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간의 약 조절 끝에 당신은 드디어 퇴원 허락을 받았다. 완벽한 완치는 아니었지만, 환청이 잦아들고 대화가 가능해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날, 우리는 예전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당신은 "이제 정말 괜찮아, 걱정 마"라며 나를 안심시켰고, 나는 당신의 그 말을 썩은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우리의 약속은 단순했다. "약 거르지 않고 잘 먹기."
당신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내가 건네는 약봉지를 뜯었고,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와 함께 빈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당신의 눈빛이 다시 맑아지는 것 같았고, 집안의 공기도 조금씩 온기를 되찾는 듯했다. 나는 드디어 우리가 긴 터널의 끝에 다다랐다고, 이제는 다시 평범한 아빠와 남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유리 같은 평화는 아직 말도 서툰 어린 딸아이의 작은 손바닥 위에서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오후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나에게 딸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내 옷자락을 꼭 잡고 조용히 안방 구석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빠, 이거..." 아이는 아직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나이였기에, 그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침대 밑 어두운 틈새를 가리켰다. 아이의 눈동자에는 설명하기 힘든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아이가 가리킨 곳을 들여다본 순간, 내 심장은 그대로 멎는 듯했다.
그곳에는 당신이 매일 '먹었다'고 말하며 버렸어야 할 알약들이 형형색색의 보석처럼 흩어져 있었다. 신문지에 싸여 숨겨진 것부터, 구석진 틈새에 억지로 밀어 넣어둔 것까지. 당신은 약을 먹는 척 입안에 넣었다가,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교묘하게 뱉어내어 그곳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것이다. 당신에게 그 약은 여전히 '나를 조종하려는 독약'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속이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걸까.
아이는 그 알약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매일 몰래 무언가를 숨기는 기이한 모습에서 느꼈을 본능적인 불안감이, 말을 못 하는 아이로 하여금 아빠의 손을 끌게 만들었으리라. 내 손바닥 위에 아이가 올려놓은 서너 알의 알약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납덩이가 되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나를 보며 웃던 당신의 미소가, "약 잘 먹었어"라던 그 상냥한 목소리가 모두 거대한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다시 아득한 심연으로 추락했다. 아이의 무구한 눈동자를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만의 궤도에서 우리를 속이며 유영하고 있었고, 나는 그 궤도를 단 한 걸음도 좁히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길을 잃었다. 우리 가족의 은하수는 그렇게, 어린아이의 고발을 통해 가장 시린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