되는 회사

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4화

by KI Ki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등장인물 가이드


프로젝트실 회의실에는 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지난주에 지운 줄 알았던 숫자가 흐리게 남아 있었고, 벽 쪽 파일철에는 누가 언제 꽂아 넣었는지도 모를 기획안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이번 주 회의 자료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도 새 문서라기보다 오래된 문장을 새 종이에 다시 프린트한 것처럼 보였다. 회사 문서는 이상했다. 분명 오늘 논의하려고 뽑아 온 자료인데, 읽고 있으면 이미 오래전부터 포기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느낌이 났다.


그날 회의 주제는 지난 번에 이어서 제작 시스템 개선안이었다.


정확히는 개선안 검토였다. 실제로는 개선이라기보다 불만을 덜 듣는 수준에서 어디까지 건드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초반 유저들이 재료를 모아 장비를 만드는 과정이 지나치게 번거롭다는 의견이 계속 올라왔고, 게시판에도 비슷한 글이 반복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재료를 또 재료로 바꾸고, 그걸 다시 중간 재료로 합성한 뒤, 마지막에 확률이 한 번 더 걸리는 구조였다. 설명만 들으면 재미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다들 귀찮아했다.


나는 회의 전에 자료를 읽다가 잠깐 멈췄다.


이상한 단계가 하나 있었다.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 중간 제작 단계였다. 그걸 빼면 동선도 줄고, 설명도 쉬워지고, 초반 이탈도 조금은 덜할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학교 팀플이었으면 누군가 이미 “그럼 이 단계 지우죠”라고 말했을 것이다. 게임동아리에서도 그랬다. 복잡하면 줄였다. 의미가 없으면 걷어냈다. 적어도 내가 알던 곳에서는 그랬다.


회의실에는 윤성호 팀장과 박문태 개발팀장, 운영팀 한정우 대리, 그리고 최지수 선배까지 들어와 있었다.


인원은 많지 않았는데 공기는 늘 사람 수보다 무거웠다. 박문태 팀장은 자료를 보자마자 연필 끝으로 특정 항목을 두드렸고, 윤성호 팀장은 출력물 여백에 짧게 메모를 했다. 한정우 대리는 아직 별말 없이 사람들 표정부터 봤다. 최지수 선배는 이미 이 회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절반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일단 유저 피로도 지적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윤성호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특히 제작 진입 구간에서 이탈이 좀 있어요. 설명이 길고, 단계가 많고, 보상이 바로 체감이 안 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박문태 팀장이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


“단계 많다는 건 알겠는데, 그냥 줄이면 끝나는 문제는 아니죠. 이거 하나 빼면 뒤에 물려 있는 DB 테이블 다시 다 봐야 해요.”


“그래도 불편하다는 피드백은 계속 쌓이고 있어요.”


최지수 선배가 말했다.


“처음 들어온 유저 입장에서 한 번에 이해가 안 돼요. 이미 익숙한 사람은 그냥 넘기는데, 초반엔 여기서 많이 헷갈립니다.”


한정우 대리가 웃듯이 덧붙였다.


“운영 문의도 비슷해요. 문의 문구가 거의 매번 같아요. ‘이걸 왜 두 번 만들어요?’ 이런 식.”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자료 위에 표시해 둔 그 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 단계. 다들 불편하다고 하고, 운영 문의도 오고, 초반 유저도 헷갈려한다면, 그러면 빼면 되는 거 아닌가. 문제를 다 알고 있는데 안 고치는 이유가 오히려 더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근데 이거 왜 하는 거예요?”


회의실이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지난번 처럼 내가 말투를 잘못 골랐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그 질문 자체가 책상 위에 올라오면 안 되는 물건처럼 느껴졌다. 누가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공기가 먼저 나를 한 번 봤다.


윤성호 팀장이 내 쪽을 봤고, 박문태 팀장은 들고 있던 연필을 내려놨다.


한정우 대리는 고개를 아주 조금 숙이며 입꼬리를 접었다. 아, 저걸 지금 여기서 물었네. 딱 그 정도의 표정이었다. 최지수 선배는 자료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귀는 분명 이쪽에 와 있었다.


“그걸 지금 왜 하냐고요?”


박문태 팀장이 되물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위험했다.


“아니, 그러니까… 유저도 불편해하고 문의도 많으면, 이 단계는 없애는 게 맞지 않나 해서요.”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다. 질문을 잘못 던진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정말 내용이 궁금했다. 말투 문제가 아니라 이유 자체가 궁금했다.


박문태 팀장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 단계 없애면 제작 재료 밸런스부터 드롭 테이블, 퀘스트 보상, 상점 가격 다 다시 봐야 해요.”


“네.”


“그리고 그거 예전부터 이 시스템 기준으로 다 맞춰 놓은 거고.”


“그래도 지금은 너무 불편한데요.”


내가 말을 보탰다. 그 순간 윤성호 팀장이 아주 짧게 내 이름을 불렀다.


“도윤 씨.”


그건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멈추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반쯤 올라간 질문을 다시 앉히지 못했다.


“아니, 다들 불편하다고 느끼면 언젠가는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번에는 공기가 더 분명하게 식었다.


