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게임회사 이야기 8화
익스큐즈미 한마디로 웃음거리가 됐다
본 작품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회사명·인물명·사건·게임명 등은 모두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등장인물 가이드》
해외에 나왔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국제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나는 워크숍 둘째 날 아침, 계란 프라이 앞에서 배웠다.
리조트 조식당은 생각보다 컸다. 천장이 높았고, 에어컨은 지나치게 잘 나왔고, 음식은 괜히 종류가 많았다. 빵이 이렇게까지 여러 종류일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프로젝트실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밝은 얼굴로 접시를 들고 다녔다. 회사에서 보면 늘 모니터 불빛에 절여진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햇빛 아래 두니 다들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접시를 들고 한 바퀴를 돌았다. 소시지, 감자, 이상하게 단 볶음밥 같은 것들을 조금씩 담았다. 문제는 마지막이었다. 오믈렛을 바로 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계란을 그 자리에서 부쳐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갑자기 여행 온 기분이 났다.
문제는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 앞에는 이미 한정우 대리가 서 있었다. 그는 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오믈렛, 노 어니언. 어 리틀 치즈. 플리즈”
발음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나도 부끄러워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영어 실력이 아니라 망설이지 않는 태도 같았다. 직원은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한정우 대리는 마치 원래 해외 호텔 조식당에서 자란 사람처럼 접시를 들고 돌아섰다.
그다음은 유하나였다.
“원 서니 사이드 업, 플리즈.”
짧고 정확했다. 유하나는 말끝을 올리지도 않았고 괜히 웃지도 않았다. 직원은 바로 알아듣고 계란을 깼다. 나는 그 짧은 장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쪽도 빠르다. 상황을 보고,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괜히 자기를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내 차례가 왔다.
직원이 웃으며 뭔가 물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아주 짧은 문장이었는데, 그 짧은 문장이 문제였다. 긴 문장은 못 알아들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짧은 말이 안 들리면 더 당황하게 된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익, 익스큐즈미?”
직원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못 알아들었다. 이번에는 뒤에서 누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꼭 나를 향한 것 같아서 더 급해졌다. 나는 준비해둔 문장 중 유일하게 아는 걸 꺼냈다.
“후라이드 에그. 원. 노, 투. 음… 하프 보일드? 아니… 그냥… 노멀.”
말이 길어질수록 더 망했다. 직원은 멈칫하더니 유하나를 봤고, 유하나가 옆에서 아주 태연하게 끼어들었다.
“He wants fried eggs. Two.”
끝이었다.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오케이 했고, 뒤에서는 결국 웃음이 터졌다. 돌아보니 한정우 대리가 커피를 들고 있었다.
“도윤 씨, 노멀은 뭐예요.”
“그냥… 익숙한 거요.”
“그게 제일 안 통하는 영어죠.”
유하나는 웃음을 참으며 내 접시를 가리켰다.
“계란은 그냥 가리켜도 돼요. 굳이 문장을 만들지 말고.”
그 말이 이상하게 회사 얘기처럼 들렸다. 굳이 문장을 길게 만들지 말고, 되는 방식으로 처리할 것. 나는 해외 호텔 조식당에서도 또 하나의 사회생활 팁을 배우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최지수 선배가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선배, 저 아까 완전 망했어요.”
최지수 선배는 내 접시를 한 번 보고 말했다.
“그래도 계란은 받아왔네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해외에 나와서 아침에 계란 못 받아오면 그게 더 큰일이죠.”
그 사람답게 위로가 되는지 안 되는지 애매한 말을 했다. 그런데 묘하게 진정되긴 했다. 최지수 선배는 남이 창피해하는 장면을 크게 키우지 않았다. 대신 그 일의 실제 크기를 줄여버렸다. 그게 나를 덜 민망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한정우 대리는 옆자리에서 빵을 뜯으며 말했다.
“첫날은 다 그래요. 괜찮아요. 어차피 한국 가면 다시 다 한국말 할 텐데.”
“대리님은 안 긴장하세요?”
“긴장은 하죠. 티를 덜 낼 뿐이지.”
그 말이 조금 의외였다. 한정우 대리는 원래 어디서든 안 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긴장은 한다고 하니, 괜히 위로가 됐다. 사회생활은 대개 안 떠는 사람들끼리 하는 게 아니라, 떠는 티를 덜 내는 사람들이 굴리는 건지도 몰랐다.
