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조끼와 고속도로

파란 조끼와 고속도로

by 덕용안

파란 조끼와 고속도로...



면접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복도로 나왔을 때 땀이 식는 게 느껴졌다. 잘 못 했다는 것을 알았다. 준비한 답변들이 막상 화면 앞에 앉으니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버벅이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1시간 전에 먼저 들어가서 읽고 또 읽었는데.

그 준비가 실전에서는 어디로 갔는지.





화상면접이었는데 원주에서 볼 여건이 안 됐다. 집에서는 공간이 문제였고,

조용한 곳을 찾다 보니 검색에 서울이 나왔다. 그래서 서울로 갔다.

화상면접을 보러 원주에서 서울까지. 쓰고 나서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한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단순히 핸드폰 화면으로 내 미래를 결정짓는 면접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정갈한 조명과 큰 모니터, 그리고 나만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길 수 있는 독립된 방. 그게 필요해서 서울을 찾았다.


돌아 오는길


청량리에서 원주 가는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장면들이 지나갔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 못했다, 그래도 혹시, 면접관들 표정은 나쁘지 않았는데, 아니다 버벅거렸잖아

그게 반복됐다.


원주에 도착할 때까지.

떨어질 것 같다는 확신과, 그래도 됐으면 하는 기대가 동시에 있을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모순이 아니다.


합격이었다. 면접관이 세 명이었는데, 다들 좋게 봐준 것 같다. 뭔가 버벅인 것 같아도 인상 하나는 나쁘지 않았나 보다.


결과가 합격이니까 뭔가는 맞았던 것이다.




세 번째 입사였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관리자였다. 입고 관리자. 파란 조끼를 입는다. 빨간 조끼가 출고 관리자라면, 파란 조끼는 입고 관리자다. 같은 관리자인데 색이 다르다는 것을,


관리자는 셔틀버스를 타지 않는다. 조출도 해야 하고 연장도 해야 해서 시간이 맞지 않는다. 차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차가 없었다. 한 달을 렌트카로 다녔고, 그렇게 타다 150만 원짜리 중고 승용차를 샀다.


그 차에 안도를 느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사업할 때는 이런 차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점에는 150만 원짜리 차가 절실했고, 생겼을 때 안도가 됐다. 기준이 시기마다 다른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왕복 두 시간. 매일 아침저녁 고속도로였다.

아침에는 해가 뜨는 쪽을 향해 달렸다. 햇빛이 낮게 깔려 있을 때 앞 유리로 정면으로 들어오면 눈이 부셔서 선바이저를 내려도 소용이 없는 구간이 있었다. 그 구간이 싫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앞차를 겨우 따라가는 그 몇 분이

하루 중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150만 원짜리 차는 고속도로에서 소리가 났다. 엔진이 어느 속도 이상부터 진동을 냈는데, 핸들을 잡은 손바닥으로 그 떨림이 올라왔다. 고속도로 속도를 유지하면 그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고, 나중에는 익숙해졌고, 더 나중에는

그 떨림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 같았다. 매일 손바닥으로 받아온 것이니까.


몸이 먼저 익숙해진다. 머리가 납득하기 전에.

저녁에 돌아오는 길이 더 길었다. 연장 근무가 끝나면 몸이 이미 지쳐 있었다.


한 달 내내 주 5일, 매일 3시간씩 연장 근무를 했다. 누가 시킨 일도, 억지로 등 떠밀린 일도 아니었다. 그저 내게 맡겨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퇴근하는 찜찜함을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자발적인 피로였다. 다행히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그 피로를 잊게 할 만큼 충분했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연장 근무를 마치고 센터 앞 셀프 라면집에 들러 기계가 끓여주는 라면 한 그릇을 앞에 두면, 뜨거운 김 사이로 내 하루가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끼니뿐 아니라, 내일도 버텨낼 삶도 얻었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붉게 켜졌다 꺼졌다 했다. 막히는 구간이 있으면 그 붉은 불들이 차례로 번졌는데

이상하게 그게 무섭지 않았다. 앞에 차가 있다는 것,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이 어두운 고속도로 위에서는 작은 위안이 됐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붉은 불빛으로 확인되는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 현장에서 뭐가 틀렸는지, 내일 조출은 몇 시인지, 이 차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그런 것들이 뒤섞였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달리고 있는 때가 있었다. 엔진 소리와 타이어 소리만 있고, 머릿속이 비어 있는 상태. 지쳤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게 일종의 쉬는 것이었는지

그 경계가 고속도로 위에서는 자꾸 흐릿해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휴식일 때가 있다. 그게 쉬는 건지 멍한 건지 몰라도.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그 피로를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때는 했다.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까.


파란 조끼를 입고 150만 원짜리 차의 진동을 손바닥으로 받으면서 매일 고속도로를 달렸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을 따라갔고, 지쳐서 아무 생각도 없는 채로 원주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 초라한 것이었는지 버티는 것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 고속도로 위의 밤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문장도 없었을 것이다.

멈추지 않은 것과 잘 버틴 것은 다른 말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은 것만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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