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권이 회사 덕분일 줄은 몰랐다

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7화

by KI Ki

첫 여권이 회사 덕분일 줄은 몰랐다첫 여권이 회사 덕분일 줄은 몰랐다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등장인물 가이드


회사에서 처음 받은 좋은 소식은 대개 좋은 말투로 오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오후 세 시쯤, 윤성호 팀장이 자리에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여권 없는 사람, 이번 주 안에 만들어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안 들어왔다.

여권.

회사에서 갑자기 여권이라니.

프로젝트실 공기는 늘 장애, 일정, 확률, 빌드 같은 단어로 가득했지 여권 같은 단어가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고 윤성호 팀장을 봤다.


“왜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차 싶었다. 이제는 나도 안다. 회사에서 왜요는 설명을 구하는 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공기를 거칠게 만드는 말이라는 걸. 그런데 윤성호 팀장은 다행히 이번에는 한숨만 쉬었다.


“워크숍 가잖아요.”


“어디를요?”


“해외.”


그 말이 떨어지자 프로젝트실 여기저기서 반응이 나왔다. 누군가는 “오, 또 가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누군가는 바로 어디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이미 검색부터 하는 눈치였다. 최지수 선배는 모니터를 보다가 별 감흥 없이 말했다.


“작년보다만 멀쩡한 호텔이면 됐지.”


작년을 모르는 나는 그 말조차 부러웠다. 작년보다만 멀쩡하면 된다는 건, 적어도 작년에도 어딘가를 갔다는 뜻이었으니까.


윤성호 팀장은 메일을 하나 포워딩했다. 제목은 `해외 워크숍 일정 및 준비 안내`. 열어 보니 비행기 탑승 시간, 단체 이동, 숙소 안내, 준비물, 여권 만료일 확인 같은 항목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순간 회사 메일이 아니라 여행사 일정표처럼 보였다.


나는 그 메일을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믿기지 않아서 읽었고, 한 번은 정말 내가 가는 게 맞나 싶어서 읽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 있었다.

와글소프트, 생각보다 괜찮은 회사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판단은 대개 너무 이르거나 너무 싸다. 하지만 신입사원은 원래 작은 이벤트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의실에서 혼나고, 문서 빠졌다고 박문태 팀장한테 털리고, 점심시간에도 말수 조절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회사 돈으로 해외를 간다고 하니, 갑자기 회사가 나를 꽤 사람답게 대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여권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제주도도 비행기 타고 겨우 한 번 가봤는데, 여권은 당연히 없었다. 옆자리에서 그걸 들은 한정우 대리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 없어요?”


“네.”


“오, 신선하네.”


“없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도윤 씨 또래면 없는 사람도 있지. 근데 회사 때문에 처음 만드는 건 좀 귀엽네.”


회사에서 귀엽다는 말은 썩 기분 좋은 칭찬은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그냥 넘길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권 사진은 어디서 찍지, 구청은 몇 시까지 하지, 부모님한테 말하면 뭐라고 할까. 사람 머릿속이 얼마나 빨리 여행 전 모드로 바뀌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퇴근길에 바로 사진관에 들렀다.

사진사는 내 셔츠 깃을 한 번 만져주고는 “입 다무시고요, 턱 조금만 당기세요”라고 했다. 화면 속 내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긴장해 있었다. 증명사진은 늘 사람을 실제보다 더 성실하고 더 재미없게 만든다. 그날 찍힌 내 얼굴도 딱 그랬다. 금방이라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


집에 가서 부모님께 워크숍 얘기를 꺼냈더니 반응도 묘했다. 어머니는 “회사에서 해외도 보내주네”라고 먼저 놀랐고, 아버지는 “여권은 미리 만들어두지 그랬냐”고 했다. 나는 괜히 회사 사람처럼 말했다.


“갑자기 정해졌어요.”


사실 갑작스럽게 정해진 건 아니었을 것이다. 윗사람들 머릿속에는 진작부터 있었을 테고, 예산도 잡혀 있었을 테고, 누군가는 이미 예약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입에게 회사는 늘 이런 식이었다. 결정은 어딘가에서 오래 진행되는데, 전달은 어느 날 오후 세 시에 갑자기 떨어졌다.


며칠 뒤 구청 민원실에서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앞줄에는 유학 가는 것처럼 보이는 대학생이 앉아 있었고, 옆자리에는 아이 둘을 데리고 온 가족이 있었고, 나는 서류를 든 채 혼자 앉아 있었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경계선을 하나 넘는 느낌이 있었다.