오전 일정은 자유시간에 가까웠다. 몇몇은 수영장으로 갔고, 몇몇은 근처 야시장을 낮부터 둘러보자고 했고, 윤성호 팀장은 “다섯 시 집합만 안 늦으면 된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다섯 시까지 자유라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어색했다. 평소 같으면 그 시간 안에 세 번쯤 수정 요청이 왔을 텐데, 여기서는 진짜로 물놀이를 하든 낮잠을 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수영장을 한 바퀴 돌았다. 햇빛은 강했고, 물은 지나치게 맑았고, 회사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놀러 온 사람들처럼 변했다. 박문태 팀장까지 선글라스를 쓰고 누워 있는 걸 보니 진짜 해외에 온 게 맞는 것 같았다. 무서운 사람도 리조트 의자에 누우면 그냥 피곤한 아저씨가 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로비 쪽으로 들어가다가 벽에 붙은 표지판을 봤다. `Nursery Room`이라고 적혀 있었다. 급하게 걸어오던 나는 그걸 얼핏 보고 `Nurse Room`으로 읽었다. 의무실이구나 싶었다. 아침부터 괜히 속이 좀 더부룩했던 나는 안에 물이라도 있나 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아주 작은 의자가 몇 개 보였다.
그다음엔 알록달록한 매트가 보였고, 벽에는 토끼 그림이 붙어 있었고, 구석에는 유아용 장난감 바구니가 있었다.
나는 멈췄다.
뒤에서 누가 말했다.
“거기 뭐 하세요?”
돌아보니 유하나였다.
“아니, 저… 의무실인 줄 알고.”
유하나는 표지판을 한번 보고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의무실 아니고 애기 맡기는 데예요.”
“아니, 근데 저게 너무 비슷하게 써놨잖아요.”
“안 비슷한데요.”
그때 뒤에서 또 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강도윤 씨, 설마 들어갔어요?”
최지수 선배였다.
나는 변명처럼 말했다.
“잠깐 열어만 봤어요.”
최지수 선배는 표지판을 보고, 내 얼굴을 보고, 문 안쪽의 작은 의자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만 두 번째네.”
“뭐가요?”
“해외에 나와서 글자를 마음대로 읽는 거.”
나는 웃어야 할지 숨고 싶어야 할지 모르겠었다. 유하나는 아직도 웃고 있었고, 최지수 선배는 그런 유하나를 보면서도 별로 크게 웃지는 않았다. 대신 나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모르면 그냥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돼요.”
“아까 아침에는 물었다가 망했는데요.”
“그건 영어가 문제였고.”
“그럼 이번에는요?”
“이번에는 성격이 급한 게 문제죠.”
그 말이 맞아서 더 할 말이 없었다.
오후에 로비에 다시 모였을 때도 그 일은 한동안 놀림거리가 됐다. 한정우 대리는 사람들 앞에서 내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 또 잘못 들어간 데 없어요?”
나는 그냥 웃었고, 유하나는 옆에서 “저녁에는 안내판 사진 찍어서 먼저 보여드릴게요”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더 창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해외 리조트라는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이미 조금 풀어진 상태여서인지, 그 놀림은 회의실에서의 민망함과는 다른 결이었다. 사람을 작게 만들기보다, 그날의 해프닝으로 소비되는 쪽에 가까웠다.
그 점이 또 묘했다. 같은 웃음이어도 회사 안 웃음과 회사 밖 웃음은 조금 달랐다.
나는 이상하게 해외에 나오면 내가 좀 더 쓸 만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여권도 생겼고, 비행기도 탔고, 호텔 조식당도 왔고, 수영장도 있고, 리조트도 있으니 갑자기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여권은 그냥 책자였고, 비행기는 그냥 오래 앉아 있는 의자였고, 리조트에서도 나는 여전히 말을 더듬고 표지판을 잘못 읽는 신입사원이었다.
오후에 다 같이 로비에 모였을 때 한정우 대리가 물었다.
“오늘 어땠어요?”
내가 대답했다.
“세계화에 실패했습니다.”
한정우 대리가 웃었다.
“괜찮아요. 회사도 글로벌 외치면서 맨날 삽질해요.”
그 말에 윤성호 팀장까지 피식 웃었다. 평소 회사에서는 잘 안 웃는 사람인데, 해외에 나오니 웃는 얼굴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또 잠깐 마음이 느슨해졌다. 회사 사람들도 여기서는 조금 덜 회사 사람 같았다.
그런데도 완전히 같아지지는 않았다.
유하나는 여전히 빨리 적응했고, 최지수 선배는 여전히 쓸데없는 말이 없었고, 한정우 대리는 이런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해외에 나오면 다 같이 풀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원래 갖고 있던 방식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신입은 해외에 나가도 신입이었다.
다만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멀리 와서, 자기 촌스러움을 더 환하게 보게 될 뿐이었다.
돌아보면 그날 제일 민망했던 건 영어가 아니었다.
여권 하나 만들고 내가 조금 달라졌다고 착각한 마음이었다.
세상은 넓었지만, 사람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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