박문태 팀장이 나를 똑바로 봤다.


“언젠가는 바꿔야 하는 거랑 지금 회의에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틀린 자리에 서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회사에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내용은 맞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 말이 건드리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다들 갑자기 조심해지는 순간.


윤성호 팀장이 말을 정리했다.


“질문 취지는 이해해요. 근데 이건 단순히 단계 하나 삭제하는 문제가 아니라, 라이브 시스템 전체를 다시 건드리는 얘기가 돼요. 지금 분기 일정 안에서는 못 받습니다.”


한정우 대리가 그제야 한마디를 얹었다.


“그리고 이거, 원래 오래된 유저들은 오히려 익숙해해서 건드리면 또 왜 바꿨냐고 해요. 문의 방향만 바뀔 수도 있어요.”


그 말은 묘하게 회사다웠다.


불편하다고 했는데, 바꾸면 또 불편하다고 할 거라는 논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회의실에서는 늘 누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다들 조금씩 맞았다. 그리고 그 조금씩 맞는 말들이 모이면, 결국 아무것도 못 바꾸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회의는 그 뒤로 훨씬 안전한 문장들로 채워졌다.


‘중장기 개선 과제로 검토한다.’


‘초기 진입 피로도 완화 방향으로 별도 보완안을 본다.’


‘기존 유저 반발 가능성까지 포함해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문장은 점점 그럴듯해졌고, 실제 행동은 점점 멀어졌다. 나는 메모를 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회의는 분명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질문은 방금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났다.


나는 자료를 챙기며 괜히 눈치를 봤다. 이번에도 내가 너무 빨랐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히 빨랐다는 느낌만은 아니었다. 회사에는 정말로, 물으면 안 되는 질문이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다들 한 번쯤 생각해 봤지만, 지금 여기서 입 밖에 내면 그 다음 책임이 너무 커지는 질문.


복도로 나오자 윤성호 팀장이 내 옆에 섰다.


“아까 질문 말인데.”


나는 자동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네.”


“틀린 질문은 아니에요.”


그 말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잠깐 팀장을 봤다.


“근데 그런 질문은, 답을 들으려고 하는 순간 일이 커져요.”


“이유를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알죠.”


윤성호 팀장이 말했다.


“알아서 더 못 건드리는 거예요.”


그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모르면 못 고친다. 그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알아서 못 고친다니. 회사는 가끔 상식보다 더 복잡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윤성호 팀장은 잠깐 서서 창밖을 봤다.


“회사에는요, 오래돼서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처음엔 이유가 있었고, 중간에는 관성이 생기고, 나중엔 아무도 처음 이유를 정확히 기억 못 하는데도 쉽게 못 없애는 것들.”


“근데 다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다 없앨 수 있으면 회사가 이렇게 안 돌아가죠.”


그 말은 냉정했지만 설명은 됐다.


“없애는 순간 누가 책임질지가 생기니까. 유지하는 건 그냥 버티면 되는데, 없애는 건 결정이 되거든.”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멍해졌다.


결정.


학생 때는 결정을 좋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정하면 빨라지고, 정하면 깔끔해지고, 정하면 책임도 분명해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결정은 다른 뜻도 가졌다. 잘못되면 누가 맞아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


자리로 돌아오니 최지수 선배가 모니터를 보다가 물었다.


“또 혼났어요?”


“혼난 건 아닌데… 뭔가 또 배우긴 했습니다.”


최지수 선배가 피식 웃었다.


“그 질문, 다들 한 번씩은 해요.”


“근데 왜 아무도 안 물어요?”


“물으면 일이 생기니까.”


그는 아주 짧게 말했다.


“회사엔 다들 이유를 잊은 채 유지하는 게 있고, 다들 이유를 알면서도 안 건드리는 게 있어요. 오늘 건 두 번째였고.”


나는 그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다들 이유를 알면서도 안 건드리는 것.


그날 회의실에 있었던 싸늘함은 바로 거기서 왔는지도 몰랐다. 내가 순수하게 묻는다고 해서 순수한 질문이 되지는 않았다. 어떤 질문은 너무 많은 사람의 과거 결정과 현재 일정과 미래 책임을 한 번에 건드렸다.


퇴근길에 나는 자료철을 다시 떠올렸다.


테이블 위에 쌓인 오래된 문장들, 여러 번 수정됐지만 끝내 남아 있는 단계들, 다들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대로 두는 항목들. 회사는 생각보다 비효율적인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효율이 왜 남아 있는지 다들 알고 있는 곳에 가까웠다. 다만 그걸 없애는 비용이 더 무거워 보여서, 그냥 오래 같이 사는 쪽을 택하는 곳.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회사에는 질문의 말투만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의 종류도 조심해야 한다는 걸.


묻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질문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지만, 아무도 먼저 책임지고 싶지 않은 질문.


그리고 그런 질문일수록 대개, 제일 먼저 고쳐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본문은 AI-Augmented Writing 방식을 활용하여 집필되었습니다. AI는 초안 생성, 구조 재배열, 밀도 조정, 중복 검토 등의 보조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