창구 직원이 물었다.


“급행으로 하실까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급행이라는 단어가 괜히 멋있어 보여서 그걸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격이 더 비쌌다. 회사 돈으로 가는 출장인데 여권은 내 돈으로 만드는 구조가 살짝 억울하기도 했다. 잠깐 계산기를 두드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말했다.


“그냥 급행 하세요. 늦으면 팀장님이 더 무서워요.”


돌아보니 유하나였다.

같은 시기 입사했지만 나보다 회사 공기를 훨씬 빨리 익힌 사람. 그는 서류 봉투를 흔들며 웃었다.


“저도 오늘 만들러 왔어요. 근데 저는 엄마가 어제부터 세 번 전화했어요. 여권 잃어버리지 말라고.”


그 말이 이상하게 현실감을 줬다. 회사가 보내는 해외 워크숍도 결국 집에 가면 엄마한테 말하게 되는 종류의 사건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회사 생활이란 게 늘 거창한 사회생활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아주 사소하게는 가족 단톡방에 사진 한 장 보내는 일까지 포함해서.


여권은 생각보다 단정했다.

짙은 녹색 표지에 금색 글자가 찍혀 있었다. 손에 쥐어보니 별거 아닌 물건 같았는데, 별거 아닌 물건이 사람 기분을 꽤 바꿨다. 나는 괜히 한 번 더 펼쳐봤다. 내 이름, 생년월일, 어색한 증명사진. 그 작은 책자 하나가 있자 갑자기 세상이 조금 넓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회사 메신저방에는 이미 워크숍 준비 얘기가 돌고 있었다. 누군가는 환전을 얼마나 해야 하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수영복 챙겨도 되냐고 물었고, 한정우 대리는 “일단 선크림부터 챙기라”고 했다. 최지수 선배는 한 줄만 남겼다.


`멀티탭 챙기세요.`


그 한 줄이 웃겼다. 나는 해외라고 하면 바다나 야시장부터 떠올렸는데, 최지수 선배 같은 사람은 콘센트 형태부터 먼저 생각했다. 회사 사람들은 늘 낭만보다 실용이 빨랐다.


워크숍 전날이 가까워질수록 프로젝트실 분위기도 조금씩 들떴다. 누군가는 환전 얘기를 했고, 누군가는 면세점에서 뭘 사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런 대화에 끼는 것만으로도 내가 진짜 회사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건, 바로 그 들뜸조차도 회사식으로 흘렀다는 점이었다. 한정우 대리는 “놀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출발 당일 안 늦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고, 최지수 선배는 “호텔 와이파이 느리면 일하기 더 짜증난다”는 말부터 했다. 다들 해외를 앞두고 있는데도 완전히 여행자처럼 들뜨지는 않았다. 회사가 사람에게 주는 좋은 일조차 결국 회사식 현실 감각 안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음 날 회사에 여권을 들고 갔더니 한정우 대리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오, 나왔네.”


“네.”


“좋아요. 이제 도망은 못 갑니다.”


나는 웃었고, 옆에서 최지수 선배는 여권을 흘끗 보더니 말했다.


“사진 잘 나왔네요. 사람 같네.”


그게 최지수 선배식 칭찬이었다. 듣고 나면 웃어야 할지 기분 좋아해야 할지 애매한 종류. 그래도 그날은 기분이 좋았다. 윤성호 팀장도 여권을 확인하고는 짧게 말했다.


“만료일 넉넉하네. 됐어요.”


놀랍게도 그 한마디조차 승인처럼 들렸다.


그 무렵 나는 와글소프트를 조금 덜 경계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회사는 이상했고, 사람들은 바빴고, 메신저는 하루 종일 울렸고, 회의실에 들어가면 아직도 어깨가 굳었다. 그런데 회사가 가끔 이런 것도 해준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월급만 주는 곳이 아니라, 내가 원래 보지 못했을 장면을 한 번쯤 보게 해주는 곳.


그래서 회사는 더 복잡했다.

좋은 회사라서 좋은 게 아니라, 나쁜 점이 분명한데도 가끔 좋은 기억을 끼워 넣었다. 그 덕분에 사람은 더 쉽게 버티고, 더 늦게 실망했다.


첫 여권을 손에 쥔 날 나는 회사가 조금 덜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바로 그런 순간들 때문에 회사를 쉽게 미워하기 어려웠다.


본문은 AI-Augmented Writing 방식을 활용하여 집필되었습니다. AI는 초안 생성, 구조 재배열, 밀도 조정, 중복 검토 등의 보조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