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6화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등장인물 가이드》
그날 오전 나는 스스로를 꽤 생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전날 회의 내용을 정리했고, 수정된 제작 시스템 문서도 열어 놨고, 빠진 항목이 없는지 체크까지 하고 있었다. 기획자라면 원래 이런 식으로 일하는 줄 알았다. 머릿속에 있는 걸 문서로 정리하고, 정리된 문서를 기준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 적어도 입사 전에는 그렇게 상상했다.
오전 열한 시쯤까지만 해도 그 환상은 유지됐다.
처음 온 건 개발팀 막내였다.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제작 실패했을 때 재료 일부 반환되는 거 맞아요?”
나는 문서를 뒤졌다. 분명 어제까지는 없던 질문 같았다.
“어… 잠깐만요.”
“반환 안 되면 서버 쪽 처리가 달라져서요.”
나는 급히 문서를 다시 훑었다. 실패 조건은 있었고, 성공 보상도 있었고, 제작 시간도 적혀 있었다. 그런데 실패했을 때 재료를 얼마나 남길지는 없었다. 정말로 없었다. 나는 어제 분명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문서는 늘 누군가의 질문을 만나고 나서야 빠진 부분이 보였다.
“일단 확인해서 말씀드릴게요.”
그 말을 하고 나니 이번엔 운영팀에서 메신저가 왔다.
`초반 구간에서 제작 실패 너무 많이 나면 문의 들어올 것 같은데 문구 있나요?`
나는 문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까지 기획자가 챙기는 줄도 몰랐다. 제작 확률, 재료 수급, 밸런스 같은 게 기획의 본체고, 안내 문구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예쁘게 정리해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와글소프트에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결국 설명이 필요한 건 대체로 기획자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막 답장을 쓰려는데 아트팀에서 사람이 왔다.
“아이콘 몇 종인지 아직 확정 안 됐죠?”
“네?”
“등급별로 테두리 다르게 가는지, 실패 연출 따로 있는지 확인해야 해서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개발팀은 실패 처리 때문에 나를 찾고 있었고, 운영팀은 유저 안내 문구 때문에 찾고 있었고, 아트팀은 아이콘 수와 연출 범위 때문에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주 짧게 생각했다.
기획자는 생각보다 다들 많이 찾는 직업이구나.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하나도 제대로 답을 못 하고 있었다.
최지수 선배가 내 자리 옆을 지나가다 멈췄다.
“왜 그렇게 얼어 있어요?”
“다들 저한테 물어보는데요.”
“당연하죠.”
“근데 문서엔 없고요.”
최지수 선배는 내 모니터를 한 번 보고, 개발팀 막내가 띄워둔 화면을 한 번 보고, 아트팀 쪽에서 들고 온 레퍼런스를 한 번 보더니 아주 짧게 말했다.
“그럼 정하면 되잖아요.”
너무 간단해서 잠깐 어이가 없었다.
“지금요?”
“지금 아니면 언제요. 그리고 안 정해져 있으면 문서부터 고치고.”
최지수 선배는 늘 그런 식이었다. 친절한 설명 대신 순서를 줬다. 감정은 별로 안 섞고, 문제를 작게 나눠서 보여줬다. 나는 그 점이 무섭기도 했고, 이상하게 안심되기도 했다.
“실패 시 재료 일부 반환, 안내 문구 필요, 아이콘 등급별로 분리. 셋 다 같은 이슈예요.”
“같은 이슈요?”
“응. 제작 실패를 유저에게 어떻게 보여줄 건지 아직 정리가 안 된 거.”
그제야 조금 보였다. 나는 질문이 세 개라고 생각했는데, 최지수 선배는 그걸 하나로 묶어버렸다. 기획은 문서를 쓰는 일이라기보다 흩어진 질문을 같은 문제로 묶는 일이었다.
내가 급히 문서를 열어 수정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운영팀 대리 한정우가 와서 내 의자 등받이를 툭 쳤다.
“도윤 씨, 개발 먼저 줘요.”
“네?”
“운영 문구는 오후에도 돼. 지금 개발 멈추면 다들 기획 욕해.”
그 말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근데 아트팀도 기다리고 있어서…”
“아트는 콘셉트 안 바뀌면 조금 늦어도 돼요. 순서가 있어요.”
한정우 대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누굴 먼저 달래야 하는지, 누구를 먼저 기다리게 해야 덜 큰일 나는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업무 능력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게 의외로 자주 본체였다.
