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
수성못은 대구의 관광 명소이자 시민들의 대표적인 쉼터다.
주변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줄지어 섰고, 마천루의 빌딩과 크고 작은 건물들이 수성못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안식처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수성못은 본래 생계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농업용수를 댈 목적으로 조성된 인공 저수지이다.
1915년 대구에 정착해 수성들 일대에서 화훼농장을 일구던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가 조선인 4명과 함께 수성 수리조합을 만들어 1925년 4월, 이 못을 완공했다.
그는 못을 완공한 뒤 가족과도 떨어져 수성못 근처에 홀로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죽으면 묘지는 조선식으로 만들고, 수성못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만든 물이 흘러 사람들의 논밭을 적시고 아이들이 그 곁에서 자라는 것을 보며 비로소 고향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때로 자신이 만든 것에 의해 길든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
대구에 잠깐 머물던 시절 수성못이 넓게 내다보이는 카페 <아트 플렉스>를 자주 찾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 크고 넓은 유리창 너머로 못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카페 안에는 작은 갤러리가 있어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포착된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창밖의 수성못으로 눈길을 돌리면 이 못 자체가 내 시선에 들어온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봄이면 못에 비친 벚꽃에 온통 분홍빛 세상이었고, 여름이면 버드나무 천만사(千萬絲)인 양 푸르게 흐드러졌다. 가을엔 밝은 은백색 잔물결이 마음 한편에 닿아 아득했고, 겨울에는 갈대와 어울린 큰 벌판이 시선의 초점을 멀게 했다.
이른 저녁이면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수성못 주변으로 조성된 산책길을 걷는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소란함과 분주함이 공존하면서도 결국 수성못의 고요함으로 귀결되는 느낌이 든다.
아마 무언가를 뱉어내기보다, 이곳에서 안식을 찾고 새로운 힘을 얻기 때문이리라.
이 순간을 사랑하라
수성못을 거닐다 보면 문득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구절이 떠오른다.
“머지않아 사라지는 것들을 격렬히 사랑하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의 여유를, 발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을, 물 위에 부서지는 저녁 햇살을, 옆을 지나가는 낯선 이의 웃음소리를 — 지금, 여기서, 격렬하게 사랑하라고.
김치를 먹다 보면 배추가 자라면서 제 몸 안에 모아둔 햇살과 물기가 사각사각 느껴지듯이 수성못에는 백 년의 시간 동안 이곳을 스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논밭을 일구던 농부들의 땀, 연인들의 첫 만남과 오래된 부부의 느린 걸음, 창가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그 모든 것이 물결처럼 수성못을 이루고 있다.
수성못은 흘러가지 않고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사랑해야 할 것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