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s la rue attandant Noel
"인간을 탐구하는 것만이 가장 흥미로운 일이지."
마지막 오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트람 안에서 미카엘이 말했다. 그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랑하고, 자판기에서 커피 대신 민트 차를 선택하고, 영화관 월회원권을 끊어 수시로 영화관을 드나드는 사회학도이다. 자세히는 묻지 않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강의실을 못 찾고 필기도 못 하는 나를 잘 챙겨 주었다. 다음 학기에 끝내야 할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그가 한 말이었다. 나는 미카엘의 눈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보기엔 거창하지만, 그 말은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와 헤어지고 일부러 조금 걷자 했다. 다음 주면 노엘이다. 갤러리 라파예트부터 빅토르 위고까지 시내 중심가에는 한 달 전부터 마르쉐 드 노엘(Marche de Noel)이 열렸다. 나무로 지은 장난감 집 같은 상점이 양쪽에 늘어섰다. 골목마다 화려한 색색의 알전구를 달아 놓고 불을 밝혔다. 해가 지고 난 뒤에 빛으로 장식한 거리를 걸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미카엘의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내 눈은 탐구할 대상들을 향했다.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무엇에 시선을 빼앗겼는지, 어느 상점 앞에 발걸음을 붙잡혔는지.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마주보며 웃는 사람들을 본다. 환한 얼굴 사이로 크레페며, 치즈와 소시지며, 한참 끓기 시작한 뱅쇼의 냄새가 거리에 가득했다. 축제의 냄새였다.
뭔가 새로운 게 있을까 싶어 둘러보면, 사실 마르쉐 드 노엘은 작년과 올해가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이 지역 요리인 그라탕 도피누아를 파는 상점도 그 자리 그대로고, 겨울 목도리를 파는 상점도 그 자리에 그대로, 향신료나 비누를 파는 상점도, 크리스마스 장식 소품을 파는 상점도, 너무 하다 싶을 만큼 변함이 없다. 해마다 같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고, 작년과 같은 장식 소품을 달아내는 것. 가만 보니, 들렀던 상점의 몇몇 주인은 얼굴도 기억이 난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시간은 흐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 있다.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 몰래 비밀이라도 밝혀낸 스파이처럼.
쇼윈도마다 반짝이는 노엘 장식들도, 빵집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뷔셰 드 노엘 (Bûche de Noel)이라고 하는 장작 모양의 케이크와 초콜릿들도 화려했다. 일 년에 단 한 달, 거리의 곳곳마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꾸며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에 읽은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렸다. 이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과 음식들은 얼마나 소녀의 눈길을 끌었을까.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저 안에 가득 빛나고 있는데, 성냥 한 개피가 춥고 배고픈 소녀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던 꿈은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더더욱...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나의 눈은 아까 바라보던 대상과 다른 사람들을 찾는다. 혼자 걷는 사람, 골목 한 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 중심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르는 개 몇 마리와 함께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빛이 있는 곳 가까이에는 분명 빛이 닿지 않는 자리가 있다.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노엘을 맞이한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카드를 파는 상점에 들어갔다. 몇 장 사지도 않을 텐데, 노엘 카드를 삼십 분 넘게 골랐다. 받는이를 떠올리며 엽서 한 장도 그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주머닛돈 사정에 카드 몇 장 값은 만만치가 않다. 사실 작년엔 카드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여럿 생각이 났는데, 모두에게 국제 엽서를 보낼 우표값이 충분치 않아서 결국 한 장도 보내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그게 또 한참 후회로 남았다.
프랑스에서 노엘은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큰 마트에 가면 한국의 설이나 추석 때에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과일이며 쵸코렛이며 가득 쌓아 놓고, 정육 코너의 직원들은 고기를 저울에 재서 포장을 하느라 분주해 보인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뒤엉켜 북적인다.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물건을 실은 카트를 끈 사람들이 계산대마다 길게 줄을 선다. 중동에서 온 아랍인이나, 나 같은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음식 재료들을 카트를 한 가득씩 채워 나른다.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로 돌아가거나 여행을 떠난다. 2주 동안의 바캉스 동안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이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다. 집이 멀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열 명 남짓 기숙사에 남는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는 아니지만, 이 노엘 바캉스가 끝나면 그 다음 주에 기말 레포트도 여러 개 제출해야 하고, 한국에 오가는 비용과 시간이 넉넉치 않아서 기숙사에 남았다. 복도도 주방도 조용해진 기숙사를 볼 수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 남은 자들끼리 만찬을 즐긴다. 남은 자들의 식탁이라고 초라하진 않다. 각자가 잘 하는 요리들로 한 상이 차려진다. 춥고 누추한 곳에서 태어난 예수를 생각하며, 저녁을 나누는 내 친구들을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에 띄지 않아도, 낮은 숨을 쉬며 작게 빛나는 존재들이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