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가장 거대한 욕심

by 자신을사랑하기

5화: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가장 거대한 욕심


그 시절 나는 평범함을 바랐다. 그리고 그 평범함 속에 내가 온전히 머물고 있다고 믿었다.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투정 부리는 아이를 씻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저녁이면 아내가 차려준 된장찌개의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상. 나는 그 소박한 반복이 우리 삶의 영원한 배경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내가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에 커다란 굴곡 없이, 유난히 깎인 곳도 돌출된 곳도 없이 그저 평탄하게 사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암초에 배가 뒤집히지도 않고, 예상치 못한 절벽 아래로 추락하지도 않은 채 잔잔한 수면 위를 유영하는 기적 같은 상태.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그 '평탄함'은 사실 우주의 수많은 우연이 우리를 돕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지독하게 운 좋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굴곡 없이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신에게 허락받아야 할 가장 과분한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낡은 서랍 구석에서 발견한 그때의 일기장에는 참으로 사소하고 배부른 걱정들이 적혀 있다.


'오늘은 딸아이가 친구랑 싸웠다고 해서 한참을 달래줬다. 아내는 속이 상했는지 저녁 내내 말이 없었다.' '마트에 갔는데 아내가 비싼 딸기를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다음 달엔 꼭 맛있는 딸기를 박스째 사줘야지.'


그때는 그 '말 없음'이, 그 '망설임'이 얼마나 평화로운 갈등이었는지 몰랐다.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고, 서운해하고, 다시 화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삶의 궤도가 아직은 안전한 평지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 나는 그 평탄한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세상 모든 운을 다 썼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더 큰 행복만을 갈구하며 살았다.


이제 삶의 궤도는 예고 없이 휘어졌고, 평탄했던 우리의 대지는 단숨에 깎아지른 절벽으로 변해버렸다. 평범함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욕심이었는지를 알게 된 지금, 나는 아내와 마주 앉아 딸기 한 박스의 가격을 고민하던 그 지루하고도 평온했던 오후가 사무치게 그립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일상'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평범함의 성역'이었다. 그리고 그 성역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는 신호는 아주 사소한 냄새와 소리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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