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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Feb 08. 2016

에트르타

J'arrive à Etretat. 


'에트르타' 그 이름은 '존재'의 의미를 지닌 장소 같았다. 마을 이름을 듣고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어디에 있지?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프랑스 북쪽 바닷가에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가면 혹시 '있음'에 대하여 알 수 있지 않을까.



불어에서 '에트르(Être)'는 '있다, 존재하다'를 뜻한다. 처음 불어를 배우면서, 자기를 타인 앞에 소개할 때, 두 개의 동사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앞에 나온 '에트르' 동사와 '아부아(Avoir)' 동사였다. '아부아'는 '가지다, 소유하다'의 의미가 있다. 나이를 말할 때는 이것을 쓴다. 이 두 동사는 동사 변형이 불규칙적이라서, 주어의 인칭뿐만 아니라, 현재형, 과거형, 미래형,, 시제에 따라 하나하나 따로 다 외워야 한다. 



나, 너, 그/그녀, 우리, 당신들, 그들...  각각의 주어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에트르 동사를 노트에 쓰고 소리 내어 읽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je suis, tu es, il/elle a, nous sommes, vous êtes, ils sont,...  어렵게 느껴졌다. 존재한다는 것은 왜 이렇게 규칙도 없고 예외가 많고 복잡한가, 생각했다. 그 소리들이 익숙하게 입에 붙을 때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존재한다는 건, 그렇게 다르다. 내가 존재하는 방식과 당신이 존재하는 방식, 그 무게, 형상이 다르다. 온도가 다르고, 소리가 다르다. 차이를 인식하는 것, '에트르'라는 단어를 통해 배웠다.   




살아갈수록 마음의 빚이 는다. 그래서 나는 자주 울고 싶다. 오늘 내가 또 빚을 지고 말았다. 울면서... 살아가고 .. 있다.



에트르타 바닷가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되기 정확히 5분 전이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밤바다는 묘하게 아름다웠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다. 적당히 차고 부드러운, 아다지오로 부는 바람, 나는 그 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바람은 조심스레 바다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저 멀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바다일까. 시선을 둘 데를 찾지 못해, 발끝에 닿을 듯 말듯한 파도만 보았다. 



흰 파도는 살며시 밀려왔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저 거대한 암흑에서부터, 하얀 시간이, 조금 밀려오고, 불규칙하게 때마다 다른 무늬로 펼쳐졌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눈앞에 존재와 소멸이 있었다. 그 무한한 반복. 나는 고작 내 발끝의 시간을  바라보았다. '있음'이 '없음'이 되는 순간들이라니, 이곳은 '에트르타'인데. 



그 바닷가 한 편, 흰 코끼리 바위가 서 있는 걸 보았다. 자정이 넘어 사람들이 모두 떠난 자리, 그는 홀로 어둠 속 먼 바다를 응시하는 듯 보였다. 매일 밤 그랬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서. 어쩌면 흰 코끼리 바위는, 먼 북쪽 바람을 타고 자기가 떠밀려 온 그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바위의 표면에 미세한 층이 새겨져 있었다. 시간의 흰 파도가 밀려오고 또 추억처럼 겹겹이 쌓여, 코끼리 바위가 된 건 아닐까. 나는 그의 존재의 의미를 마음대로 짐작했다.  



그때, 갑자기, 멀리 보이던 코끼리 바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위가 있던 자리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나는 환영을 본 걸까.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랐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 정각이었다. 바위를 비추던 조명이 꺼진 걸 알아차린 건, 조금 후였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가 암전 되듯, 흰 코끼리 바위도 고된 하루를 마치고 제 있을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종일 응시하던 북쪽으로, 제 갈 곳으로, 그가,  남몰래 한 발을 내딛는 시간.  



사위가 캄캄해져 바닷가에 더 머무를 수 없었다. 바람 때문에 머리도 조금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딱 한 시간이었다. 옷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나도, 걸음을 옮겨야 했다. 다시 가야 할 곳으로. 



에트르타의 여름 바다,, 나는 그곳에서 '에트르' 동사를 새로 배웠다.

'에트르' 그것은, 존재와 소멸의 무수한 반복, 그 시간을 견디며 단단한 바위가 되는 것. 

어쩌면, 돌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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