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순간을 춤추듯

by 채움과 비움


“보스,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해. 생각은 영혼을 갉아먹어.”(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그의 말은 거칠었지만 진실했다.

우리는 삶을 분석하느라 삶을 놓치고, 행복을 정의하느라 행복을 흘려보낸다.


조르바는 술 한 병으로 우주의 축복을 느끼고, 여인의 미소 하나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비교하지 않는다. 남의 행복을 재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행복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그 안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

감사한 일이 생기면 이 세상 누구보다 더 그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 감사해야 한다.


조르바는 빵 한 조각 앞에서도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것은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삶에 대한 경외다.

아침 햇살, 바다 냄새, 친구의 웃음 -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기적임을 아는 사람은 매 순간을 선물처럼 대한다.


감사는 조용한 미소가 아니라 터져 나오는 환호여야 한다.

그 삶의 환희를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곤경에 닥쳤을 때는 이 세상 모든 이가 겪었을 역경을 만난 것뿐이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된다.


“보스, 우리 춤이나 춥시다.”


광산이 무너졌을 때, 모든 돈을 잃었을 때 조르바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게 전부다.

그것은 체념도, 고통을 하찮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넘어지고, 누구나 잃고, 누구나 아파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당신만 특별히 저주받은 게 아니다.

이것은 삶의 리듬이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지듯, 기쁨 다음엔 슬픔이, 슬픔 다음엔 또 기쁨이 온다.

삶을 살되 온전하게 살라는 것.

반쯤 기뻐하고, 반쯤 사랑하고, 반쯤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중간 지점에 선다. 남들 하는 것처럼, 안전하게, 적당하게….

그렇게 타협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상대적 행복은 줄 수 있어도 진정한 행복을 줄 수는 없다.


조르바가 내게 가르쳐준 것

행복할 때 주저하지 마라. 감사할 때 숨기지 마라.

사랑할 때 계산하지 마라.

그리고 넘어졌을 때, 이것이 당신만의 저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걷는 길임을 기억하라. 일어나라. 먼지를 털어라. 그리고 다시 춤을 춰라.


삶은 한 번뿐이다.


그러니 행복할 땐 온 우주가 부러워할 만큼 행복하고, 감사할 땐 하늘이 들을 만큼 크게 감사하고, 사랑할 땐 심장이 터질 듯 사랑하라.

그리고 슬플 때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수천 년 동안 수십억 명이 같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나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쯤이 아니라 온전하게 살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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