“그럼 개발 먼저 확정 드리고, 아트는 등급 수만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렇지.”
한정우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메신저 창을 보며 덧붙였다.
“운영 쪽엔 내가 잠깐 막아둘게요. 대신 문구는 오늘 안엔 줘야 해요.”
그 말은 이상하게 든든했다. 막아준다는 표현이 이렇게 직장인답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
나는 결국 점심도 조금 늦게 먹었다. 실패 시 재료는 절반 반환으로 정했고, 제작창 하단엔 “제작 실패 시 일부 재료는 회수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었고, 아이콘은 등급별 테두리만 다르게 가고 실패 연출은 따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하나하나 보면 대단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자잘한 결정 세 개가 지나가고 나니 오전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나는 최지수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원래 기획은 이런 거 다 하는 거예요?”
최지수 선배가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이런 거 안 하면 누가 해요?”
“저는 문서 쓰는 일이 더 많은 줄 알았는데요.”
“문서는 핑계예요.”
나는 걸음을 멈출 뻔했다.
“핑계요?”
“사람들 붙잡고 같은 그림 보게 만드는 핑계. 문서만 던져놓고 끝나면 그건 기획이 아니라 파일 저장이지.”
그 말이 꽤 오래 남았다. 파일 저장. 회사에서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었던 일의 절반이 갑자기 폴더 정리처럼 느껴졌다.
오후에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개발팀 막내가 다시 와서 실패 시 재료 반환 로그를 어느 항목으로 남길지 물었고, 운영팀에서는 공지 문구를 더 짧게 줄일 수 없냐고 했다. 아트팀은 등급 테두리만 다르게 가면 실패했을 때 시각적으로 허무해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오전에 끝낸 줄 알았던 안건이 실제로는 부서마다 다른 얼굴로 계속 돌아온다는 걸 그때 배웠다.
윤성호 팀장은 그때까지 별말이 없었다가, 내가 수정한 문서를 한 번 보고 말했다.
“실패 자체가 포인트가 아니에요. 유저가 실패를 어떻게 납득하느냐가 포인트지.”
그 말은 짧았지만 방향을 바꿨다. 나는 재료 반환 비율만 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윤성호 팀장은 그 비율이 어떤 체감과 설명을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회사엔 이렇게, 같은 문서를 보면서도 누구는 구현을 보고 누구는 질문을 보고 누구는 감정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걸 한 장에 같이 넣는 게 결국 기획이었다.
나는 다시 문서를 열었다. 개발용 결정 사항, 운영 문구 초안, 아트 범위, 유저 체감 메모를 항목별로 나눠 적었다. 오전에 비해 문서는 훨씬 길어졌고, 웃기게도 기획 의도 설명은 오히려 더 짧아졌다. 대신 사람들이 바로 물을 만한 질문 쪽이 길어졌다. 왜 이 수치인지, 실패했을 때 뭐가 남는지, 공지에서는 뭘 어떻게 말할지. 문서는 점점 덜 멋있어지고 더 쓸모 있어졌다.
그날 오후, 박문태 팀장이 내 문서를 다시 보더니 말했다.
“아까보다 훨씬 낫네.”
칭찬이라기엔 너무 짧고, 평가라기엔 너무 건조한 말이었지만 어쨌든 오전보다는 진전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조금 풀렸다. 그걸 본 최지수 선배가 옆에서 작게 말했다.
“저 정도면 많이 해준 거예요.”
정말 웃긴 회사였다. 박문태 팀장 같은 사람에게 짧게 덜 혼나는 것도 성취처럼 느껴졌다.
퇴근 직전 나는 문서를 다시 열어봤다. 오전에 쓴 첫 버전보다 훨씬 길어져 있었다. 실패 처리, 안내 문구, 연출 범위, 우선순위, 관련 부서 확인 사항까지 다 붙어 있었다. 분명 문서는 더 좋아졌는데, 이상하게 내가 문서를 쓴 느낌은 덜했다.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은 타이핑보다 대답이었고, 정리보다 조율이었고, 작성보다 수습에 가까웠으니까.
그날 처음 알았다.
기획자는 생각보다 덜 기획했다.
대신 훨씬 더 많이 설명했고, 훨씬 더 자주 확인했고, 훨씬 더 자주 중간에 끼었다.
회사에서 기획자는 중심인 척 앉아 있지만, 실제로는 제일 많이 불려 다니는 번역기이자 완충재에 가까웠다.
문서를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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