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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Sep 12. 2015

Foyer 227호 노란방

Ma petite chambre jaune 


푸아예 Foyer 12 제곱미터 작은 방에서 나는 불어로 꿈꾸는 날들을 기다렸다. 227호는 2층 왼쪽 복도 맨 끝방이다. 방을 고르러 왔던 날, 문을 열자마자 한 켠에 놓인 벽난로가 눈에 띄었다.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서 아궁이를 시멘트로 막아 놓았지만, 그 모양새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끌림이었다. 말할 수 없이 쓸쓸히 잠들었던 밤에 이 벽난로 안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떠올라 위로 받았던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던 걸까. 


푸아예 Foyer 기숙사에 첫 번째 방문은 이곳에 살던 한 친구에게 저녁식사를 초대받았던 날이었다. 친구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왔다. 트람역에서 내려 걸어오자, 디귿 자 모양의 큰 건물을 둘러싼 담쟁이 넝쿨이 먼저 보였다. 그 가운데 정원에는 4층 높이 건물만큼이나 키가 큰 나무 네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내가 살던 기숙사의 현대식 건물과 달리 이곳은 정원이 있는 옛날 건물이었다. 친구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기숙사에 반했다는 것을 그 친구는 한눈에 알아보고 웃었다. 누구든 안으로 들어가려면 벨을 누르고 문지기가 직접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아저씨에게 눈인사를 했더니, 기대하지 않은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 낯선 이를 반겨주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순식간에 이곳이 더 좋아졌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살롱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천장이 높은 살롱 안에는 나무 테이블이 창가쪽에 놓여 있고, 방 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는 나무 우편함, 인디언 풍의 숄로 덮여있는 작은 피아노, 언뜻 보면 무성의하게 놓여 있는 창가의 화분들… 시간을 품고 있는 오래된 물건들 위에 눈길이 닿았다.처음 방문한 곳인데도 익숙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공간을 감상했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기숙사는 그르노블 노트르담 성당 뒷골목에 있다. 성당 뒷문과 Foyer 기숙사 마당은 걸어서 이삼 분 걸리는 거리다. 예스런 분위기의 상점들이 줄지은 앤티크 거리도 바로 옆이다. 푸아예 Foyer는 ‘아궁이'라는 뜻인데, 의미가 확장되어 ‘집'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고 나중에 알았다. 이곳이 오래전 노트르담 성당 수녀들의 기숙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는, 낡아서 모서리가 둥글어진 계단과 삐그덕 소리가 나는 복도를 걸을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기숙사 방마다 문과 창문이 각각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내 방은 노란색이다. 뜨거운 한철을 다 보내고 난 뒤의 해바라기 같은 노란색은 자연스럽게 고흐가 그린 방을 연상시켰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색.  이 방에서 지내는 동안 노란색의 첫 느낌은 점점 짙어져 갔다. 내가 입주한 것은 구월이었기 때문에 낮은 계속 짧아졌는데, 노란 창문 아래서 긴 겨울의 우울을 견뎌야 했다. 


책상은 창문 바로 앞에 두었다. 창문을 마음대로 활짝 열 수는 없었다. 맞은편 건물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만큼 가까웠기 때문이다. 밤에는 방안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 더 또렷해졌다. 저녁 바람을 즐기기 위해 베란다에 나와 나란히 앉은 연인, 창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놓고 거리 행인들을 구경하는 백발 할머니, 일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들어오는 3층 남자. 남 몰래 우연히 그들을 목격함으로써 내가 낯선 도시에 있음을 새삼 깨닫곤 했다. 



기숙사 마당으로 난 문, 아무도 오가지 않는 자정 즈음에. 


일곱 번의 저녁 종소리, 그것은 Foyer 기숙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시월이 지나면서 일곱 시 즈음 방안은 이미 어두웠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작은 램프를 하나 켜두고 앉아 쉬고 있을 때 종이 울렸다. 굳이 세지 않아도, 그 저녁 종소리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종소리가 울리면 어느 오래 된 저녁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것은 이성복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어느 ‘낡고 허름한 저녁'이기도 하고, 불을 지피고 저녁을 준비하며 새로 경건해지는 저녁이기도 하다. 어느 어린 수녀가 홀로 앉아 기도문을 읽으며 고된 하루의 다친 마음을 쓰다듬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적도 있었다. 


그리고 창문 넘어 노트르담 앞 광장이 그려진다.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빵집에 줄을 서서 바게트나 달콤한 케이크를 사는 사람들, 일을 마친 후 카페 테라스에 앉아 가벼운 맥주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노트르담 앞 계단에 걸터앉아 자주 보는 얼굴들과 소소한 하루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다. 사오 분 간격으로 지나가는 트람 속의 무표정한 얼굴들, 커다란 가방을 등에 메고 자전거 페달을 힘껏 굴리는 이들도 있다. 장을 보고 양손에 짐을 들고 가는 사람들의 사뭇 상기된 모습들도...  성당 앞 광장은 붐빈다. 종이 울리면, 하루를 보내고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제목 없는 풍경 사진 한 장으로 남는다. 


가을 저녁 느슨한 햇볕 속의 마지막 일곱 번째 종소리, 매일 들어도 똑같이 좋았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의 그리움을 먼 곳으로 실어 나르듯... 언제나 길게 길게 울려 퍼졌다. 나도 눈을 감고, 종소리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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