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뱉어진 언어는 고정과 지속을 지향한다.
한번 뱉은 언어 속에는 변화의 개연성과 복잡한 감정을 담지 못한다.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하고 개념 짓는다는 것은 무한한 의미를 죽이고 하나의 속성으로 규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면은 끊임없이 출렁인다.
마음속에서 수천 가지 색깔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진다.
기쁨과 슬픔 사이 어딘가, 분노와 평온 사이 어딘가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아침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사그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언어로 붙잡는 순간 살아 숨 쉬던 모든 뉘앙스는 하나의 단어 안에 포박되어 버린다.
마음속에 떠오르다 사그라지는 수많은 감정과 상념 중에 따뜻한 말을 고르면 나는 섬세한 사람이 되고, 언짢은 말을 선택하면 온종일 화난 사람이 된다.
같은 순간을 살아도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감정에는 주인이 없지만, 언어로 표현된 감정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나를 규정한다.
과거가 아름다운 건 편집되었기 때문?
과거가 추억이 될 수 있는 건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던 기억들이 거대한 언어의 흐름 속에서 떠밀려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좋았다’라거나 ‘힘들었다’는 단순한 언어로 요약해 버린다.
그 속에서 함께 존재했던 미묘한 불안, 이름 모를 설렘, 형용할 수 없던 감정들은 모두 없던 것들이 되어버린다. 언어 속에서 아름다운 과거와 역행하는 경험과 감정은 포박당한 채 무시되어진다.
첫사랑의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그때의 어색함과 서툶, 상처와 오해를 우리가 ‘사랑’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덮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이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언어가 생각을 만들고 나를 한계짓기도 한다.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언어는 가능성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린다. 아마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먼저 언어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 규정에 맞춰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어떻게 언어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선택하는 언어가 진실 전부가 아님을, 하나의 단어 뒤에 무수히 많은 감정이 숨어 있음을 기억할 수는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언어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를 가두는 것도 언어지만, 우리를 해방하는 것 또한 언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